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2025년 9월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마린원 헬기에 탑승하기 전 취재진과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카메라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Mehmet Eser | AFP | Getty Images
2025년 9월 15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들이 매 분기마다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실적 보고서를 ‘반기(半年) 단위 보고’로 전환하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Truth Social)’ 게시물에서 이 아이디어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승인”을 전제로 하며, “보고 비용을 절감하고 경영진이 회사 운영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게시물에서 “중국 기업들은 50년에서 100년을 내다보고 경영하지만, 우리는 분기 실적에 매몰돼 있다”면서 “Not good!!!”라는 표현을 세 차례 연달아 사용했다. 다만 실제로 중국 본토 상장사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분기·반기·연간 보고서를 모두 제출해야 하며,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기업만이 반기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은 장기 전략으로 회사를 운영하는데 우리는 분기마다 숫자에 집착한다. 이는 옳지 않다.” — 도널드 트럼프, Truth Social, 2025년 9월 15일
현행 미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뉴욕증권거래소(NYSE) 등 미국 주요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은 1년에 네 차례 ‘10-Q’ 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다만 향후 실적 가이던스(전망치)를 제공하는 행위는 자율이다. 규정 변경은 SEC(미 증권거래위원회)*예: 미국 자본시장 감독기관*이 직접 개정하거나, 미국 의회가 법률을 통해 수정할 수 있다.
트럼프의 제안은 영국·유럽연합(EU)의 기업 공시 체계와 더 유사하다. 영국·EU 상장기업은 기본적으로 6개월마다 반기 보고를 의무적으로 제출하고, 필요 시 분기 보고서를 자율적으로 공개한다.
분기 보고 무용론은 이번이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2018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는 “분기 실적전망(가이던스)을 폐지하자”고 촉구한 바 있다. 당시 두 경영인은 보고 의무 자체가 아니라 ‘숫자를 맞추기 위한 단기 압박’이 기업 가치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2025년 초 노르웨이 국부펀드(세계 최대 규모, 운용자산 약 1조 4천억 달러)는 반기 보고 전환을 제안하며, “보고 간격이 길어질수록 장기적 혁신·재투자를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어 및 제도 설명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 우리나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격이다. 기업의 공시, 회계감독, 시장불공정 행위 제재 등을 담당한다.
Truth Social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설립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기존 플랫폼이 부과한 ‘영구 정지’ 조치 이후, 직접 여론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0-Q 보고서는 미국 상장사가 분기마다 제출하는 재무제표·사업현황 보고서다. 10-K(연차보고서)와 달리 감사보고서 첨부 의무가 없지만, 제출 기한이 짧아 즉시적인 정보 파악에 활용된다.
전문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은 기업 입장에서 단기 수익 압박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는 정보 비대칭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실제로 세미애뉴얼(반기) 보고 체제로 전환할 경우, 1년 중 180일가량 ‘공시 공백’이 발생하므로, 시장은 루머·사설 데이터에 의존할 위험이 커진다.
미국 의회가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규제 완화에 우호적인 공화당과, 투자자 보호 강화를 주장하는 민주당 간 정책 공방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선 국면과 맞물리면, 기업 공시 주기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궁극적으로 보고 주기의 장단점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은 시장 투명성 대 기업 효율성의 균형이다. 장기적 성장 전략 수립을 지원하면서도 투자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는 절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