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로이터) — 미국계 대형 은행 웰스파고(Wells Fargo)가 자사 직원 한 명이 중국을 떠나지 못하게 되자 모든 중국 출장을 전면 중단하기로 하면서, 외국계 기업 고위 임원들이 중국 사법·행정 조사에 얽혀 출국 금지 또는 구금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25년 7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웰스파고는 “고객·직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선제적 조치”라며 중국 출장 제한을 내부 지침으로 공식화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외국 기업 임원들이 중국 정부의 산업 스파이 방지법 및 데이터 보안법 등과 관련된 조사에 연루돼 출국이 제한되는 사례가 늘어난 흐름을 반영한다.
이번 조치로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서의 법적 리스크 관리와 컴플라이언스(준법 경영) 강화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특히 외국 기업 CEO들이 중국 내 자산과 인력을 보호하기 위해 현지 법무팀·외부 자문사와의 협업을 확대하는 추세다.
주요 사례 (연도순)
• 일본 제약사 아스텔라스파마(Astellas Pharma) — 베이징 법원은 2025년 7월 해당 기업의 일본인 직원을 간첩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 형에 처했다. 그는 2023년 3월부터 구금돼 있었으며, 1년 전 기소됐다. 중국 법원은 “국가안전을 위협했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 미국계 리스크 자문사 민츠그룹(Mintz Group) — 2023년 베이징 사무소 현지 직원 5명이 무허가 통계 조사 혐의로 구금됐다. 2024년 7월 중국 당국은 민츠그룹에 1백50만 달러(약 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싱가포르 국적의 임원 또한 장기간 출국 금지(Exit Ban) 상태였던 것으로 로이터는 전했다.
•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 2024년 중국법인 사장 리온 왕(Leon Wang)이 구금돼 조사를 받고 있다. 회사 측은 “조사 내용에 접근할 수 없으며, 왕 사장은 2023년 12월부터 무급 장기 휴직 상태”라고 밝혔다. 중국 매체들은 2021년부터 폐암 치료제 타그리소(Tagrisso) 유전자 검사 결과 조작 및 보험 사기 혐의가 제기됐다고 보도해 왔다.
• 일본 노무라홀딩스(Nomura Holdings) — 2023년 말, 투자은행 부문을 맡은 찰스 왕 중허(Charles Wang Zhonghe) 회장이 출국을 제한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2024년 초 출국 금지가 해제돼 그는 다시 홍콩으로 복귀했다.
• 미국계 리스크 컨설팅사 크롤(Kroll) — 2023년 9월 마이클 챈(Michael Chan) 전무가 홍콩 여권을 소지했음에도 중국 본토를 떠날 수 없었다.
“챈과 회사 자체는 피의자 신분이 아니며, 과거 사건 관련 참고인조사에 협조 중”
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 스위스계 은행 UBS — 2018년 싱가포르 기반 UBS 자산관리 임원이 중국 당국 조사 협조 명목으로 출국 금지됐다. 당시 UBS와 경쟁 은행들은 직원들에게 “중국 출장 전 신중 검토”를 권고했다.
용어 설명
Due Diligence(실사)란, 인수·합병(M&A)이나 새로운 사업 진출 전 대상 기업의 재무·법률 위험을 다각도로 점검하는 절차다. 중국은 2023년 데이터 보안법 시행 이후 외국계 실사·컨설팅 업체들에 대해 “국가통계·지도 데이터 무단 반출” 가능성을 문제 삼으며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Exit Ban(출국 금지)은 수사·재판·행정 절차가 끝날 때까지 당사자가 국외로 나가지 못하도록 여권과 항공권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다. 중국 형사소송법 117조는 도주·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경우 출국 금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홍콩 중문대학(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의 장웨이 국제법 교수는 “외자 기업은 조사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현지 직원이 정부 접촉 시 자칫 형사 절차로 번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데이터 국유화 흐름이 강화되는 만큼, 고용 계약·정보 보안 프로토콜 재점검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국제 로펌 베이커맥켄(Baker McKenzie) 베이징 사무소 파트너 변호사는 “출국 금지가 회사 운영 리스크뿐 아니라 임원 개인의 경력에도 심각한 타격을 준다”며 “폴리티컬 리스크 보험과 같은 대체 금융수단을 통해 위험을 헤지(hedge)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 관점에서 보면, 중국 정부가 국가안보 우선 정책을 굳건히 하는 한, 외국계 기업은 단순 영업 활동이라도 정치·외교 변수에 따라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향후 미·중 관계 완화 여부, 중국 내수 경기 부양 속도, 그리고 해외 직접투자(FDI) 유치 전략이 어떤 균형점을 찾느냐에 따라 외국계 기업의 중국 위험 지도는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2024년 9월 시행 예정인 개인정보처리 연합 가이드라인(가칭)이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외국 기업의 데이터를 규제할지에 따라, 다국적 기업의 중국 내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하면, 최근 사례는 모두 업종·국적이 제각각임에도 “데이터·기술·통계”가 조사 핵심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기업은 오픈소스 정보 활용 범위와 내부 보고 라인 투명성을 명확히 하고, 필요 시 컨설팅 업무를 중국 현지 합작사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