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Reuters)―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3년 차에 접어든 가운데 방위비 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 인상과 재정 지출 삭감을 준비하고 있다. 관료들과 경제학자들은 과도한 군사비가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2025년 8월 2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쟁이 러시아 경제를 죽이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지만, 석유·가스 수입 감소와 함께 예산 적자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서방의 제재 압박으로 에너지 수출 수익이 줄어드는 반면, 2025년 러시아의 국방·안보 예산은 17조 루블(총지출의 41%, 냉전 이후 최고치)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민간 부문의 생산 감소를 상쇄하며 성장률을 지탱하는 동시에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 교착된 외교·군사 상황
푸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알래스카 회담에서 휴전에 합의하지 못했다. 러시아로서는 즉각적인 평화 협정
체결이 최선이지만, 교착 국면이 길어지면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경제 성장은 점차 식어가고 있으며 일부 관료는 경기 침체 위험을 경고한다. 기준금리가 20년 최고치에서 하락 중이지만, 2025년 1~7월 정부 재정 적자는 이미 4조9,000억 루블(약 61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정부가 현재 의무 지출을 이행하고 전쟁을 기존 속도로 계속 지원하기가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경제 지표가 기대보다 부진하고, 석유·가스 수익이 줄어든 만큼 재정 긴축(fiscal consolidation)을 서둘러야 한다.” ― 아나톨리 아르타모노프(연방상원 예산위원장)
■ 방위비 삭감은 ‘언제쯤’
푸틴 대통령은 6월 군사비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고 밝혔지만, 정부 내부에서는 적어도 2026년까지는 국방비를 줄이기 어렵다
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 소식통은 “휴전이 성사되더라도 포탄과 드론을 계속 생산해야 한다”며 “서방의 국방비 증액 속도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르타모노프 위원장은 일간 RBC 기고에서 2028년까지 매년 2조 루블을 비군사 부문에서 줄여 국방 예산에 재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향후 3년간은 지금만큼 편안하게 지낼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 교육·보건 예산 축소 신호
런던 NEST센터의 세르게이 알렉사셴코 전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는 “올해 처음으로 교육과 보건 예산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뚜렷이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물가상승률(6~7%)보다 낮은 수준으로 연금 등 복지지출을 인덱싱해 실질 삭감 효과를 노릴 것으로 전망했다.
재무부 소식통은 “세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방위비를 줄이더라도 석유·가스 수익 감소분을 메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도 4월 각 부처에 “지출 요구를 자제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 고금리·저성장 악순환
네트 부채·GDP 비율이 20% 안팎으로 낮아 여유가 남아 있지만, 재정 긴축은 성장 압력을 더 키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리엄 피치 수석 이머징 마켓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경제는 고금리와 전쟁 비용의 이중 부담에 시달리고 있으며,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센트로크레딧은행의 예브게니 수보로프 이코노미스트는 2025년 연간 적자가 최대 8조 루블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예정된 2025년 지출 목표(42조3,000억 루블)를 맞추려면 8~12월 실질 지출을 전년 대비 20% 가까이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적자가 예상보다 커질 수 있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재정 긴축(Fiscal Consolidation)은 정부가 부채 비율과 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출을 삭감하거나 세수를 늘리는 정책을 통칭하는 경제 용어다. 통상적으로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위험이 있지만, 국가 신용도 방어와 장기적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행된다.
GDP 대비 국방·안보 지출은 해당 국가가 국내총생산에서 방위·치안 부문에 투입하는 예산 비중을 의미한다. 비율이 높을수록 민간 부문 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현재 러시아의 예산 상황은 안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원자재 수입 감소와 고정화된 대규모 방위비가 지속될 경우, 러시아 경제가 저성장·고물가·고금리의 3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환율 기준: 1달러=80.35루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