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차기 중앙은행 총재, 성장 부진 타개 위해 ‘과감한 금리 인하’ 시사

[방콕 발(發)] 태국 차기 중앙은행(Bank of Thailand·BOT) 총재로 내정된 비타이 라타나콘(Vitai Ratanakorn·54)이 취임 전부터 공격적 금리 인하 의지를 공언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성장 정체, 무역 갈등, 산업 심리 위축 등 복합 위기를 겪는 태국 경제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통화정책에 보다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5년 7월 22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비타이는 기자단과 만나 “태국 경제가 기대만큼 호전되지 못하고 있으며, 장기 침체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행 기준금리 1.75%가 “상당 폭 더 낮아질 여지가 있다”고 못박았다. 이는 취임을 앞둔 인물이 공식 석상에서 밝힌 최초의 구체적 완화 시사로, 시장에서는 0.25%p 단발성 조정보다 연속적·심층적 완화를 예고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1. ‘3중(三重) 압박’에 직면한 태국 경기

동남아시아 2위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태국은 최근 성장률 둔화, 미·태 무역협상 장기화, 관광·제조업 동반 부진이라는 3중 압박을 동시에 받는다. 관광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2%를 차지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완전 회복이 더디다. 제조업 공급망도 중국·베트남 등 인근 국가와의 경쟁 심화로 활력을 잃고 있다.

이처럼 복합 리스크가 누적된 상황에서, BOT는 올해 2월과 4월에 이어 6월 회의에서는 ‘추가 대응 여력 확보’를 이유로 동결을 선택했다. 하지만 비타이는 “

‘선제적’(proactive) 완화 없이는 경기 회복 모멘텀을 놓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2. 차기 총재의 이력과 리더십

비타이는 국책은행 최대 규모인 정부저축은행(Government Savings Bank·GSB)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하며 실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8년에는 정부연금기금(GPF) 사무총장으로 부임, 1조4,000억바트(약 430억달러) 규모 자산을 관리했다. 그는 출라롱콘대(경제학)와 탐마삿대(법학)를 졸업한 뒤 미국 드렉셀대에서 금융학 석사를 취득했으며, 민간기업 차른 포카판 그룹(CP Group), 저비용 항공사 녹에어(Nok Air)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한 동료는 로이터에 “‘팀 플레이어’로서 합의를 중시하며 실용주의적”이라고 평했다. ‘원칙’을 기초로 하지만 현장 실행력을 중시하는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3. 정·관계와의 미묘한 이해관계

2023년 출범한 집권 푸에타이당(Pheu Thai)은 경기 활성화 명분으로 중앙은행에 지속적 완화 압력을 가해 왔다. 파엣통탄 친나왓(Paetongtarn Shinawatra) 총리(당시 당 대표)는 지난해 5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경제 해결의 ‘걸림돌’”이라고까지 언급했다. 현 총재 세타풋 수티와르트나루엡(Sethaput Suthiwartnarueput)은 ‘지나친 인하’에 반대해 마찰을 빚었다.

비타이는 페이스북 게시글(7월 8일)에서 “어떠한 정치 세력에도 휘둘리지 않고 나라 이익만을 기준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정치적 중립성’ 유지 능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4. 시장 전망과 잠재적 리스크

전 태국 재무장관 티라차이 푸와낫나라눌라(Thirachai Phuvanatnaranubala)는 “비타이가 정부 금융기관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 덕분에 재무부 고위층과 관계를 원활히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그는 “거시 정책 경험 부재”를 약점으로 지적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추가 완화가 바트화 가치 하락, 외국인 자본 이탈, 물가 반등 등 부작용을 동반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장기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경우, 태국의 금리 차 축소로 자본 유출 위험이 커질 수 있다.

5. 용어 해설

원데이 레포금리(one-day repurchase rate)란 태국 BOT가 시중은행 간 초단기 유동성 조절을 위해 적용하는 사실상 기준금리다. 선제적 완화(proactive easing)는 경기 하강 신호가 본격화되기 전에 금리를 미리 낮춰 충격을 완화하는 통화정책 기조를 말한다.

6. 향후 일정 및 관전 포인트

비타이는 내각 승인 후 왕실 재가를 기다리고 있으며, 10월 공식 취임이 예정돼 있다. 취임 직후 열릴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하가 단행될지, 얼마나 ‘깊고 길게’ 이어질지에 투자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7. 기자가 본 시각

태국은 코로나19 이후 ‘K자형’ 회복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됐고, 가계부채 비율(2025년 1분기 기준 91%대)이 높은 수준이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처럼 체감 경기 또한 뜨거운 부담으로 다가온다. 금리 인하는 단기 부양 효과가 있지만, 구조 개혁 없이 통화정책만으로 성장 엔진을 되살리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관광 회복·디지털 경제 전환·산업 고도화 등 다각적 전략이 병행되지 않으면, 인하 효과가 ‘반짝’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중앙은행의 신뢰도는 금융 시장 안정의 근간이다. 정치권의 압력을 최소화하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장기적 거버넌스가 확립된다. 비타이가 ‘실용주의자’라는 장점을 살려 외부 목소리를 수렴하되, 시장과의 소통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정책 독립성’과 ‘경기 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가 그의 임기 성패를 가를 결정적 변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