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본 최대 민간 발전사 제라(JERA)가 미국 셰일가스 생산 자산을 17억 달러에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최종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복수의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제라가 블랙스톤이 후원하는 지오서던 에너지(GeoSouthern Energy)와 파이프라인 운영사 윌리엄스 컴퍼니즈(Williams Companies)가 공동 보유한 GEP 헤인즈빌 II의 천연가스 생산 자산을 인수하기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제라는 셰일가스 생산 분야에 첫발을 내딛게 되며,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기업 가운데 하나로서 공급망 통제력을 대폭 강화하게 된다. 특히 인공지능(AI) 붐으로 전력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일본 내 데이터센터 확충에 대비해 안정적인 가스 조달 기반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의미가 크다.
■ 협상 구도 및 가격 세부 내용
관계자들에 따르면 제라는 최근 투자은행들이 진행한 자산 매각 입찰에서 미국 소재 복수의 에너지 기업들을 제치고 최고가 인수 후보로 부상했다. 다만 GEP 측이 여전히 다른 입찰자를 검토하거나 매각 자체를 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최종 계약 체결 여부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제라, 지오서던, 윌리엄스 세 회사 모두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을 거부
했다는 것이 로이터 통신의 설명이다.
■ 일본의 에너지 안보 전략과 미국 투자 확대
원유·가스 순수입국인 일본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한 에너지 가격을 겪으며, 우방국 중심의 공급선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산 천연가스 확보는 이런 전략의 핵심 축이다.
또한 과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협상 과정에서 미국 에너지 수입 확대를 일본·한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에 요구해 왔으며, 최근 타결된 미·일 무역 합의에도 일본이 연 7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한 바 있다.
제라는 도쿄전력홀딩스와 주부전력이 50 대 50으로 설립한 합작사로, 올해 들어 미국 LNG 공급망 참여 확대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지난주에는 알래스카 440억 달러 규모 LNG 수출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 검토를 위해 알래스카 가스라인개발공사와 공급 의향서(LOI)
를 체결했다. 컨설팅사 우드맥킨지를 고용해 1,300km 가스 파이프라인 타당성을 분석한 사실도 알려졌다.
■ GEP 헤인즈빌 II, 왜 매력적인가?
헤인즈빌 셰일가스층은 루이지애나·텍사스 주 경계에 걸친 미국 3대 가스 생산지 가운데 하나로, 멕시코만 연안 LNG 수출 시설과 가깝다는 지리적 장점이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이후에도 트럼프 시대에 승인된 신규 LNG 터미널 건설이 이어지면서 추가 파이프라인 수요가 예상돼 투자 매력이 높다.
컨설팅업체 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는 GEP 헤인즈빌 II의 2025년 연간 평균 생산량을 약 3억 1,750만 입방피트/일(mcfd)로 추정하며, 2028년에는 6억 1,400만 mcfd로 거의 두 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사모펀드들이 장악한 헤인즈빌 자산 매각 열기는 2021년 사우스웨스턴 에너지가 GEP 1세대 자산
을 18억 5,000만 달러에 인수한 사례에서 확인되듯, 고점에 수익 실현을 노리는 투자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셰일가스란 무엇인가?
셰일가스(shale gas)는 셰일층이라 불리는 치밀한 퇴적암에 갇힌 천연가스를 말한다. 전통적인 가스전과 달리 수압파쇄(hydraulic fracturing)와 수평시추(horizontal drilling) 기술을 활용해야 경제적 채취가 가능하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 셰일가스 혁명을 통해 세계 1위 가스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셰일 개발은 자원 자급률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지진 유발 가능성·지하수 오염 논란도 존재해 각국에서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따라서 기업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메탄 누출 관리와 저탄소 생산 기술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 전문가 관점: 제라의 전략적 함의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일본 입장에서 upstream(채굴) 자산을 보유하면 환율 변동·스폿 가격 급등 리스크를 상당 부분 헷지할 수 있다” — 국내 에너지경제연구소 LNG시장팀 관계자
일본은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며, 정부도 재생에너지와 가스 혼합 발전을 통해 탄소중립 과도기를 관리 중이다. 이에 따라 LNG-가스복합발전이 화석연료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브리지(가교) 연료’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라가 미국 가스전 지분까지 확보하면, 장기 오프테이크 계약과 직접 생산을 결합한 혼합 조달 모델을 구축하게 된다. 이는 과거 일본 정부·상사(상사)들이 중동 유전 지분을 통해 원유 가격 변동성을 낮춘 사례와 유사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 앞으로의 변수
업계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및 미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심사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 전략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일 동맹 강화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정치적 승인 가능성은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거래가 확정될 경우, 제라는 헤인즈빌 내 시추·생산·파이프라인 연결에 추가 자본지출(capex)을 투입해야 하며, ESG 보고·메탄 배출 감축 등 국제적 요구사항도 이행해야 한다.
반대로 협상이 결렬되면, 지오서던·윌리엄스는 IPO(기업공개)나 다른 해외국부펀드에 대한 매각, 혹은 자산 보유를 통한 중장기 수익 극대화 등 옵션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인수전은 일본 전력·가스 기업이 미국 셰일 업스트림에 직접 뛰어든 ‘첫 사례’라는 점에서, 향후 동아시아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