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국영(國營)의 그림자’가 비치는 실리콘 밸리
“우리는 누구에게도 핵탄두의 탄피 제작을 외주 주지 않는다. AI와 첨단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2025년 8월 15일 CNBC 인터뷰에서 길 루리아 D.A.데이비드슨 리서치 총괄이 던진 이 한마디는 워싱턴과 월가, 심지어는 타이완 타오위안 공항의 출입국 심사대까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미국 행정부가 인텔(Intel)에 직접 지분을 투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한다는 블룸버그 단독 보도와 맞물리면서다. 그날 뉴욕증시에서 인텔 주가는 이틀 간 10% 넘게 뛰었고, 경쟁사인 AMD·엔비디아·삼성전자 ADR도 동반 상승했다. 그러나 단순 주가 변동 이상의 ‘지각 변동’이 이미 시작됐음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본 칼럼은 향후 10년 이상을 좌우할 이 사안의 구조적 의미를 네 가지 축—①국가안보, ②공급망, ③산업지형, ④자본시장의 룰—로 나눠 해부하고, 한국 투자자가 취할 중·장기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왜 지금, 왜 인텔인가
1) ‘오퍼레이션 리쇼어’와 미‧중 전략경쟁
바이든→트럼프 2기 재집권 과정에서 가장 연속성이 강한 경제정책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리쇼어링(Reshoring)이다.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이 점유율 37%를 차지했으나, 2024년 기준 12%로 추락했다.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가 5·3·2나노 초미세 공정을 독식하면서 미국 내 팹(fab) 가동률은 1997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정부가 ‘제조 르네상스’를 앞세워 CHIPS법(총 527억 달러)·IRA·사우전드 타리프 등을 동원해도 “민간의 CapEx만으론 시간·규모 모두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국가안보 명분 아래 ‘국영펀드’ 성격의 직·간접 지분 참여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2) 인텔만의 특수지위
- 설계+제조 겸업: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모델은 설계 전문(팹리스)·위탁생산(파운드리)을 동시에 갖춘 독보적 구조다.
- 국방 클리어런스: 미국 국방부·에너지부 핵심 프로젝트에 이미 ‘클래스Ⅰ’ 보안등급을 보유한 몇 안 되는 민간기업이다.
- 정치적 중립성: 애플·구글·엔비디아와 달리 중국 매출 비중이 10%대 초반으로, 여야 모두에게 ‘덜 위험한 카드’다.
따라서 “인텔은 지정학적 사이드 이펙트가 가장 적으면서 단기에 효과를 낼 유일 카드”라는 게 워싱턴의 계산이다.
2. 국가안보 관점: ‘산업정책 3.0’의 실험대
산업정책 1.0 | 2.0 | 3.0(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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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우주 프로젝트(1950~1980) | R&D 세액공제·글로벌 아웃소싱(1980~2020) | 지분투자+규제연성화(2020~ ) |
국가가 민간 대기업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방식은 1950년대 냉전 초기 항공·방산 업계를 마지막으로 본격 채택된 적이 없다. 미 재무부·OFEI(해외재산통제국)가 주도했던 Defense Plant Corporation 모델을 21세기에 재현하려면 ①공적 자본의 의결권 범위, ②경영 간섭 차단 장치, ③ESG·노동이슈 충돌 등 복합 설계를 필요로 한다.
시나리오별 정부 지분 구조
- Class A 우선주: 배당·청산권만, 의결권 0%
- GOV 특별주: 중요결정(합병·해외매각) 거부권(Veto) 부여
- Synthetic Equity: CB·옵션 형태로 자본시장에 우회 상장
국방부 산하 Trusted Foundry Program 2.0이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인데, 인텔은 이 ‘인증 팹’ 네트워크의 매우 상위 티어가 된다. 정부 지분이 실제로 들어올 경우, 인텔 제품은 사실상 ‘준(準)군수 물자’라는 딱지가 붙고, ITAR·EAR(무기·핵심기술 수출규제)에 자동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글로벌 고객(특히 팹리스)에게 이중규제 리스크를 전가할 수 있어, ‘민간 매출 역풍’ 변수도 배제할 수 없다.
3. 공급망·산업구조: ‘가트너 굿바이, IDC 리셋’
1) 파운드리 점유율 재편 시뮬레이션
위 그래프는 본 칼럼니스트가 자체 추정한 2028년 가정 시나리오다. 인텔 팹(오하이오·애리조나·뉴멕시코 확장)이 계획대로 2026~2027년 풀가동될 경우, 글로벌 파운드리 생산능력에서 TSMC 45% → 38%, 삼성 23% → 20%, 인텔 11% → 19% 정도로 수직 상승할 수 있다. 다만 전제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 CAPEX 집행 타이밍: 오버행이 6개월만 생겨도 가동률·단가가 붕괴된다.
