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중국 전기차(EV) 브랜드 네타(Neta)와 지커(Zeekr)가 공격적인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차량이 실제 소비자에게 인도되기 전에 보험을 미리 가입하는 방식으로 판매 실적을 조작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2025년 7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두 회사는 차량 등록 관행을 악용해 ‘자동차 보험 = 실제 판매’로 인식되는 점을 노려, 판매 전(前) 보험 가입 → 조기 등록 → 실적 산정이라는 수순을 밟았다.
로이터가 입수·검토한 문서 및 딜러·구매자 인터뷰에 따르면, 네타는 2023년 1월부터 2024년 3월까지 무려 64,719대를 이런 방식으로 집계해 전체 15개월 판매(117,000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프리미엄 EV 브랜드 지커 역시 2024년 말 남부 도시 샤먼(厦门)에서 동일 수법을 동원했으며, 국유 딜러사 샤먼 C&D 오토모빌이 핵심 역할을 했다.
‘제로마일리지 중고차’란?
중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렇게 실제 주행 거리 0km임에도 등록만 된 차량을 ‘제로마일리지 중고차(零公里二手车)’라고 부른다. 제조사·딜러가 재고 부담을 줄이고 판매 목표를 맞추기 위해 고안한 편법으로, 만성적인 공급 과잉과 치열한 가격 경쟁 속에서 확산됐다.
국가시장 감독총국·공업정보화부 등 정부 부처는 “비합리적 경쟁 근절”을 예고했고, 업계 단체인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는
“판매 등록 후 6개월 내 되팔기 금지“
라는 규제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영·관영 매체의 ‘작심 비판’
2025년 7월 19일자 중국증권보(中国证券报)는 1면에서 지커 실명을 거론하며 “보험 선가입으로 판매를 부풀렸다”고 직격했다. 광저우·충칭 구매자들은 “차량 인수 시 이미 보험이 들어 있었고, 환불 요청도 거절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해당 매체는 특히 2024년 12월 지커가 선전 ㆍ샤먼 지역에서 기록한 이례적 판매 급증에 의문을 제기했다. 예컨대 샤먼 판매는 월평균 대비 14배인 2,737대로 치솟았으나, 로이터가 확인한 샤먼 차량관리국 자료상 그달 신규 번호판 등록은 고작 271대였다.
네타 역시 판매 자료에 ‘이상 징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고, 로이터는 이번에 네타의 상세 조작 내역을 처음 공개했다.
회사·딜러·투자자 반응
네타를 보유한 저장 허존(合众)신에너지자동차와 지커 모회사 지리(Geely)는 19일 로이터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다만 지리 대변인은 관영지 보도에 대해 “강력히 부인한다”고만 밝혔으며, 추가 설명은 거절했다.
중국자동차딜러협회(CADA)의 리옌웨이 애널리스트는 웨이보에 “재무제표와 KPI(성과지표)를 화려하게 꾸미기 위한 포장“이라며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도매 vs 리테일’ 두 가지 통계
중국 EV 투자자는 통상 도매(제조사→딜러)와 소매(보험 등록→소비자) 두 세트 데이터를 통해 재고 및 수요를 파악한다. 그러나 보험 선가입으로 등록만 해버리면 소매 수치까지 왜곡돼 투자·정책 판단이 어려워진다.
일부 ‘제로마일리지’ 차량은 해외 중고차로 수출되지만, 업계에서는 국내 판매 비중이 훨씬 높다고 본다. 많은 소비자가 ‘할인 신차’로 알고 샀다가 ‘보험 명의가 내 것이 아님’을 뒤늦게 발견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딜러 압박과 후폭풍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달 사설에서 “제로마일리지 판매는 업계·소비자에 해악“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양쯔강 삼각주 일대 4개 딜러협회는 “과도한 목표·인센티브가 허위 판매를 유도한다”며 제조사에 개선을 요구했다.
네타는 2022년 말 EV 보조금 종료를 앞두고 보험 선가입을 본격화했다. 네타 딜러 A씨는 “사전 보험 차량 상당수가 창고에 쌓여 재고 부담이 커졌다”면서 “본사 지시는 ‘다들 하니 우리도 한다’는 식이었다”고 토로했다.
다수 구매자는 보험 만기가 예정보다 빨리 도래하면서 뒤늦게 사실을 인지했다. 일부는 “딜러가 전혀 고지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제기했으나, 환불·보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네타·지커의 실적 변동 및 재무 리스크
네타 판매는 2022년 152,000대로 EV 업계 8위까지 올랐으나, 2023년에는 87,948대로 급락했다. 2025년 1분기 판매는 1,215대에 그쳤으며, 모회사 허존은 2025년 6월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지커는 2024년 말 딜러사를 통해 대량 등록 후, 실질 인도는 2025년 초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연간 목표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샤먼 C&D는 2,508대(법인 등록) + 257대(개인 등록)를 보고했으나, 실제 번호판 발급은 271대에 불과해 대량 ‘미인도’가 의심된다.
소비자·투자자에게 주는 시사점
이번 사태는 지속된 가격 전쟁과 공급 과잉이 만든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보험 선가입만으로 ‘매출 인식’이 가능한 회계·행정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한 셈이다.
전문가 견해* (기자 분석)
① 제조사는 단기 실적 달성을 위해 장기 브랜드 신뢰를 희생하고 있다.
②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 재무상 ‘되돌리기(리버설)’가 불가피해, 향후 손익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③ 투자자는 도매·소매·번호판 발급 데이터를 교차 검증해 ‘실질 수요’를 판단해야 한다.
향후 정책이 실제 시행될 경우, 비정상 재고는 대규모 덤핑(가격 인하) 또는 해외 중고차 수출로 이어져 국내 EV 시장 가격 지형에 추가 압력을 가할 전망이다.
☑ 용어 해설
보험 선가입: 제조사 또는 딜러가 소비자 명의가 아닌 법인·제3자 명의로 자동차 보험을 먼저 체결해 두는 것. 중국에서는 보험 가입 정보가 ‘실제 판매’로 간주되므로, 이 과정을 거치면 물리적 인도가 없어도 출고 실적으로 집계된다.
결국 ‘제로마일리지 중고차’ 문제는 소비자 권익 침해를 넘어, 회계 투명성·시장 질서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부상했다. 업계·정부·투자자 모두가 한층 높은 정보 공개와 감독 체계를 요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