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2021년 美 IPO 관련 주주 집단소송 기각… “허위공시 입증 부족”

쿠팡(Coupang Inc.)이 미국에서 제기된 대규모 증권집단소송에서 완승했다.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의 버논 브로데릭(Vernon Broderick) 판사는 83쪽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제기한 모든 청구를 기각하며 사건을 각하 처리했다. 이에 따라 같은 내용으로 소송을 다시 제기할 수 없는 with prejudice 상태가 확정됐다.

2025년 9월 1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뉴욕시 교직원퇴직연금(Teachers’ Retirement System of the City of New York)을 비롯한 여러 공적 연금펀드가 선도 원고로 참여해 2022년 8월 제기됐다. 이들은 2021년 3월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전후해 쿠팡과 경영진이 ‘물류센터 근무환경 은폐’, ‘검색 알고리즘 조작’, ‘사내 리뷰 작성’ 등 중대한 사실을 숨겨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기망 의도 및 구체적 허위사실의 존재를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원고는 피고가 허위 진술임을 인지했거나 적어도 심각한 위험 신호(red flags)를 무시했다는 점을 특정성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 버논 브로데릭 판사


1. 소송의 핵심 쟁점

원고 측은 쿠팡이 ▲물류센터의 열악한 안전·노동환경을 축소·은폐하고, ▲검색 결과를 조작해 자사 PB(private-label) 제품을 우선 노출했으며, ▲직원에게 리뷰 작성을 지시하고, ▲가격 자동매칭(price-matching) 기능을 악용해 납품업체에 경쟁 플랫폼 가격 인상을 강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쿠팡이 “직원 리뷰 작성 가능성을 이미 공시했으며, 납품업체와의 거래 관행을 포괄적으로 설명해 왔다”는 점을 근거로 ‘허위·누락’ 사실이 없다고 결론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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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판결문의 주요 논지

① ‘포괄적·지향적(aspirational) 표현’은 허위 진술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 핵심이다. 쿠팡이 기업 블로그 및 공시자료에서 “우리는 근로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와 같은 광범위하고 추상적 표현을 사용했더라도, 이는 기업의 목표 내지 철학(puffery)으로 간주돼 증권법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② 원고는 가격조작의 ‘구체적 상황’을 Rule 9(b)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특정하지 못했다.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 9(b)는 사기(fraud) 소송에서 ‘어떻게, 언제, 어디서, 누가’를 명확히 제시하도록 규정한다. 판사는 “검색 알고리즘이 실제 어떻게 조작됐는지, 가격 인상이 언제 이뤄졌는지” 등에 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③ IPO 주관사(언더라이터)에 대한 책임도 부정됐다.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앨런앤드컴퍼니 등 주관사는 ‘실질적 허위 공시’를 인식했거나 무시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함께 면책 판결을 받았다.


3. 낯선 용어 해설

퍼퍼리(puffery)란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 흔히 쓰는 과장·광고성 멘트를 가리키며, 객관적 사실로 입증하기 어려워 법적 책임이 제한된다. 언더라이터(underwriter)는 기업공개 시 증권을 인수·배분하는 금융기관으로, 공시 내용 진위에 대해 ‘실사 의무(듀 딜리전스)’가 있으나 고의·중과실이 입증돼야 책임이 성립한다. 또 가격 자동매칭(price-matching)은 자사 플랫폼 가격이 타사보다 높을 경우 자동으로 인하하는 알고리즘으로, 제조사·유통사 간 ‘공급가 인상 압박’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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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건 배경과 파장

쿠팡은 2021년 3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약 46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5조2,000억 원)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알리바바(2014년) 이후 6년 6개월 만에 최대 외국기업 공모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상장 1년 만에 주가가 절반 이하로 추락했고, ▲공정거래위원회 다수 조사▲경기도 이천 대형 풀필먼트센터 화재 등이 겹치며 투자심리가 악화됐다. 이에 일부 기관투자자가 ‘기업가치 하락 손실’을 이유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조사 착수나 화재 발생 자체가 곧 허위공시라는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또 주가 하락은 경쟁 심화, 고금리, 경기둔화 등 거시 요인이커머스 기업 가치 재평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5. 이해당사자 반응

쿠팡 대변인은 성명에서 “애초에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판단했고, 이번 판결로 그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반면 뉴욕시 감사관(Comptroller) 브래드 랜더(Brad Lander) 사무실과 원고 측 로펌은 “향후 대응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국내 법조계에서는 “미국 증권집단소송은 소송비용이 높고 손해액 산정이 복잡해, 초기 증거 확보 단계에서 기각되는 사례가 다수”라며 이번 판결이 ‘한국계 기업의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부담 완화’라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평가했다.


6. 쿠팡의 현재 위치

쿠팡은 2010년 김범석 의장이 창업해 급성장한 뒤, 현재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글로벌 본사를 두고 한국·대만·싱가포르 등에서 전자상거래와 물류 사업을 전개한다.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성장세를 뒷받침했으며, 로켓배송·와우 멤버십 등을 앞세워 국내 시장 점유율을 확장 중이다.

법원 승소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월가에서는 “영업손실 축소·해외 확장이 주가 재평가의 열쇠”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미국 상장사로서 SEC(증권거래위원회) 공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내부통제·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7. 법적·경영적 시사점

첫째, 글로벌 상장을 추진하는 한국 기업은 ‘지나친 마케팅 문구’가 곧바로 증권사기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으나, ESG·노동 이슈가 실질적 손해 발생과 결부될 경우 위험 노출이 커진다.

둘째, 집단소송(class action)에서 ‘고의(fraudulent intent)’를 입증하기 위한 내부 이메일, 회의록, 내부고발자 진술이 결정적 증거가 된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셋째, 대형 언더라이터가 참여한 IPO라 해도 실사(due diligence) 책임을 면책받으려면 공시의 구체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건명: Teachers’ Retirement System of the City of New York 외 v. Coupang Inc. 외
관할 법원: 미국 뉴욕 남부지방법원(S.D.N.Y.)
사건번호: 22-07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