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기저 인플레이션’ 지표 폐기 압력…긴축 통로 열리나

【도쿄】 일본은행(BOJ)이 ‘기저(基底) 인플레이션’*이라는 모호한 지표를 더 이상 정책 판단의 핵심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내부·외부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물가 상승이 2차 파급효과(second-round effects) 단계로 진입했다는 우려가 커지자, 일부 정책위원들은 통화정책 메시지를 한층 매파(緊縮)적으로 전환하고 향후 금리 인상 경로를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2025년 8월 13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BOJ 구로다 총재 뒤를 이은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국내 수요와 임금 상승을 중심으로 한 ‘기저 인플레이션’이 아직 2% 목표에 못 미친다”는 논리를 앞세워 점진적 금리 인상 기조를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기저 인플레이션을 가늠하는 단일·공식 지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헤드라인(총합) 물가와 핵심(core) 물가가 이미 수년째 목표치를 상회하는데도, ‘정의조차 모호한’ 지표에 지나치게 의존해 완화적 스탠스를 이어 간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최근엔 BOJ 내부에서도 고개를 드는 불만이 표면화됐다. 일부 위원들은

이제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초점을 기저 인플레이션에서 실제 물가 움직임과 전망, 산출갭(output gap) 및 인플레이션 기대에 맞춰야 할 단계”라고 지적했다.

헤드라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6월에 3.3%를 기록했다.

또 다른 위원은 “물가 상방 위험에 더 무게를 두고, ‘일본이 곧 2% 물가 목표를 달성한다’는 관점에 기반한 메시지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최고 경제 자문기구(경제재정자문회의) 일부 민간위원도 이달 BOJ가 물가 압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매파적 선회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이 같은 공세는 7월 정책회의 요약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위원은 “통화정책이 이미 곡선(behind the curve)에 뒤처진 것 같아 우려된다”며 “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국민 생활과 기대 인플레이션을 실질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전환 시계, 10월로 당겨질까?

BOJ는 지난해 ‘10년 초저금리·양적완화’ 체제를 종료하고 올해 1월 단기금리를 0.5%로 17년 만에 인상했다. 당시 BOJ는 “일본이 마침내 지속가능한 2% 인플레이션 궤도에 올라서고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하지만 미국의 고율 관세 영향으로 성장 전망이 흔들리자 5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며 추가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해야 했다. 이후 7월 미·일 무역협정이 타결되자 경기 비관론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구성원 9명 중 다무라 나오키, 다카타 하지메, 고에다 준코 위원은 식료품 가격 지속 상승광범위·고착적 물가 상승으로 번질 가능성을 누차 경고해 왔다.

다만 “기저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정책판단의 중요한 개념”이라며 보수적 접근을 고수하는 위원도 있어, 메시지 전환에 대한 완전한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 분석가들은 이 같은 내부 논쟁을 “팽창하는 물가 압력에 BOJ가 기어코 응답할 수밖에 없다는 방증”으로 해석한다. ‘2026년까지 단계적 금리 인상’ 전망도 고개를 든다.


헤드라인 vs. 기저 인플레이션…데이터가 말해주는 것

6월 연간 코어 CPI는 3.3%로 BOJ 목표(2%)를 무려 3년 이상 웃돌았다. 특히 식료품 가격이 8.2% 급등하며 물가를 밀어 올렸다. 이러한 압력 탓에 7월 BOJ는 코어 인플레이션 전망을 상향 조정했고, 기저 인플레이션이 2%에 미달한다는 내부 논리를 시장은 의구심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베테랑 BOJ 워처인 무루구마 나오미 프리즘리서치 대표는 “많은 BOJ 관계자들이 ‘기저 인플레이션’ 개념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면서 “10월 추가 금리 인상이 다가오면 이 용어가 BOJ 커뮤니케이션에서 점차 희미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저 인플레이션(underlying inflation)은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하거나 수요·임금 등 구조적 요소를 반영해 물가의 ‘근본적 상승 압력’을 측정하려는 개념이다. 그러나 일본처럼 식료품·에너지 가격 영향이 큰 경제에서 해당 지표를 추정하는 데는 여러 모형과 가정이 필요해, 지표가 불투명·비일관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2차 파급효과란 임금·물가 상승이 상호 작용하며 기대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고, 기업이 이를 가격에 전가함으로써 물가 상승이 악순환으로 굳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중앙은행이 특히 경계하는 지점이다.

기자 관전평

국내외 중앙은행은 최근 ‘데이터 의존적(data-dependent)’ 접근을 강조하지만,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측정할지에 대한 지표 선택의 정치학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BOJ 사례는 불투명한 개념이 정책 지연을 합리화하는 데 활용될 경우, 경제 주체의 신뢰를 얼마나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당장 10월 회의에서 메시지 전환이 이뤄진다면, 엔화 강세·채권 금리 상승·글로벌 유동성 축소국내외 금융시장 변수 역시 요동칠 개연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BOJ가 투명성을 강화하고 시장과의 ‘인식 격차’를 좁혀나가야 장기적 정책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2% 물가 목표를 ‘선명한 나침반’으로 삼되, 측정 기준과 커뮤니케이션을 명확히 하라는 주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