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SHANGHAI발‒미국 소비자들이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인공(가짜) 트리와 각종 장식을 구매하려 할 경우, 선택지는 줄어들고 가격은 올라갈 전망이다. 이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가 계속 적용되면서 주요 소매업체들이 주문 물량을 축소하고 소비자 지출 여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18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워싱턴과 베이징이 8월 11일에 합의한 90일간의 ‘관세 유예 연장’은 일부 긴급 물량을 공수(항공 운송)할 시간은 벌어 줬지만, 이미 대다수 크리스마스 제품 주문·통관 작업은 완료된 상태다. 크리스마스 관련 상품은 통상 리드 타임(제작·운송까지 걸리는 기간)이 최소 6개월 이상이기 때문에, 늦어도 여름 초에는 발주가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뉴저지주에 본사를 둔 인공 트리 수입업체 ‘내셔널 트리 컴퍼니(National Tree Company)’의 크리스 버틀러 최고경영자(CEO)는 “올해는 물량 자체가 줄어든 해가 될 것”이라며 “대형 유통사 월마트(Walmart)NYSE:WMT, 홈디포(Home Depot)NYSE:HD, 로우스(Lowe’s)NYSE:LOW, 아마존(Amazon)NASDAQ:AMZN 등에 공급되는 ‘캐롤라이나 파인’, ‘노르딕 스프루스’, ‘던힐 전나무’ 모델 가격을 10~20% 인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버틀러 CEO는 “소비자 수요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과잉 재고를 떠안고 싶지 않아 공급사에 오버바잉(초과 발주)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셔널 트리는 전체 물량의 절반가량을 중국에서, 나머지를 베트남·캄보디아·태국에서 조달한다. 그는 “대형 유통사들이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예년보다 직배송(Direct-to-Consumer) 방식 선호가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캘리포니아주 소재 경쟁사 ‘발삼 힐(Balsam Hill)’의 맥 하먼 CEO 역시 “시장에 풀리는 인공 트리는 지난해보다 약 15%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90일 추가 유예가 발표됐지만 지금 시점에서 추가 주문을 넣기엔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하먼 CEO는 전체 80여 개 공급사 중 절반이 중국에 위치해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 시절 관세가 145%까지 올랐다가 한 달 뒤 30%로 낮아진 전력을 경험한 소매업체들은 고가 재고를 두려워해 주문을 미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번 일시 정지 덕분에 250만 달러(약 33억 원) 규모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기준 미국 크리스마스 장식품 수입의 87%를 차지하며, 총 4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즉, 공급망 차질은 가격과 물량 모두에 즉각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형 유통사·제조업체의 셈법
월마트 대변인은 로이터에 “연말 재고 포지션에 자신 있다”고 밝혔지만, 홈디포와 아마존은 논평을 거부했고, 로우스는 답변하지 않았다. 관세 불확실성을 우려한 소매업체들은 트리뿐 아니라 장난감, 의류, 신발 등 다른 시즌 상품 발주도 최소화하고 있다.
브래츠(Bratz) 인형을 만드는 MGA 엔터테인먼트의 이삭 라리안 CEO는 “완구에 매겨지는 30% 관세도 여전히 과하다”며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NYSE:LEVI는 지난달 “이번 연휴 시즌에는 제품 구색을 간소화한다”고 밝혔다.
공급망 전문 분석가 크리스 로저스(S&P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는 “관세 유예로 실제 혜택을 보려면 제품을 항공편으로 들여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애플(Apple)NASDAQ:AAPL처럼 신제품 출시가 예정된 기업은 30% 관세 수준이 확정된 만큼 가격 책정과 재고 전략에 변동성이 줄었다는 이점이 있다.
산업계 소식통들에 따르면 일시 정지가 발표된 직후 일부 공급업체·운송사·소매업체가 추가 주문을 서둘러 넣었지만, 과거 1차·2차 관세 충격 이후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지를 옮긴 브랜드들은 신규 공장 라인 증설이 늦어지면서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물류회사 DCL 로지스틱스의 데이브 투 사장은 “새로운 제조사가 풀가동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걸려 추가 주문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제·투자적 함의
전문가들은 관세 연장조치가 단기적인 가격 급등을 막아주진 못할 것이라며, 특히 고정비 비중이 높은 중소 소매업체일수록 재고·현금흐름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물가 상승률이 완만해지고는 있지만, 기저 생활필수품 가격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가짜 트리 가격마저 오르면 연말 소비 심리가 추가로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일부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소비자들이 인공 트리 구매를 미루거나 재활용률을 높이면 실제 크리스마스 관련 매출은 하향 안정화될 수 있다”고 관측한다. 관세가 장기전으로 번질 경우, 기업들은 더 공격적인 ‘조달처 다변화’나 ‘서플라이체인 리디자인’ 전략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FDRA(미국 신발유통협회)의 매트 프리스트 CEO는 “연말 재고는 이미 결정된 셈이다. 관세 유예는 근본적 변화를 주기엔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요약하자면, 이번 90일 유예는 소매업체들에 숨통을 조금 틔워주었을 뿐, 글로벌 공급망과 소비자 물가 구조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다. 크리스마스 장식품 시장에서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란 사실이 변하지 않는 한, 관세 정책 변동이 지속될 경우 ‘가격 인상→수요 감소→주문 축소’의 악순환이 재현될 여지가 크다.
• 용어 설명
‒ 관세 유예(truce·reprieve): 기존 또는 예정된 관세 부과를 일정 기간 보류하는 조치.
‒ 리드 타임(Lead Time): 발주부터 생산·배송 완료까지 걸리는 총시간.
‒ 모라토리엄(Moratorium): 법적 의무 이행이나 제재를 일시 중단하는 조치.
‒ D2C(Direct-to-Consumer): 제조·유통사가 중간상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