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8월 한 달간의 휴회를 마치고 워싱턴 D.C.에 복귀하면서,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셧다운(shutdown)은 의회가 예산안을 제때 통과시키지 못해 정부 부처가 부분적으로 문을 닫고 필수 인력만 근무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셧다운이 현실화되면 국립공원 폐쇄, 공무원 임금 지연, 각종 행정 서비스 중단 등 국민 생활과 금융시장에 광범위한 충격이 발생한다.
2025년 8월 31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공화당은 올여름 민주당 한 표 없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크고 아름다운(Big Beautiful) 법안“이라 불리는 대규모 감세·지출 삭감 법안을 통과시키며 일시적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9월부터는 민주당 협조 없이는 예산 연장조차 불가능해, 공화·민주 양당의 극한 대치가 불가피하다.
사진=Ken Cedeno | Reuters
① 셧다운 회피를 위한 단기 예산안 공방
연방정부 자금은 9월 30일부로 고갈된다. 통상 의회는 ‘CR(Continuing Resolution)’이라 불리는 단기 예산안을 통과시켜 몇 주 또는 몇 달간 자금을 연장한 뒤, 연말까지 전체 회계연도 예산안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은 민주당의 동의 없이는 상원을 통과할 60표를 확보할 수 없어, 어떤 형태로든 양당 타협이 필수적이다.
특히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3월 셧다운을 막기 위해 공화당과 손잡았을 때 당내 강경파로부터 “배신”이라는 거센 역풍을 맞은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사회복지 예산 유지 ▲국제개발·공영방송 자금 복원 등을 요구하며 예산 연장에 조건을 달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승인된 49억 달러의 대외 원조를 추가로 막겠다고 통보한 것은 의도적인 교착 유발 행위다.” –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D-코네티컷)
② 상원 인사 청문 절차 두고 규칙 개정 논란
상원은 휴회 직전까지 트럼프 행정부 고위직 인준을 두고 격렬한 지연전술을 펼쳤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타임 컨센트(Time Consent)’ 절차를 활용해 표결 시간을 최대한 늦췄고, 공화당 지도부는 토요일 임시 회기까지 열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진=Kent Nishimura | Reuters
공화당은 ‘규칙 22’ 개정을 통해 인사 표결 시 필요한 토론 시간을 대폭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는 소수당 권한을 약화시키는 선례가 될 수 있어,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③ 러시아 제재 법안 : 85명 초당적 지지, 그러나 트럼프는 침묵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R-사우스캐롤라이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는 국가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초당적 제재 법안을 주도하고 있다. 상원 100명 중 85명이 공동 발의에 서명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지지를 표명하지 않아 상정이 보류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별도 회동을 갖고 평화협상 의사를 시사했지만, 협상 이후에도 러시아군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그레이엄 의원은 “플랜 B를 가동할 때”라고 압박했다.
④ CDC(질병통제예방센터) 감독 청문회
로버트 F. 케네디 보건복지부 장관은 9월 첫째 주 상원 재무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CDC 수장 수전 모나레즈 경질 배경을 설명할 예정이다. 모나레즈 전 국장은 “비과학적이고 위험한 백신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빌 캐시디 상원의원(R-루이지애나)은 CDC 외부 자문위원회 회의를 의회 조사 전까지 연기할 것을 공식 요구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백신 회의론이 고조되면서, CDC의 과학 기반 정책이 흔들릴 가능성이 우려된다.
⑤ 하원, 에프스타인 수사 자료 공개 요구로 내분
하원은 고(故) 제프리 에프스타인 성매매·성착취 사건에 대한 추가 자료 공개를 두고 공화당 내 의견이 갈리고 있다. 로 칸나(D-캘리포니아), 토머스 매시(R-켄터키) 하원의원은 법무부에 전면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피해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사진=Anna Moneymaker | Getty Images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가 투명성을 약속하고도 번번이 번복했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에프스타인 의혹은 온라인 음모론의 온상으로, 추가 데이터 공개 여부가 정치·사회적 파장을 키울 전망이다.
⑥ 바이든 전 대통령 정신건강 조사
하원 감독위원회(위원장 제임스 코머·공화당)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정신건강을 조사하기 위해 9월에 제프 자이언츠 전 백악관 비서실장, 카린 장피에르 전 대변인, 앤드루 베이츠 수석 부대변인 등 측근 증언을 청취할 계획이다. 코머 위원장은 “가을 중 공개 청문회와 보고서 발표”를 예고했다.
⑦ 의원 개별주식 거래 금지법 급물살
이해충돌 논란을 없애기 위해 의원·행정부 고위직의 개별 주식 거래를 금지하자는 논의가 2012년 ‘STOCK법’(Stop Trading on Congressional Knowledge Act) 제정 이후 재점화됐다. 조시 홀리 상원의원(R-미주리)의 개정안은 향후 대통령·부통령까지 금지 범위를 확대하되, 트럼프 대통령은 면제하는 조항을 담아 논란이다.
하원에서도 초당적 의원들이 지도부를 우회해 프로시저(‘Discharge petition’)를 통해 본회의 표결을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고액 자산을 보유한 일부 의원들의 반발로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⑧ 경제·시장 파장: 투자자 주의보
셧다운이 현실화되면 국채 발행·신용등급·소비심리 등이 동시 압박을 받을 수 있다. S&P와 무디스는 과거 셧다운 기간 미국의 ‘AAA’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돌린 전례가 있다. 또한 CDC 예산 축소는 백신·바이오 섹터의 연구비 수주와 임상 일정에 직격탄을 줄 수 있어, 관련 기업 주가 변동성 확대가 예상된다.
러시아 제재 법안이 통과될 경우 에너지·원자재 시장에 급격한 가격 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투자자들은 국제유가·천연가스·우라늄 선물 가격과 관련 ETF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⑨ 용어 풀이 및 배경 설명
CR(Continuing Resolution) : 회계연도 종료 전까지 새 예산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 기존 수준으로 정부 지출을 잠정 연장하는 임시 예산안.
필리버스터 : 소수당이 법안·인사안 표결을 지연하기 위해 장시간 토론을 이어가는 의사진행 방해 전술.
STOCK법 : 의원이 직무상 비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를 금지하는 2012년 제정 연방법.
⑩ 향후 관전 포인트
첫째, 9월 30일 이전 셧다운을 피하려면 하원 보수 강경파와 상원 진보 진영 모두가 양보안을 수용해야 한다. 둘째, 상원 규칙 개정이 성사되면 인사 청문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셋째, 러시아 제재법·주식 거래 금지법 등 초당적 법안의 향방은 2026년 중간선거 구도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