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5,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로 美 대만계 반도체 공장 자금 지원 가능성 시사

도쿄발 – 일본 정부가 이번 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총 5,500억 달러(약 810조 엔)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패키지가 미국 내에서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인 대만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2025년 7월 26일, 로이터통신과 NHK는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외무성 경제 담당 수석교섭관의 발언을 인용해 “일본‧미국‧가치 공유 파트너국은 경제안보에 필수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해 공동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투자 패키지는 출자(equity)·대출(loans)·보증(guarantees)으로 구성되며, 일본이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하를 얻어내는 대신 마련됐다. 그러나 세부 구조와 운용 방식은 아직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 “대만 업체도 지원 대상” — 아카자와 발언

아카자와 수석교섭관은 NHK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며 지원 대상의 폭을 넓혔다.

“프로젝트의 국적은 일본이나 미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만계 반도체 업체가 미국에 공장을 세우고 일본 부품을 사용하거나 일본 시장 수요를 반영한 제품을 생산한다면 투자 패키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가 기업명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가 유력한 후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세 곳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한 곳은 이미 가동 중이다.


■ 숫자로 보는 핵심 포인트

  • 5,500억 달러 — 일본이 마련할 투자 총액
  • 1~2% — 출자가 차지하는 비중(아카자와 추정)
  • 90% — 미국이 보유할 출자 수익 지분(백악관 설명 기준)
  • 약 10조 엔(677억 달러) — 일본이 관세 인하로 절감할 것으로 추산되는 비용
  • 1000억 달러 — TSMC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발표한 미국 내 추가 투자 규모

■ 기관 및 법적 기반

일본 정부는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일본무역보험(NEXI)을 통해 자금을 집행할 계획이다. 최근 개정된 관련법에 따라 일본 공급망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해외 기업에 대해서도 JBIC가 직접 금융을 제공할 수 있도록 문턱이 낮아졌다.


■ 반도체 공급망과 경제안보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TSMC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본토와 근접해 있어 공급망 리스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배경에서 ‘친미(親美) 동맹국의 자본을 묶어 미국 내 생산거점을 확대’하려는 전략이 이번 투자 패키지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 협상을 통해 확보된 재원을 신속히 투입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현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점도 아카자와 발언에 드러난다. 그는 “투자 실행 속도를 높여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내에 대부분의 자금이 집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용어 풀이

JBIC(Japan Bank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는 일본 정부가 100% 출자한 정책금융기관으로, 해외 인프라·자원 개발·공급망 강화 프로젝트에 중장기 융자를 제공한다.

NEXI(Nippon Export and Investment Insurance)는 민관 합작 형태로 운영되는 무역보험 공사다. 일본 기업 또는 정부가 해외 사업을 추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정치·상업 리스크를 보험 및 보증 방식으로 줄여준다.

또한 파운드리(foundry)란 주문자(OEM)의 설계에 따라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사업 모델을 뜻한다. TSMC,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등이 대표적이다.


■ 기자의 시각

이번 합의는 투자 대가로 관세를 낮추는 ‘교환 조건’이 뚜렷해, 전통적 ‘시장 개방-대외 지원’ 모델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경제안보 딜(Economic Security Deal)로 평가된다. 일본 입장에선 관세 부담 10조 엔을 줄이면서도, 자국 부품·소재 산업의 대미 공급망을 복원할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투자 구조의 98~99%를 차지할 대출·보증이 실제로 민간 프로젝트에 얼마나 빠르게 집행될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금리 변동, 미·중 갈등 심화, 기술 규제 등 변수가 상존해 투자 회수 기간과 리스크 산정이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5,500억 달러 패키지는 단순한 해외투자 차원을 넘어 ‘공급망 재배치’라는 지정학적 과제와 직결돼 있다. TSMC 사례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향후 한국·유럽 업체로까지 지원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러나 ‘경제안보 동맹’의 명분 아래 특정 국가에 대한 직접 투자가 가속화될 경우, 글로벌 무역 규범이나 WTO 체제와의 충돌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