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VEU 특혜 철회’가 촉발할 美 반도체 공급망 지각변동: 투자·물가·지정학 리스크 장기 전망

Ⅰ. 사건의 본질: ‘VEU 철회’ 한 줄이 던진 파문

미국 상무부가 TSMC·SK하이닉스·삼성전자 중국 공장에 부여해 오던 Validated End User(이하 VEU) 특혜를 2025년 9월 1일부로 전격 취소했다. 단 한 줄짜리 연방관보 고시는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 중력파처럼 번졌다. VEU는 전략물자 수출 허가를 면제해 주는 ‘패스트트랙’이다. 폐지되면 장비·소프트웨어·서비스까지 건별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공정 업그레이드·라인 증설은 사실상 동결된다.


Ⅱ. 역사적 맥락: 對中 기술 봉쇄의 진화

• 2018년: 트럼프 행정부, ZTE에 부품 수출 전면 금지 → 첫 제재 실험.
• 2020년: 화웨이 규제로 5G 장비 공급망 재편.
• 2022년 10월: 바이든 행정부, 14nm 이하 장비·EUV·EDA 소프트웨어 중국 반입 차단.
• 2025년 9월: 트럼프 2기 행정부, VEU 특혜 철회 → ‘허점 차단’ 단계.

VEU 폐지는 반도체 공급망 이탈(Decoupling)의 4단계 중 최종 국면으로 간주된다. ①장비 차단→②소프트웨어 차단→③인력·IP 차단→④기존 설비 억제까지 진입한 것이다.

주목

Ⅲ. 수치로 읽는 현주소

기업 中 생산 용량(월) 매출 비중 미국산 장비 의존도
TSMC 난징·상하이 10만 장(12인치) 3% 80%
SK하이닉스 우시 18만 장(12인치) 13% 87%
삼성 시안 25만 장(12인치 V낸드) 15% 92%

미국산 장비 의존도가 절대적이기에, 개별 허가제 전환은 CapEx·R&D 지연→공정 기술 격차 확대로 직결된다.


Ⅳ. 공급망 재편 시나리오

  1. Base Case: 中 공정 동결·보수 유지만 허가 → 선단 기술은 미국·일본·EU로 이동.
  2. Risk Case: 개별 허가 심사 병목 → 2026년 이후 중국 내 20nm+ 메모리조차 공급 차질.
  3. Tailwind Case: 中 정부 보조금·국산 장비 대체율 50% 달성(현재 18%) → 제한적 회복.

Ⅴ. 미·중·韓·臺 4개국 경제에 미치는 장기 충격

1) 미국

  • 재투자 유인: TSMC 애리조나 2·3공장, 삼성 텍사스 테일러, SK하이닉스 인디애나 패키징에 총 850억 달러 추가 투입 전망.
  • 고용 효과: 약 7만 명(직·간접) 고임금 엔지니어 수요 발생 → 장기 GDP +0.15%p 추산.
  • 인플레이션 리스크: 장단기 NAND, DRAM 가격 +8~12% 상승 여파 → 2026년 CPI +0.3%p.

2) 중국

  • 국산화 가속: SMIC·YMTC·CXMT에 5년간 5,000억 위안 보조금 예고.
  • 기술 갭: 네덜란드·일본 동참 시 EUV 완전 차단 → 5년 뒤 5세대(2nm) 뒤처짐 고착.
  • 거시 파장: ICT 수출 3,000억 달러 중 20% 감손 시, 연간 성장률 -0.4%p.

3) 한국·대만

  • 단기 수혜: 장비·소재 발주 미국 이전, 패키징·테스트까지 美 내 ‘클러스터형’ 이전.
  • 리스크: 對中 메모리·파운드리 매출 공백 → EBITDA -6%~ -9% 전망.
  • 산업 재편: 인텔+TSMC, 삼성+AMD 등 이종연합 심화.

Ⅵ. 주식시장·섹터별 장기 밸류에이션 재조정

장비주(AMAT·LRCX·ASML)는 미국 내 CapEx 수혜로 PSR 30% 프리미엄 유지 예상. 반면 메모리주는 EPS 변동성 확대로 PER 리레이팅 상단 12배→10배 하향 압력. 클라우드·AI 가속화 덕분에 NVIDIA·Broadcom은 공급 차질보다 수요견조에 베팅 가능.


Ⅶ. 물가·통화정책 교차점

• 반도체 가격 상승은 헤드라인 PCE의 7% 비중(전자·정보기기)을 자극한다.
• 2026년까지 누적 0.3~0.5%p ‘구조적 인플레이션’ 추가.
• 연준은 인하 사이클 속도 조절 필요: ’잠재 성장률 상승’ ↔ ’공급 충격 인플레’라는 딜레마.


Ⅷ. 지정학적 함의: 新탄소·AI 블록과 기술 블록

1) 미·일·네덜란드 ‘조커 카드’—광학·EUV 렌즈·포토레지스트 독점.
2) 중·러·이란 ‘블루오션 카드’—Legacy 공정·패키징 자립 시도.
3) 유럽연합: European Chips Act 430억 유로 가속, TSMC 드레스덴·인텔 마그데부르크 건설.

주목

Ⅸ. 투자 지침: 불확실성을 기회로 전환하는 4단계 로드맵

  1. ETF 배분: SOXX·SMH→미국 내 가중치 상향, KWEB·CQQQ는 구조적 할당 축소.
  2. 퀀트 팩터: ▲낮은 중국 매출 비중 ▲높은 장비·소재 가격 결정력 ▲IRA·CHIPS 인센티브 수혜를 선별 팩터로 활용.
  3. 듀레이션 헤지: 반도체 가격발 인플레 헤지용 TIPs·금 ETF 5~10% 비중 권고.
  4. 거버넌스 확인: 美 정부 CapEx 인센티브 수령 조건(배당·자사주 제한) → 주주환원 전략 재평가 필요.

Ⅹ. 필자의 통찰: ‘디커플링 2.0’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

1) ‘싸고 빠른’ 중국 생산의 시대는 끝났는가?
2) 공급망 재편으로 미국은 ‘초과 공급→전략 적정 공급’을 관리할 수 있는가?
3) 금융시장 참가자는 달러·반도체·에너지라는 세 축의 지정학 변수를 동시에 가격화할 준비가 돼 있는가?

본 칼럼은 세 질문 모두에 ‘부분적 Yes’로 답한다. 디커플링 1.0(관세·화웨이 제재)이 무역 재편 단계였다면, VEU 철회가 상징하는 디커플링 2.0은 자본·연구개발·인재까지 구조적으로 양극화시키는 단계다. 한·대만 기업은 미국 내 초대형 투자를 통해 전략적 안전지대를 얻지만, 동시에 이익률 희석·지정학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미국은 ‘리쇼어링 인플레’라는 새로운 물가 스트레스에 직면한다.


ⅩⅠ. 결론

VEU 철회는 단순 규제를 넘어 글로벌 기술 패러다임을 다시 쓰는 ‘사건’이다. 향후 10년간 반도체 설비 투자 지도, 근로자 이동, 제품 가격곡선, 심지어 중앙은행의 반응함수까지 광범위하게 재편된다. 투자자는 ①공급망 지리학 ②정책 인센티브 ③기술 격차라는 세 좌표를 동시에 읽어야 한다. ‘문제’가 아니라 ‘질서 전환의 증거’로 받아들일 때 기회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