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프라이데이? 아니다. 사이버 먼데이? 아니다. 프라임 데이? 전혀 아니다. 세계 최대의 쇼핑 행사는 매년 중국에서 열린다. 이름하여 싱글즈 데이다.
원래는 밸런타인데이에 맞서는 ‘솔로들의 날’로, 혼자임을 축하하는 기념일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수주간 이어지는 온라인 쇼핑 축제로 확대됐다. 올해 일정은 10월 9일 시작해 11월 11일에 종료되며, 이는 사상 가장 긴 싱글즈 데이 판매 기간이다. 2025년 11월 11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이 행사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지만 그 양상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싱글즈 데이는 언제 시작됐나
싱글즈 데이의 아이디어는 1993년 중국 난징대학교에서 출발했다. 당시 ‘Bachelor’s Day’(총각의 날)로 불렸으며, 미혼자들이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친구들과 모임과 파티를 여는 날이었다.
소비자들은 얼마나 지출하나
지난해 싱글즈 데이(또는 ‘Double 11’) 기간 동안 판매된 상품 총액은 데이터 제공업체 Syntun에 따르면 1조4,400억 위안(약 2,020억 달러)이었다. 이는 Adobe Analytics 집계 기준, 같은 해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부터 사이버 먼데이까지 이어지는 사이버 위크 기간 중 미국 소비자 지출 411억 달러의 거의 다섯 배에 달한다.
사이버 먼데이는 블랙프라이데이 직후에 이어지며,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추수감사절 다음 날로, 미국에서 1년 중 가장 번잡한 쇼핑일로 꼽힌다. 다만 중국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은 성장세 둔화를 겪고 있으며, 싱글즈 데이 판매 기간을 길게 늘리고, 보조금과 쿠폰을 대거 제공해 지갑을 열고 있다. 지난해 판매 증가율 27%는 전반적인 축제 기간이 더 길어진 영향이 컸다는 평가다.
올해 알리바바 그룹(Alibaba)은 싱글즈 데이 기간 동안 자사 88VIP 회원을 위해 500억 위안 규모의 보조금을 약속했다. 최근 몇 년간 싱글즈 데이는 중국 내 또 다른 대형 쇼핑 축제의 약진으로 신선함이 일부 희석됐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중국의 중년(中年) 쇼핑 축제 ‘618’은 규모 면에서 두 번째로 크며, 이 또한 수주에 걸친 행사로 길어지고 있다.
무엇을, 어디서 사나
알리바바는 2009년 ‘더블11’을 시작해 대규모 할인과 판촉으로 온라인 쇼핑객을 공략했다. 현재는 중국의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 대부분이 이 행사에 참여한다. 징둥닷컴(JD.com)은 2012년 합류했고, PDD 홀딩스 산하 핀두오두오도 저가 공세를 앞세워 알리바바의 티몰·타오바오와 정면 경쟁하는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지난해에는 가전제품 1,500억 위안 규모의 국가 보조금 적용 품목이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다만 올해는 높아진 기저효과로 해당 카테고리의 역성장이 예상된다. 노무라 애널리스트들은 10월 보고에서 중국 4분기 가전 판매가 2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즉시 소매(instant retail)도 올해 핵심 포커스다. 이는 온라인 주문 상품을 약 1시간 내 배송하는 채널을 뜻한다. 알리바바와 JD.com은 2025년 내내 신속 배송 채널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수십억 위안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해당 채널은 전통적 이커머스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누가 수혜를 기대하나
글로벌 기업들도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존재감이 크다. 나이키부터 에스티로더, P&G에 이르기까지 많은 해외 브랜드가 티몰과 JD.com 등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2022년 말 중국의 방역 규제 해제 이후, 중국 쇼핑 축제의 특징은 적극적인 가격 인하였다. 그럼에도 거시경제 도전과 장기화된 부동산 위기 속에서 소비 전반은 부진하고, 가계의 저축 성향은 높아진 상태로 남아 있다.
알리바바에 따르면, 올해 판매 시작 첫 1시간 동안 나이키, 로레알, 중국 로컬 기업인 안타, 프로야 등 35개 브랜드가 1억 위안 이상의 상품을 판매했다. 한편 JD.com은 싱글즈 데이 판매가 시작된 지 며칠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 ‘히트’ 상품 10만 종을 연중 최저가로 선보이고, 롱존(내복) 5만 벌을 배송비 포함 1벌당 2위안에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은 올해 강한 수요가 기대되는 품목으로 꼽힌다. 애플의 아이폰 17 시리즈와 샤오미의 17 시리즈가 9월 출시된 점이 반영될 전망이다.
