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보안 우려 속 엔비디아, H20 칩 생산 중단 요청

엔비디아·H20·중국 규제

엔비디아 H20 칩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가 중국 시장 전용 인공지능(AI) 가속기 H20 그래픽 처리장치(GPU)의 생산을 일시 중단하라고 부품 공급사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국 당국이 해당 칩 구매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따른 조치다.

2025년 8월 22일(현지시간),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본사를 둔 앰코 테크놀로지(Amkor Technology)와 한국 삼성전자에 H20 관련 생산·공급 중단을 요청했다. 앰코는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1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를 각각 담당해 왔다.

로이터 통신은 대만 위탁생산업체 폭스콘(Foxconn)도 H20 작업을 중단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별도로 전했다. 다만 삼성, 앰코, 폭스콘 모두 CNBC의 논평 요청에는 즉각 답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의 ‘백도어’ 보안 우려

지난달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엔비디아를 소환해 H20 칩에 국가안보상 위험 요소가 없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CAC는 특히 ‘백도어(backdoor)※2 또는 위치 추적 기술이 내장돼 원격 조종이 가능할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22일 대만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 정부가 제기한 ‘백도어’ 의혹은 사실무근임을 분명히 전달했다”며 “현재 당국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징 측이 수개월 전부터 H20 수출 허가(미 상무부 라이선스)를 취득하라고 촉구했고, 이를 위해 노력해 왔다”며 “이번 보안 검토도 원만히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베이징 사이에서 흔들리는 공급망

H20은 2024년 말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AI 반도체 수출 규제 이후, 수출 요건을 맞추기 위해 연산 성능(인터커넥트 속도 등)을 낮춰 재설계된 모델이다. 2025년 4월 출하가 사실상 봉쇄됐다가 7월 미 상무부의 특별 허가로 재판매 길이 다시 열렸다.

그러나 중국이 보안 검증을 이유로 구매 중단을 지시하면서, H20의 중국 복귀 일정은 또다시 불투명해졌다. 시장조사기관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 애널리스트들은 “중국의 자국산 AI칩 육성 전략이 한층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비디아의 입장… “H20는 민수용 칩”

엔비디아 대변인은 CNBC에 “우리는 시장 상황에 맞춰 공급망을 지속적으로 조정한다”며 “H20 사용에 문제가 없으므로 고객들은 안심해도 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성명에서 “양국 정부 모두 H20이 군사용 또는 정부 인프라용 제품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가 중국산 칩에 의존하지 않듯, 중국 정부도 미국산 보안 민감 칩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업적·선의의 용도로 미국 칩을 허용하는 것은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기술 용어 풀어보기

※1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이란, 칩을 기판에 실장하기 전 여러 반도체 칩렛(chiplet)을 3차원으로 적층하거나 초미세 범프로 연결해 전력 효율과 성능을 높이는 과정이다. 고성능 AI GPU는 열 관리와 신호 지연 감소가 중요해 첨단 패키징 의존도가 높다.

※2 백도어(Backdoor)는 소프트웨어·하드웨어에 은밀히 삽입된 보안 취약점으로, 제작자가 아닌 제3자가 원격으로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게 하는 통로를 가리킨다. 국가 간 사이버 안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반도체 칩이 ‘백도어’ 우려의 새로운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향후 전망

업계는 중국 정부의 보안 검사 결과와 미중 무역·안보 협상의 향방이 H20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H20 심사가 장기화될 경우, 중국 빅테크들은 이미 확보한 재고를 우선 소진하거나, 화웨이·바이두·하이실리콘 등의 국산 AI 칩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세계 2위 AI 수요 시장인 중국을 잃을 수 없지만, 동시에 미국 정부 규제도 준수해야 하는 복잡한 지정학적 딜레마가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