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로이터 – 일본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정책 마비가 장기화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러한 상황이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 일본은행(BOJ)의 다음 기준금리 인상 시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미 취약한 경기 전망을 더욱 흐리게 한다고 평가한다.
2025년 8월 11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시게루 이시바(石破茂) 총리는 집권 자민당(LDP) 내부에서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와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의 대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이시바 총리는 사퇴할 계획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지지율 하락으로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도부 교체가 재정 및 통화정책 전망에 중대한 파급효과를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난 금요일 열린 당 회의에서 의원들은 이시바 대표가 재임 중인 상태에서도 당대표 경선 개최를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자민당 규정에 따르면, 전체 국회의원과 지방 총재 과반이 동의할 경우 경선이 실시된다.
그러나 관련 절차를 잘 아는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당이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릴 시간은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들에 따르면 경선은 이르면 9월에 열릴 수 있다.
경선이 9월에 실시될 경우 새 행정부는 미국의 관세 조치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경기 부양 패키지를 편성할 시간이 확보된다.
그러나 9월이 넘어서까지 경선이 미뤄질 경우, 정부의 다음 회계연도 예산안 작성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내년 초로 연기될 공산이 크다.
“우리는 자민당이 9월에 리더십 선거를 요구하더라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UBS 애널리스트들은 리서치 노트에서 밝혔다.
일본에서는 재무성이 8월에 각 부처의 세출 요구를 취합하고, 12월 말 정부 초안을 확정한다. 예산은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4월 전에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정부는 준예산(stop-gap budget)을 편성해야 하는데, 이는 집행 지연으로 경기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일부 집권당 의원들은 교착 상태를 해소하려면 이시바가 자진 사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자민당 주도 연립여당은 양원 모두에서 과반을 상실해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과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야당들은 이시바 총리가 물러나지 않는 한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못 박았다.
사이토 겐 중진 의원은 “일본에는 안정적 연립정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관된 정책 추진은 불가능하다”며 “자민당은 새로운 지도자 아래에서 연정 파트너를 찾는 것이 최선”이라고 지난주 로이터에 말했다.
일본은행(BOJ)을 둘러싼 변수
이시바의 약화된 정치적 입지와 장기화되는 정치 불확실성은 BOJ가 언제 기준금리 인상을 재개할지에 대한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대다수 애널리스트는 9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10월·12월 또는 내년 1월에는 미국 관세의 실물경제 파급 효과에 대한 데이터가 확보돼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한다.
재정긴축주의자(fiscal hawk)로 알려진 이시바 총리는 10년 넘게 지속된 대규모 완화정책에서 점진적으로 출구를 모색하려는 BOJ의 노력을 지지해 왔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 목표를 3년 이상 웃돌고 있다.
그러나 참패 이후, 이시바 내각은 대규모 재정지출과 완화적 통화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더욱 취약해졌다.
야당들은 경기 부양에 집중해야 한다며 BOJ가 금리 인상을 보류하거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민당이 당대표 경선을 실시할 경우, 과거 금리 인상론을 “어리석다”고 비판해온 다카이치 사나에 등 리플레이션 성향의 후보들이 주목받게 된다.
이처럼 정치권의 압박이 고조되면 BOJ는 불필요한 정치적 주목을 피하기 위해 향후 수개월간 금리 인상 카드를 접어둘 수도 있다.
가즈오 우에다 총재는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2% 물가목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달성을 위해 적절한 정책을 계속 취해 나가겠다는 것뿐”이라며, 정치 변화가 통화정책에 새로운 요구를 제기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BOJ의 사고방식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정치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중앙은행으로서는 관망 전략을 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용어 풀이
· 준예산(stop-gap budget): 정규 예산이 제때 의결되지 않을 때 정부 기능 유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편성하는 예산.
· 재정긴축주의자(fiscal hawk): 재정적자 축소와 균형 재정을 중시하는 정치인·관료를 일컫는 표현.
· 리플레이션(reflation):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기 위해 재정·통화 완화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정책 기조.
[기자 해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정치·재정·통화 세 축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집권 여당이 내부 결속에 실패할 경우, 예산안 편성과 금리 인상이라는 두 가지 ‘시계’가 모두 멈출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 시기를 늦춘다면, 엔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으로 생활비 부담이 가중될 위험이 존재한다. 반대로 정치적 교착이 해소돼 조기 경선과 연정 구성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시장은 BOJ의 정상화 시그널을 보다 명확히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향후 몇 달간 자민당 내부 역학이 일본 경제의 중장기 궤적을 규정하는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