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민주당 의원단, 공화당의 선거구 재획정 저지 위해 일리노이로 집단 이동

CHICAGO — 텍사스 하원의 민주당 의원 수십 명이 공화당의 선거구 재획정(리디스트릭팅) 추진을 막기 위해 2025년 8월 3일 일요일 저녁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향했다. 이들은 공화당 주도의 하원이 의결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족수(quorum)를 의도적으로 붕괴시키려는 전략적 ‘집단 이탈’ 행동을 선택했다.

2025년 8월 3일, 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약 30명의 텍사스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일주일가량 시카고에 머무를 계획이며, 이는 지난달 말 회동을 가졌던 일리노이주 JB 프리츠커 주지사가 물밑에서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성사됐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텍사스 의원단에 호텔·회의장·교통 등 물류 지원을 제공하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했으며, 양측은 일요일 늦게 공동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텍사스 민주당 하원 의총(코커스) 의장 진 우(Gene Wu) 의원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텍사스인을 위해 텍사스를 떠난다”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김 아래 설계된 게리맨더(gerrymander) 지도를 막기 위해 이 같은 결단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번 특별 회기는 처음부터 부패했고, 우리는 인종차별적 지도를 통해 수백만 흑인·라티노 유권자의 목소리를 빼앗으려는 시도에 가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게리맨더란? 특정 정당이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기형적으로 조정하는 행위를 일컫는 정치용어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Elbridge Gerry)의 이름과 괴물(salamander)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가장 논쟁적인 이슈 중 하나로, 법적 허용 범위와 민주주의 원칙 간 충돌이 빈번하다.


공화당, 하원 5석 추가 확보 노리는 새 지도

지난주 텍사스 공화당은 2026년 중간선거에서 최대 5석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새 의회 지도 초안을 공개했다. 이 지도는 오스틴·댈러스·휴스턴 일대 민주당 현역 하원의원 지역구를 분할·재배치해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던 남부 텍사스의 접전 지역 두 곳도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재편된다.

텍사스 하원 코디 바수트(Cody Vasut) 공화당 의원이 이끄는 위원회는 토요일 오전 당 대 당 투표로 해당 지도를 통과시켰다. 바수트 위원장은 NBC 뉴스 인터뷰에서 “정치적 고려는 합법적이며 정당하다”면서 “캘리포니아·뉴욕·일리노이 등 다른 주와 비교할 때 텍사스는 의석수 대비 득표율이 낮다. 우리는 정치적 성과를 높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집단 이탈 전략

텍사스 하원은 월요일 오후 3시(중부표준시)에 개회할 예정이지만, 민주당 30여 명이 자리를 비우면서 정족수(150석 중 100석) 충족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텍사스 공화당 다수는 2023년 법 개정을 통해 정족수 파행 의원에게 하루 500달러 벌금과 주 경계 밖으로 나갈 경우 동행 체포까지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민주당은 그럼에도 2023년에 이어 또다시 ‘워크아웃(walk-out)’ 카드를 꺼내 들었다.

“우리는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덕적 명료함을 갖고 행동하고 있다.” — 진 우 텍사스 하원의원

민주당 앤 존슨(Ann Johnson) 의원은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 파괴를 정상으로 포장하려는 흐름에 맞서야 한다”며 “텍사스 공화당은 트럼프가 요구했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는 텍사스는 물론 미국 시민 모두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프리츠커 주지사, 전국적 주목

이번 사안은 일리노이의 JB 프리츠커 주지사를 전국적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현재 3선에 도전 중이며, 2028년 대선 잠재 후보로도 거론된다. 그는 6월 오클라호마 민주당 행사 기조연설 이후 텍사스 의원들과 ‘심도 있는’ 비공개 회의를 진행, “일리노이에 오면 전폭적 지원을 얻을 것”이라고 확약했다.

현재 민주당 의원단의 구체적 숙소·경비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프리츠커 주지사 비서실 관계자는 “우리 주(州)의 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자원을 제공 중”이라고 말했다.

향후 전망으로는, 공화당이 결원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법원에 강제소환을 청구하거나, 민주당 의원 개별 회유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면 민주당은 여론의 주목을 끌어 공화당의 지도안에 인종적 편향이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정치적 부담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게리맨더 논쟁이 대선 주기를 넘어 지속될 것”이라며 “텍사스 사례가 다른 공화당 주 정부에도 ‘선례’를 제공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2025년 연방 대법원의 관련 판례가 제한적인 만큼, 결국 정치적 힘겨루기가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2023년 벌어졌던 ‘선거법 개정 저지 워크아웃’과 유사하지만, 당시보다 벌칙 수위가 높아져 민주당이 감수해야 할 경제적·법적 리스크가 더 크다는 점이 특징이다.

텍사스 시민권 변호사 협회(TCLU)는 성명을 통해 “의원 체포나 벌금 부과는 표현의 자유와 표결 거부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반면 공화당 측은 “민주당이 입법 책임을 져버렸다”고 반박하며 신속한 귀환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 회기가 중단 없이 열리려면 공화당 지도부가 지도안을 일부 수정하거나, 민주당 의원 일부가 텍사스로 복귀해 정족수를 맞춰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양측간 입장 차가 커 타협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관전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당 의원단의 체류 기간과 재정적 압박 수준. 둘째, 공화당의 강제 조치 여부와 법적 공방. 셋째, 전국적 정치 지형에 미칠 파급효과다. 이와 함께, 인종·소수자 커뮤니티의 정치적 대표성 문제가 다시금 조명을 받으면서 미국 내 선거제도 개혁 논의도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한편, 텍사스 하원의 다음 공식 일정은 8월 4일 화요일 예정이나, 지도안 외에는 의제에 오른 법안이 없는 상태다. 이에 따라 하원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는 ‘셧다운’ 장기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미정이지만, 민주주의 절차와 정당 정치의 경계를 시험하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