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불안과 부채 증가로 흔들리는 프랑스 재정 신뢰도

프랑스의 재정 건전성이 다시금 시험대에 올랐다. 정치적 혼란과 악화되는 공공 재정이 맞물리면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는 프랑스의 국채 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는 세 대형 신용평가사 가운데 첫 강등 사례로, 무디스(Moody’s)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조만간 같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2025년 9월 15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번 등급 하향은 정치적 불확실성지속적인 재정 악화라는 두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특히 프랑수아 바이루(François Bayrou) 총리가 의회 불신임 투표(no-confidence vote)에서 패배해 사임한 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이 세바스티앵 르코르뉴(Sébastien Lecornu)를 새 총리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권력 공백이 불거졌다. 신임 총리는 의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 2026년 예산안을 제출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정치 기반이 취약하면 구조적 개혁이나 지출 삭감이 요원해지고, 결과적으로 재정 신뢰도(fiscal credibility)는 더 빠르게 저하될 수 있다.” – ING 이코노미스트

이와 같은 전문가 분석은, 불안정한 정치 환경이 재정 긴축 추진력에 직접적인 제약으로 작용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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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지표의 ‘경고등’은 이미 여러 숫자로 드러난다. 새로운 정책이 없을 경우 2026회계연도의 정부 지출은 5,110억 유로 증가하고,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1%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브뤼셀(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제출된 목표치 4.6%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국가부채는 2024년 GDP 대비 113%에서 2029년 125.3%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2023년 기준 사회복지·보건 지출이 GDP의 32.3%를 차지해 EU 평균을 상당히 상회하는 구조적 부담이 지적된다. 잠재 성장률이 약 1.2%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출을 감당하기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세율 역시 숨통을 조인다. 프랑스의 조세부담률(tax-to-GDP ratio)은 이미 45.6%로 EU 최고 수준이어서, 증세 여력은 제한적이다. 결과적으로 재정 건전화(fiscal consolidation)의 핵심은 지출 억제 외에 다른 카드가 거의 없다.

그러나 정국 불안은 대대적 개혁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ING는 “총리가 가까스로 직을 지키더라도, 그 대가로 재정 긴축 강도는 약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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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반응은 비교적 차분하다. 프랑스 10년물 국채와 독일 분트(Bund) 간 스프레드는 일시적으로 확대됐다가 80bp(베이시스포인트) 안팎에서 안정됐다. 현재 프랑스 국채 스프레드는 이탈리아와 유사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어, 투자자들이 이미 등급 하향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기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등급 상향을 받은 반면 프랑스가 첫 AA 등급을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프랑스의 상황이 ‘특이적(idiosyncratic) 리스크’로 인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채권 시장도 견조하다.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 다농(Danone), 로레알(L’Oréal) 등 일부 블루칩 기업채는 프랑스 국채보다 낮은 금리로 거래되기도 했다. 이는 프랑스 정부보다 개별 기업에 대한 신뢰가 상대적으로 높음을 반영한다.


용어 설명 및 맥락

*신용등급(sovereign rating)은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의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다. 등급이 하락하면 차입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스프레드(spread)는 두 채권 수익률의 차이를 의미하며, 위험 프리미엄을 가늠하는 잣대다.
*베이시스포인트(basis point)는 0.01%포인트를 뜻한다.
*재정 건전화는 지출 삭감·세수 확충 등을 통해 재정수지를 개선하는 과정을 말한다.


정치 권력 교체가 반복되면서 3% 적자 목표(2029년)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장 신뢰는 약화되고 있다. 2024년 이후 잇따른 내각 교체와 과거 긴축 계획이 번번이 보류된 전례는, 재정 규율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우려를 낳는다.

노동조합이 새 시위를 준비하고 연정 협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불확실성은 2027년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기자 해설 – 프랑스 국채를 둘러싼 세 가지 관전 포인트

금리 환경: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기조에 따라 프랑스 국채 금리가 얼마나 추가 상승할지가 핵심 변수다.
정치 합의: 2026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초당적 합의가 나오면 시장 신뢰 회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EU 재정 규칙 복원: 2024년 재도입된 재정준칙(Deficit <3%, Debt <60% of GDP)이 실제로 집행될 경우, 프랑스는 구조적 지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결국 프랑스의 재정 신뢰도는 정치적 리더십과 구조적 개혁 의지라는 두 축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회복될 전망이다. “등급이야 떨어질 수 있지만, 신뢰는 정책으로 다시 세울 수 있다”는 말처럼, 향후 몇 년간의 정책 선택이 프랑스 경제의 궤적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