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표 식료품 체인 크로거(Kroger Co.)가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연간 핵심 매출 전망을 올렸다.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저가 필수품에 대한 수요가 굳건하다는 판단에서다.
2025년 9월 1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크로거는 2025 회계연도 전체의 동일점포 기준(Comparable Sales) 매출 증가율을 2.7%~3.4% 범위로 제시했다. 이는 종전 2.25%~3.25%에서 하단과 상단을 모두 끌어올린 수치다.
실적 발표 직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크로거 주가는 장 초반 약 3% 상승했다. 시장은 ‘고금리‧고물가’라는 이중 압박 하에서도 소비자가 저렴한 상품에 집중하는 ‘트레이드 다운(trade-down)’ 현상이 심화된 결과로 해석한다.
소비 패턴의 변화는 같은 업권에 속한 앨버트슨(Albertsons), 월마트(Walmart) 등에서도 확인된다. 저소득층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 계층마저 인플레이션과 관세 부담을 우려해 ‘가성비’ 매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2분기 콘퍼런스콜 속 경영진의 공통된 관측이다.
“가정 내 식비(Food-at-home)는 소비자 스트레스 국면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는 영역이다. 여기에 크로거는 연초 이후 가이던스를 연달아 상향 조정하며 2025 회계연도를 힘차게 열었다.”
– 로스캐피털파트너스(Roth Capital Partners) 애널리스트 빌 커크(Bill Kirk)
월마트와 달러 제너럴(Dollar General)도 최근 연간 매출 전망을 상향했다. 특히 고소득층 고객까지 흡수한 점이 눈에 띈다. 관세가 본격적으로 물가에 전가될 경우, 가격 민감도가 낮은 집단까지 저가 매장으로 이동할 여지가 커진다는 설명이다.
관세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크로거는 지난 6월 “올해에만 2,000종 이상의 상품 가격을 인하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프로모션 확대와 상시 저가정책(Everyday Low Price)을 통해 ‘가치 추구(value-seeking)’ 고객을 사로잡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약국, e커머스, 그리고 프레시(Fresh) 카테고리가 전반적인 매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장보기 물량(grocery volumes)이 개선된 점도 고무적이다.”
– 데이비드 케너리(David Kennerley) 최고재무책임자(CFO)
이에 따라 연간 조정 주당순이익(EPS) 하단 역시 $4.60→$4.70으로 올렸다. 상단은 $4.80을 유지했다. CFO는 “비용 효율화 노력과 디지털 채널 확대가 실적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2분기 실적도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연료를 제외한 동일점포 매출은 3.4% 증가해, LSEG 집계 컨센서스(2.84%)를 상회했다. 조정 EPS도 주당 $1.04로, 애널리스트 전망치 $0.99를 넘어섰다.
다만 크로거와 앨버트슨 간 250억 달러 규모 인수합병(M&A)이 무산되면서 양사는 현재 법적 다툼을 진행 중이다. 유통업계에서는 “규모의 경제 확보를 통한 가격 경쟁력 강화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고 평가한다.
전문가 해설: ‘관세’, ‘동일점포 매출’, ‘트레이드 다운’이란?
• 관세(Tariff)는 국가가 수입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부과 대상 품목의 수입가격을 높여 최종 소비자 가격 상승 요인이 된다.
• 동일점포 매출(Comparable Sales 또는 Identical Sales)은 이미 12개월 이상 운영된 매장의 매출만을 집계해 신규 출점 효과를 제거한 지표다. 소매기업의 내실 성장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척도로 쓰인다.
• 트레이드 다운(Trade-down)은 소비자가 고가 상품에서 저가 상품으로 구매 수준을 낮추는 현상이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두드러지며 할인점·창고형 매장의 실적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마켓 인사이트
필자는 관세가 본격적으로 인상분을 전가하기 시작할 2025년 4분기에 저가 유통채널 간 점유율 경쟁이 한층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e커머스와 오프라인을 연계한 옴니채널 전략이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관건이 될 것이다. 크로거의 경우 ‘스마트 물류센터’ 구축과 ‘배달전용 다크스토어(Dark Store)’ 확장을 병행해 배송 효율성과 재고 회전율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다만 성공 여부는 원재료·인건비 상승 압력을 가격 인하 정책으로 얼마나 상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미 소비자지출 데이터에 따르면 식료품 가격 탄력성은 코로나19 이전 대비 30%가량 낮아져, 가격 인상이 쉽지 않은 구조다. 이에 따라 규모의 경제·공급망 최적화·자사 브랜드(Private Brand) 강화가 핵심 해결책으로 부상한다.
결국 크로거가 제시한 동일점포 매출 +3% 안팎 달성 여부는 가격 정책과 디지털 전환 속도의 균형에 달려 있다. 관세 불확실성 속에서도 ‘저가·필수품’이라는 두 축을 공고히 다지는 전략이 유통업계의 당면 과제임을 방증한다.
요약하면, 크로거는 소비 지갑이 얇아지는 국면에서도 가격·품질 균형을 맞추는 전략으로 시장 기대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 향후 관세 여파가 본격화될 때 나타날 소비자 행태 변화를 선제적으로 포착하는 기업이 차별적 수혜를 누릴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