- EUV·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공급: ASML·TEL 등 장비 기업 리드타임이 현재 24~30개월이다.
2) “근본적으로 設計 생태계가 달라진다”
AMD·퀄컴·애플 설계팀들은 인텔 공정 PDK(Process Design Kit)를 다시 학습해야 한다. 이는 EDA 툴 셋업 비용과 IP 라이선스 구조가 바뀐다는 뜻이다. 마블·브로드컴 등 통신칩 강자는 ‘Triple Source(삼중 소싱)’를 표준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RTL 레벨부터 멀티파운드리 대응이 기본 옵션이 될 전망이다.
4. 자본시장: ‘美 경제 안보펀드’ 등장과 밸류에이션 체계 변화
1) “주가=미국 안보보험료”
정부가 지분을 확보하면 인텔은 현금흐름 할인모형(DCF)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장은 ‘안보 프리미엄’이라는 새로운 계수를 주가에 내재화할 것이다. 이는 일부 방산주(P/E 30배)·친환경 인프라주와 비슷한 현상이다.
2) 투명성 vs. 정보 비대칭
정부 프로젝트 정보는 보안 도급계약(NDA)으로 차단되기에, 인텔의 세부 매출 구성을 투자자가 완전히 알기 어려워진다. 즉, 불확실성 할증이 동시에 포함돼 실적 서프라이즈·쇼크가 훨씬 커질 수 있다.
3) 테슬라·엔비디아에는? ‘이중 잣대’ 논쟁
정치권 일각에서는 “왜 자동차·AI 디바이스는 방치하고, 반도체만 국가 개입이 정당화되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향후 ‘컴퓨트 자산’까지 안보 자산으로 규정하면, 국방부·에너지부·상무부 산하 경제안보펀드가 AI·로봇·우주 스타트업까지 지분투자 범위를 넓힐 수 있다.
5. 리스크 체크리스트: 투자자가 던져야 할 5문 5답
- 의결권 구조가 확정됐는가?
- 정부 지분 희석 효과가 기존 주주 EPS에 얼마나 반영될까?
- ITAR·EAR 확대가 개발자 생태계를 위축시키지 않는가?
- 파운드리 수주가 3년치 이상 백로그로 채워져 있는가?
- CAPEX·R&D 세액공제 외에 Exit 전략은 무엇인가? (재매각? 지속보유?)
6. 한국 투자자·기업에 던지는 네 가지 제언
- 분산 구매 주문 전략: 삼성전자·TSMC·인텔 3사 파운드리 비중을 균등화해 지연·수율 리스크 헷지.
- 장비·소재 밸류체인 주목: EUV 부품, 하이브리드 본딩, CMP 슬러리 기업이 국산화·미국 현지 JV 설립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IRA·CHIPS 인센티브 활용: 미국 내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법인 증설 시 공적 자금 매칭 가능성 확대.
- 투자 포트폴리오 다층화: 반도체(섹터 85)뿐 아니라 방산(섹터 85)·인프라(ETF 90) 테마 ETF 통한 레버리지도 고려.
7. 결론: ‘눈에 보이는 국영화 없는 국영화’의 시대
인텔 사례는 “정부가 돈을 대고, 시장은 리스크를 나누는” 신형 혼합자본주의(hybrid capitalism)의 서막일지 모른다. 냉전 2.0과 AI·양자패권 경쟁이 난투극처럼 얽힌 지금, 지분 투자라는 형태는 가장 ‘간단하면서 빠른’ 무기다. 그러나 큰 정부의 그늘이 길어질수록, 시장은 투명성·효율성·혁신 속도라는 전통적 자본주의 미덕의 일부를 양보해야 한다. 안보 프리미엄이 밸류에이션의 상한선을, 불확실성 할증이 하한선을 동시에 밀어 올리는 복합 방정식—그 한가운데에 인텔이 서 있다.
투자자는 “지금이 마지막 1나노 패러다임 전환 직전”이라는 전장의 소용돌이를 기억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이길까’가 아니라 ‘어디에 서 있을 때도 이길 수 있을까’다. 그것이야말로 안보 자본주의 시대, 장기 투자자의 최후 방어선이다.
작성자: 이중석(경제 전문 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