알리바바에 따르면, 애플 티몰 스토어의 아이폰 판매는 판매 개시 후 첫 2시간 만에 전년 같은 기간의 하루치 총판매를 넘어섰다.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핵심 수치 요약
• 2024년 싱글즈 데이 매출: 1조4,400억 위안 (Syntun)
• 미국 사이버 위크 지출: 411억 달러 (Adobe Analytics)
• 전년 증가율: 27%
• 알리바바 88VIP 보조금: 500억 위안
• 가전 보조금 프로그램 규모: 1,500억 위안
• 노무라: 4분기 가전 판매 20% 감소 전망
환율 참고: 1달러 = 7.1230위안
용어 가이드: 알아두면 좋은 핵심 개념
• 싱글즈 데이(Singles’ Day): 11월 11일(숫자 ‘1’이 네 개라서 ‘혼자’의 상징) 진행되는 중국 최대 쇼핑 행사다. 중국 내에서는 더블 11(Double 11)로도 불린다.
• 더블 11(Double 11): 11월 11일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싱글즈 데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알리바바가 2009년부터 대규모 판촉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쇼핑 축제로 자리 잡았다.
• 블랙프라이데이·사이버 먼데이·사이버 위크: 미국의 연말 쇼핑 대목을 구성하는 대표 행사들이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추수감사절 다음 날, 사이버 먼데이는 그 직후 온라인 특가 판매일, 사이버 위크는 이 기간을 아우르는 통칭이다.
• 618: 중국의 또 다른 대형 쇼핑 축제로, 해마다 중반기에 열리며 최근에는 기간이 몇 주로 확대되는 추세다.
• 88VIP: 알리바바의 유료 멤버십 프로그램으로, 싱글즈 데이 기간 특별 보조금과 혜택이 제공된다.
• 티몰(Tmall)·타오바오(Taobao):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대표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브랜드 공식관 성격의 티몰과 오픈마켓 성격의 타오바오가 병행된다.
• 핀두오두오(Pinduoduo): PDD 홀딩스 산하의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저가 공세와 소셜 커머스 요소로 성장했다.
• 즉시 소매(Instant Retail): 주문 후 약 1시간 내 배송하는 초고속 유통 채널을 뜻한다. 올해 싱글즈 데이에서 전략적 비중이 커지고 있다.
분석과 시사점: 길어진 행사, 얇아진 마진, 달라진 승부
1) ‘기간 확장’이 만드는 착시와 현실 전년 27% 성장의 배경이 행사 기간 연장이라는 점은, 단위기간당 판매 효율이 약화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중국 이커머스 전반의 성장 둔화와 구조적 경쟁 심화를 반영한다. 플랫폼들은 보조금·쿠폰을 무기로 체류시간과 전환율을 끌어올리지만, 마진 희석을 감수해야 한다.
2) ‘즉시 소매’의 전략적 부상 1시간 내 배송은 물류·IT·오프라인 망의 동시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알리바바와 JD가 수십억 위안 규모로 보조금을 투입하는 것은, 속도가 차별화 포인트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단기적으로 비용 부담이 크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충성도 높은 고객 락인과 광고·멤버십 수익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3) 카테고리 믹스 변화 가전 보조금의 기저효과로 해당 카테고리는 숨 고르기가 예상된다. 그 빈자리를 스마트폰 등 신제품 사이클이 메우는 양상이다. 올해 아이폰 17·샤오미 17 출시 효과가 신제품 선호층을 공략하면서, 프리미엄-가성비 양극화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
4) 글로벌 브랜드의 가격전 나이키·로레알·에스티로더·P&G 등은 중국 플랫폼의 트래픽을 놓칠 수 없다. 그러나 공격적 할인은 브랜드 가치 훼손 리스크와 마진 저하를 동반한다. 이에 따라 브랜드들은 한정판·기획 세트·회원 전용 혜택 등으로 가격 외의 차별화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5) 소비 심리와 정책 변수 거시 불확실성과 부동산 침체 속에서 저축 성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대형 쇼핑 페스티벌은 여전히 소비 촉매 역할을 한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카테고리별 수요를 재배치하고, 플랫폼의 가격 전략은 단기 수요를 당겨온다. 다만 장기적 회복은 가계소득·신뢰 회복이라는 더 큰 변수를 필요로 한다.
결론적으로, 싱글즈 데이는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의 쇼핑 이벤트다. 그러나 성장의 질은 기간 연장과 보조금에 좌우되고 있으며, 경쟁의 축은 배송 속도와 가격 효율, 그리고 브랜드 경험으로 재편되고 있다. 올해 아이폰 판매의 초기 급증과 JD의 초저가 전략, 알리바바의 멤버십 보조금은 이런 변화를 응축해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