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 반도체 자립 가속화
중국 지방 정부가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내 인공지능(AI) 칩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한 고강도 정책 로드맵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들 계획에 따르면 각 지방은 2027년까지 최소 70%의 AI 칩 자급률을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2025년 8월 2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니케이(Nikkei)가 산시증권(Shanxi Securities)의 보고서를 인용해 전한 내용이다. 보고서는 상하이·베이징·구이양 등 중국 주요 도시가 중앙정부의 기술 자립 기조에 발맞춰 AI 반도체 공급망을 빠르게 국내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먼저 상하이는 관내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되는 AI 칩의 70% 이상을 자국 기업 제품으로 대체한다는 세부 계획을 공개했다. 베이징은 이보다 더 공격적으로 2027년 100% 완전 자급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수도권 내 초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국책 연구기관, 정부 부처의 AI 인프라에 탑재되는 모든 가속기가 국산화된다는 의미다.
서남부의 구이양시는 애플(Apple) 등 글로벌 기업이 운영·임차 중인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구이양은 신규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될 AI 칩의 약 90%를 중국산으로 채운다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중국 서남부 내륙이지만, 구이양은 ‘서부(西部) 빅데이터 허브’로 불리며 정부의 통신·전력 인센티브를 집중적으로 받아 왔다.
시진핑 주석의 ‘자력갱생’ 구호와 정책 연계
올해 4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서 “AI 칩 분야에서 자립자강(自立自强)을 달성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핵심 기술이 타인의 손에 있으면 언제든지 목이 죄인다.”
는 그의 발언은 지방정부·국영기업·민간 테크 기업에 현실적인 목표치를 제시하는 촉매제가 됐다.
국제 시장조사 기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초 기준 엔비디아는 중국 AI 칩 시장의 약 80%를 점유했다. 그러나 산시증권은 중국 현지 업체인 화웨이(브랜드: Ascend), 캠브리콘(Cambricon), 그리고 바이두(Baidu) 계열 쿤룬(Kunlun) 칩 등이 생산량 및 성능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향후 5년 안에 엔비디아 점유율이 50~60%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화웨이 Ascend 910B 칩은 엔비디아의 H20 대비 약 85% 수준의 연산 성능을 구현한다. 산시증권 보고서는 “차세대 Ascend 920이 출시되면 미국산 제품과 동등한 성능에 근접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용어 해설: AI 칩·데이터센터·가속기
AI 칩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딥러닝·머신러닝 연산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특수 목적용 반도체다. 일반 CPU 대비 1초당 처리 연산량(TOPS)이 월등히 높다. ‘가속기’(Accelerator)란 GPU·NPU·TPU 등 AI 연산을 가속하는 칩 전반을 통칭한다.
데이터센터는 서버·저장장치·네트워크 설비를 집적해 클라우드, 스트리밍, AI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인프라다. AI 트레이닝(학습) 과정에서 대규모 전력과 냉각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각 지방의 전력망·재생에너지 비율·기후조건 등을 고려해 인프라 투자를 집중 배분하고 있다.
전문가 시각 및 시장 평가
업계에서는 “70% 자급률” 목표가 단순한 정치 수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중국은 메모리·파운드리·OS를 포함한 반도체 전주기에서 이미 상당한 내재화를 달성했다. 다만 초미세 공정과 AI 학습용 소프트웨어 스택 부문에서 여전히 미국·대만 선도 기업 대비 기술 격차가 존재하는 만큼, 추격전은 불가피하다.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대체로 “중국 내 고성능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엔비디아의 절대적 우위는 점차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대만 TSMC 등 해외 파운드리에 대한 중국 기업들의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점은 체계적 리스크로 꼽힌다.
필자 의견을 덧붙이자면, “70%”라는 목표치는 정책 차원에서 가시적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 작동할 것이다. 중국식 ‘계획경제’ 하에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평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연구개발 보조금·세제 혜택·인력 유치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향후 3~4년간 화웨이·캠브리콘·바이두 계열 반도체 스타트업의 IPO(기업공개)나 대규모 투자 라운드가 잇따를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