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동차 업계가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은 13일부터 완성차·부품사를 대상으로 미국산 반도체와 관련된 차별·덤핑 여부에 관한 의견 수렴에 돌입한다고 19일 밝혔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CAAM은 공식 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중 무역‧기술 정책이 자국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겠다”고 발표했다. 협회는 10월 13일까지 업계 의견을 취합한 뒤, 중국 상무부와 공동으로 후속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는 특정 국가의 차별적 관행이 중국 자동차 산업의 기술 자립도와 국제 경쟁력에 미치는 장단기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 핵심” — CAAM 관계자
협회는 구체적으로 △미국 상무부 수출 통제 리스트 탑재에 따른 칩 공급 차질 △가격 인상 혹은 가격 차별 사례 △기술 이전 제한으로 인한 R&D(연구개발) 지연 등을 점검한다.
왜 ‘반도체’가 자동차 업계의 급소인가*
차량용 반도체는 엔진 제어, 전동화,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등 핵심 시스템의 ‘두뇌’ 역할을 한다. 특히 전기차(EV)·스마트카 비중이 급증하면서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칩 수는 내연기관차 대비 2~3배 이상으로 폭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수출 규제는 단순히 부품 수급 차원을 넘어 미래차 패권과 직결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CAAM이 조사에 착수한 시점은 9월 13일 중국 상무부가 미국산 반도체에 대한 차별·덤핑 조사(Trade Barrier Investigation)를 개시한 직후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자국 반도체 기업을 부당 지원하면서 동시에 중국 기업을 배제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용어 속뜻 살펴보기초심자용
덤핑은 국제 무역에서 한 기업이나 국가가 자국 생산품을 해외 시장에 제조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대량 판매해 경쟁사를 고사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차별(discrimination)은 특정 국가나 기업만을 표적으로 삼아 불리한 조건을 적용하는 무역 관행을 의미한다.
전문가 시각과 업계 파급효과
베이징 소재 컨설팅 기업 시노오토 인사이트의 저우웨이 수석연구원은 “미국 제재가 장기화될수록 중국은 국산 반도체 자립 로드맵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이번 조사는 국내 파운드리(위탁생산) 투자 확대 명분을 제공하는 동시에, 다국적 완성차·부품사에 ‘중국 내 생산 비율을 높이라’는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중국이 전 세계 차량용 MCU(마이크로 컨트롤 유닛) 시장에서 차지한 점유율은 4%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중국 정부와 민간기업의 합산 반도체 설비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37% 급증했다. 자동차 기업들이 ‘탈(脫)미국’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이 벌써부터 감지되는 이유다.
중·미 고위급 회담 앞두고 기선제압?
눈에 띄는 점은 조사 개시일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예정된 제4차 중·미 상무장관 회담 하루 전이란 점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이 외교 무대에서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동차·반도체라는 민감한 카드를 전략적으로 꺼내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향후 시나리오로는 ①CAAM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중국 정부가 미국 칩 제조사에 과징금·수입 제한 조치를 부과하거나, ②양국이 부분적 타협안을 도출해 ‘조건부 해제’를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어느 쪽이든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
한국 반도체·자동차 부품사는 ‘미·중 양다리 전략’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은 중국의 수요 확대를 기회로 삼을 수 있지만, 동시에 미국의 2·3차 제재 리스크도 상존한다. “거시적 헤징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AAM은 업계 의견 수렴이 마무리되는 즉시, 구체적 조사 범위·방법·일정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협회는 “모든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 공급사가 사실과 증거에 기반한 보고서를 제출해 달라”며 “정보가 사실과 다를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가 중국 반도체 생태계 자립 및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또 다른 변곡점을 만들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