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방부가 13일(현지시간) 자국이 실효 지배 중인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인근 해역에 미 해군 구축함 ‘USS 히긴스’가 무단 진입했다며 “경고 후 퇴거시켰다”고 발표했다. 해당 수역은 세계 교역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중국과 필리핀 간 해양 영유권 분쟁의 핵심 지역이다.
2025년 8월 13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미 구축함이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 우리의 영해에 불법 침입했다“고 규정하면서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즉각 식별·추적해 구두 경고와 기동 차단을 실시, 해당 선박을 몰아냈다”고 밝혔다.
성명은 “미군의 행위가 중국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남중국해의 평화·안정을 훼손했으며, 국제법과 국제 관계의 기본 규범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2016년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내린 “법적·역사적 근거 없음” 판결을 거부하며, ‘9단선’(nine-dash line)을 근거로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해 왔다.
미 구축함 ‘USS 히긴스’는 어떤 배?
‘USS 히긴스’(DDG-76)는 미 7함대 소속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이다. 7함대는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삼아 서태평양과 인도양 일대를 담당한다. 함 측은 CNBC의 논평 요청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
중국 측 표현: “미 구축함이 ‘중국 영해’를 불법 침입했다.”
미군 측 반응: 공식 입장 아직 없음.
커지는 미·중 갈등, 무역·안보 전방위 격돌
이번 사태는 미·중이 무역 문제로 날선 공방을 주고받은 직후 발생했다. 지난 3월 중국은 미국을 향해 “무역전쟁이든 다른 형태의 전쟁이든 끝까지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후 양국 간 긴장 수위는 다소 완화됐으나, 남중국해·타이완·최첨단 기술 통제 등 안보 현안에서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인 12일, 중국 해군 함정 한 척이 자국 해안경비대 선박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자체 추격 중이던 필리핀 순시선을 놓치는 사건도 벌어졌다. 필리핀 정부는 “중국이 해상 충돌과 워터캐논 사용, 레이저 조준 등으로 자국 선박과 승조원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해 왔다.
‘9단선’ 및 스카버러 암초 분쟁 배경
9단선(nine-dash line)은 1940년대 말 중국이 남중국해에 그어 놓은 파선(破線) 경계다. 중국은 이 선 안에 위치한 섬·암초·해역에 대해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지만,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스카버러 암초는 필리핀 루손섬에서 약 220km 떨어진 해역에 위치하며, 중국·필리핀·대만이 모두 영유권을 주장한다. 2012년부터 중국 해안경비대가 상주하면서 사실상 봉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중국 선박과 필리핀 선박 간 충돌, 레이저 조준, 워터캐논 발사 등이 반복되면서, 필리핀 정부는 작년부터 잇따라 항의 서한과 외교적 항의 메모를 발송해 왔다.
필리핀 “레드라인” 경고 및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2024년 5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자국민이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안경비대에 의해 사망할 경우, 그것은 “명백한 레드라인이며 전쟁 행위에 근접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을 포함한 우리 조약 동맹국들도 같은 기준을 가진다”고 언급했다.
1951년 체결된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은 “태평양 지역에서 양국 중 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다른 나라도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스카버러 암초 인근 충돌이 확전될 경우 제3국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남중국해 갈등은 세계 해운량의 3분의 1 이상이 통과하는 뱃길 안정성과 직결된다. 이번 사건은 미·중 간 군사적 레드라인 시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 함정이 계속 ‘항행의 자유 작전’을 감행할 경우, 중국의 경고·차단 수위가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의 다자외교 전략도 시험대에 올랐다. 미·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자국의 경제·안보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이 작동하고 있다.
한국 역시 원유·가스·부품 물동량 상당 부분을 남중국해 항로에 의존하고 있어, 해상 긴장 고조가 곧바로 국내 물류·안보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예의주시가 필요하다.
향후 중국·필리핀 간 우발적 충돌이 미·중 양강의 직접적 군사 대치로 비화할 경우, 역내 군사 균형과 글로벌 공급망에 심대한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각국 정부와 해운·에너지 업계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