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발 —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수장인 제롬 파월 의장이 와이오밍주 잭슨홀 경제심포지엄에서 예정된 연설을 앞두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여름철 거래량이 얇은 8월 특유의 유동성 부족 속에, 연설 한마디가 주식·채권 가격을 급격히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25년 8월 2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월가 대부분은 파월 의장이 가까운 시일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과한 추가 관세가 물가 상승 압력을 재점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해, 파월 의장이 지나치게 비둘기파(완화적) 메시지를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지표와 고용 시장 사이에는 정책의 외줄이 놓여 있다. 여기에 통상 존재하지 않는 정치적 외압까지 더해지면서, 파월 의장은 극도로 복합적이고 까다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라고 누빈(Nuveen)의 채권 전략 책임자 토니 로드리게스는 진단했다.
상황을 더욱 긴장시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장악 시도다. 트럼프는 8월 21일 연방준비제도 이사인 리사 쿡에게 모기지 관련 의혹을 이유로 사임을 압박했다. 쿡 이사는 “협박에 굴할 의사가 없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퍼스트이글 인베스트먼트(First Eagle Investments)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이다나 아피오는 “이번 잭슨홀은 연준 독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할 절호의 기회“라며, 정치 압박이 결국 더 완화적인 연준 이사회를 낳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7월 고용보고서가 부진했고, 이전 수치가 대폭 하향 조정되면서 시장은 연준이 올해 말 4.25%~4.50%의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 급등으로 9월 회의에서 0.50%p ‘빅 컷’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25bp(0.25%p) 두 차례 인하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까지 소비자들은 관세 인상의 직접적 충격을 크게 체감하지 않았으나, 향후 몇 달 안에 가격 전가가 가계로 번질지 여부가 불확실하다.
스테이트스트리트 투자운용(State Street Investment Management)의 마이클 아론 수석 전략가는 “파월이 9월 17일 금리 인하 재개를 시사하면 시장은 환호하겠지만, 관세발 인플레이션이라는 미지수를 고려해 향후 정책 경로에 대해선 말을 아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동성 경고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파월이 조기 완화 기대를 차단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다. 8월 마지막 금요일이라는 달력 효과, 계절적 유동성 부족이 겹치면 작은 발언도 시장을 급격히 요동시킬 수 있다.
로드리게스는 “8월 넷째 주 금요일이라는 시점 자체가 시장에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파월 연설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공포 속에 나온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높은 물가가 동시에 발생하는 상태로, 1970년대 미국 경제를 괴롭힌 바 있다. 당시 연준은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급격히 올렸고, 실업률은 급등했다.
D.A. 데이비드슨(D.A. Davidson)의 제임스 레이건 공동 CIO는 “만약 파월이 9월 인하 기대를 후퇴시키면 주가는 하락하고 단기 국채금리는 상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7월 생산자 물가 급등이 0.50%p 인하 가능성을 이미 지워버린 만큼, 이번 연설이 시장을 ‘실망’시키더라도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과거와 달라진 조건
2022년 잭슨홀에서 파월 의장은 고(故) 폴 볼커 전 의장을 언급하며 “인플레이션를 반드시 꺾겠다“는 강경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현재 물가상승률은 2% 목표를 약 1%p 초과하는 수준이고, 고용시장도 완만히 둔화됐지만 견조하다. 시장은 이번에는 보다 미세한 균형을 찾을 것으로 본다.
네버거버먼(Neuberger Berman)의 자산운용 총괄 셰넌 사코시아는 “균형 잡힌 메시지도 매파(긴축)로 해석돼 주식·채권 가격 변동을 유발할 수 있다”며 “고객들에게는 변동성을 대비하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용어 해설
잭슨홀 경제심포지엄은 미국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매년 8월 와이오밍주 휴양지 잭슨홀에서 주최하는 국제 경제 회의다.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학계·시장 전문가가 모여 글로벌 경제 현안과 통화정책 방향을 논의한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Stagnation(경기 침체)과 Inflation(물가 상승)의 합성어로, 침체 상황에서 물가만 오르는 악조건을 뜻한다. 통상 중앙은행은 물가 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하지만, 이는 경기 회복을 더 늦춰 정책 대응이 난해해진다.
베이시스 포인트(bp)는 1bp=0.01%p를 의미한다. 예컨대 25bp는 0.25%p, 50bp는 0.50%p다.
기자 관전 포인트
첫째, 정치적 압박이 연준 독립성을 훼손할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의 리사 쿡 사퇴 요구는 투자자들에게 정책 리스크를 재확인시켰다.
둘째, 관세발 인플레이션의 파급 범위다. 기업들이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얼마나 전가할지에 따라, 시장의 금리 인하 베팅은 크게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9월 FOMC 회의 전 발표될 8월 고용·물가지표다. 연준은 “데이터 의존적”이라고 줄곧 강조해 왔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지표도 시장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미묘한 발언 하나가 뉴욕 금융시장을 시험대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라면 변동성 확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포트폴리오 방어 전략을 재점검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