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엔비디아 50억 달러 지분 제휴, 아시아 파운드리 업계에 ‘양날의 검’ 되나

〔타이베이/서울=로이터〕 세계에서 가장 가치 높은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Nvidia)가 인텔(Intel)에 50억 달러(약 6조6,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하면서, 아시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번 합의로 엔비디아는 약 4%의 지분을 보유하며 인텔의 주요 주주 가운데 하나가 된다. 두 회사는 PC와 데이터센터용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2025년 9월 1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인텔 주가는 하루 만에 23% 급등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파트너십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고전하던 인텔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첨단 제조 기술 경쟁력 회복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대표 파운드리인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에는 이번 거래가 장기적으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TSMC는 현재 미국 AI 칩 설계업체들이 의존하는 주력 생산기지로, 일각에서는 90%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한다고 추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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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무너지면 TSMC가 시장을 독점하게 되고, 미국 정부는 TSMC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진다. 인텔이 ‘살아 있는 경쟁자’로 남는 편이 TSMC에도 오히려 유리하다.” ― DIGITIMES 루크 린 선임애널리스트


美 정부의 정치‧안보 고려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미국 내 생산’ 압박으로 TSMC·삼성 등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애리조나·텍사스 공장을 건설 중이다. 하지만 미국 내 공장 증설은 역설적으로 미국 반도체 설계사들이 아시아 파운드리에 더욱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워싱턴의 규제·조사 대상 역시 아시아 업체들로 집중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번 엔비디아 투자로 인텔이 재기에 성공하면 미국 정부는 ‘두 축’(인텔·TSMC)을 모두 활용할 수 있게 되므로, TSMC·삼성에 대한 정치적 압력 완화 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단, 장기적으론 경쟁 심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텔은 7월 “외부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파운드리 사업 철수를 검토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번 합의에는 당장 인텔 파운드리가 엔비디아 칩을 생산하는 조항이 없지만, 향후 엔비디아가 주력 GPU 생산처를 TSMC→인텔로 전환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트라이오리엔트(TriOrient)의 댄 나이스테드 부사장은 “미 정부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인텔이 최첨단 칩 제조를 회복하길 원한다”면서 “인텔 파운드리가 궤도에 오르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은 규모를 갖출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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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 문준호 연구원 역시 “엔비디아와의 협업은 인텔 경쟁력 강화를 촉진해 동종사에겐 악재”라고 설명했다. 특히 데이터센터용 칩을 놓고 인텔·엔비디아와 경쟁하는 AMD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AMD가 될 것이다. 엔비디아가 인텔과 손잡으면서 AMD를 견제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TSMC는 AMD 서버 CPU 물량 감소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 DIGITIMES 루크 린 애널리스트

실제로 19일 오전 아시아 증시에서 TSMC 주가는 1.6% 하락, 삼성전자는 1% 하락해 시장 대비 소폭 부진했다. TSMC와 삼성전자는 로이터 질의에 “코멘트할 사항이 없다”고 답했다. AMD 측은 “AI 중심 전략으로 시장점유율 확대를 지속하겠다”고만 밝혔다.


용어 해설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설계(팹리스)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칩을 제조해 주는 공장을 의미한다. TSMC·삼성전자가 대표적이며, 인텔도 ‘IDM(설계+제조 일체)’ 모델에서 분리해 파운드리 사업 강화를 추진 중이다.

결국 ‘돈’만으로 해결될까?
한국 팹리스산업협회 한규민 국장은 “자금 투입만으로 제조 기술 격차가 단숨에 해소되지는 않는다”면서 “엔비디아가 어떤 혁신 설계를 내놓든, 현재로서는 TSMC 또는 장래의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공장

업계 관계자들은 인텔의 부활 여부는 2~3년 내 미세공정(수나노미터) 양산 능력 확보와 외부 고객 유치 성과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엔비디아·AMD·퀄컴 등 빅테크의 파운드리 발주 행보가 글로벌 반도체 지형을 좌우할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