트럼프, 연준 굴복시킬 수 있을까…시장 충격 없이 가능성은?

[워싱턴 D.C.]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려는 오랜 시도가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연준 이사 아드리아나 쿠글러의 사임이 그 촉매로 작용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앙은행 정책 결정부에 자신의 충성파 인사를 앉힐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2025년 8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경제는 단기 성장을 위해 통화정책을 정치화하는 위험한 실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조사기관 MRB 파트너스(MRB Partners)는 최근 보고서에서 “연준의 독립성을 제거하고 단기 성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설정하면, 장기적으로 부채 불균형이 급격히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채 슈퍼사이클의 폭발적 연장

보고서는 연준이 정치 권력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면 첫 번째 충격파가 국채 시장에서 관측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금리가 인위적으로 낮아지면 정부와 의회는 더 빠른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부채 발행 한도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유인이 커지며, 이는 미국이 수십 년 간 축적해 온 Debt Supercycle“상당히 연장”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정책은 잠시 동안 잠재 성장률을 웃도는 고성장을 유지하게 만들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경제와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해 더 큰 불안정을 초래할 것”MRB Partners

재무부, 단기 국채로 급선회

단기 성장을 집착하는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미 재무부는 장기물 발행을 줄이고 T-빌(T-Bill·만기 1년 이하 단기국채)에 집중함으로써 명목상 이자 비용 절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MRB는 “단기물 중심으로의 전환은 국채 장기물의 유동성을 약화시켜 시장을 더 변동성에 노출시키며, 실제 비용 절감 효과도 과장돼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촉구해 온 “깊은 기준금리 인하” 요구 역시 이러한 단기부채 전략과 맞물려 있다. 낮은 단기금리는 언뜻 채무 부담을 줄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책금리가 조금만 상승해도 전체 이자 부담이 즉시 튀어 오르는 취약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민간 금융, 변동금리로 쏠리다

단기 금리가 인위적으로 낮아지면 기업들도 장기채 발행 대신 변동금리 대출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주택금융시장에서도 한때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던 변동금리 모기지(ARM) 상품이 재등장해 일시적인 “주택 구입 여력 개선”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MRB는 “수요 촉발로 다시 집값이 급등하면 가계와 금융시스템에 새로운 위험이 쌓인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주택 구매자들은 언젠가 더 낮은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수도 있다.”MRB Partners

연준의 영향력, 그러나 취약성도 동반 상승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주체들이 초단기 차입 비용에 운명을 걸게 되면, 연준의 정책금리 조정은 과거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갖는다. 작은 긴축도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어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과열돼도 금리 인상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커진다.

시나리오의 종착역: 달러 패권의 위협

보고서는 만약 시장이 미국 정부의 채무 상환 의지 혹은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면 가장 극단적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 경우 투자자들이 T-빌조차 외면할 수 있으며, 연준은 국채를 직접 매입해 사실상 화폐를 찍어내는 방식으로 정부 재정을 떠받치는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다.

“이 극단적 결과에서는 연준이 최후의 매입자(buyer of last resort)가 되어 미국 국채를 전면적으로 화폐화할 것이다. 이는 미 달러세계 기축통화 지위 상실로 직결된다.”MRB Partners

MRB는 “부채로 파티를 열면 초반에는 후끈 달아오르겠지만, 파티가 끝난 뒤 맞이할 숙취 또는 과다복용의 고통이 더욱 클 것”이라고 비유했다.


용어·배경 설명

Debt Supercycle은 국가·가계·기업이 수십 년에 걸쳐 부채를 축적하면서 거듭된 경기 침체를 추가 차입으로 극복해 온 흐름을 가리킨다. 이는 언젠가 부채 상환 능력을 시험받는 구조적 한계점에 도달할 위험이 있다.

T-빌은 만기 4주·13주·26주·52주로 구분되는 미국 재무부 단기 국채로, 금리가 정책금리와 거의 동일하게 움직여 금리 재설정 리스크가 크다.

변동금리 모기지(ARM)는 초기 몇 년간 고정금리를 적용한 뒤 시장금리에 따라 금리가 변동되는 주택담보대출로, 금리 상승 시 상환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기자 전문 분석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준 인사를 통해 통화정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지 여부는 아직 가정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글로벌 투자자들은 1990년대 멕시코·2000년대 터키가 경험한 정치화된 중앙은행의 파장을 기억한다. 미국이라는 기축통화 발행국이 이 길을 택할 경우, 달러 자산의 프리미엄이 일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세계 금융시장 구조는 재편될 공산이 크다. 연준 독립성은 단순한 제도적 미덕을 넘어 달러 시스템의 신뢰 인프라로 기능해 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향후 몇 달간 쿠글러 전 이사의 공석을 누가 메우느냐, 그리고 2025년 이후 선거 국면에서 통화정책 독립성 이슈가 어떻게 부상하느냐가 연준과 글로벌 시장 안정성을 가를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