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4일 국회 답변에서 “미국 관세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는 경기 부양을 위한 지출 확대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국정 운영에 상당한 재정 부담이 될 전망이다.
2025년 8월 4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최근 실시된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야당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야당은 추경뿐 아니라 소비세율 인하 또는 폐지를 요구하며 10%(식품 8%)의 세율이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정당과의 논의를 감안해 추경을 편성하겠다.” — 이시바 총리
이 발언은 야당 의원이 ‘세금 인하를 포함한 추경’ 여부를 질문하자 나온 답변이다. 만약 추경이 편성될 경우 정부는 9월로 예상되는 임시국회(臨時国会)에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추가경정예산이란 무엇인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은 이미 확정된 본예산 외에 정책·경기·재해 등 예측 불가능한 사안에 대응하기 위해 중간에 편성되는 예산을 뜻한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 버블 붕괴 이후 빈번히 추경을 편성해 왔으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그 규모와 빈도가 더욱 늘어났다.
미·일 무역협정이 불러온 불확실성
지난달 이시바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에 체결된 양국 무역협정은 일본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도록 규정하지만, 정확한 발효 시점은 명시돼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가 받을 충격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는 무역 협정이 발효되기 전까지 관세 인하 지연으로 인한 경기 둔화 가능성을 완화하기 위해 지출 확대 검토에 착수했다. 그러나 일본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해 주요 선진국 중 최악이라는 점이 재정 건전성 우려를 키우고 있다.
얼마나 큰 지출인가? — 10조 엔 규모 전망
이시바 총리는 구체적인 추경 규모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최대 10조 엔(약 6조7,680억 엔)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경우 추가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며, 이는 본예산 115조5,000억 엔 중 이미 24.5%를 차지하는 국채 이자·상환 비용을 더욱 늘릴 수 있다.
일본은행(BOJ)이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가운데 국채 금리가 오르면 재정 부담은 가중된다. 일본 재무성 관계자는 “금리와 환율 모두 불안정해 재정 운용이 한층 복잡해졌다”라고 토로했다.
소비세 인하론과 이시바 총리의 난제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민생이 압박받자 야당은 소비세율 0%~5%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재정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이시바 총리는 고령화로 급증하는 사회보장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수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연금·의료·간병 등 복지 지출은 매년 새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총리는 “사회보장 제도 지속 가능성과 경기 대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며 소비세 인하에 신중론을 고수했다. 국회 예산위원회 내부에서는 “재정 투입이 경기 부양 효과를 내더라도 장기 국채금리가 급등하면 되레 민간 투자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정치적 압력과 반복되는 추경 관행
일본에서 추경은 정치 주기마다 반복되는 관행이 됐다. 여야 정치인들은 경기 하락 시 지출 확대를 선호하며, 해외 주요국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위기 모드 지출을 축소하는 와중에도 일본은 완화적 재정정책을 유지해 왔다.
이번에도 소수 연립여당인 이시바 내각이 참의원 선거 패배로 입지가 축소되면서, 야당의 지출 확대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평론가 가와사키 사토루는 “9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안이 통과된다면, 소비세 인하 여부가 내년 총선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율과 국제 자본시장 반응
4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47.75엔으로 보합세를 유지했다.($1 = 147.7500 yen) 시장 참가자들은 “재정 악화 우려에도 미국 관세 인하 시점이 확정되기 전까지 일본 정부가 완화적 스탠스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형 증권사 스트래티지스트는 “추경 규모가 10조 엔보다 크면 국채 금리 상승 압력이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 시각 — 기자 분석
기자 해설: 일본 정부의 재정 여력은 이미 한계에 근접했지만, 무역 환경 악화로 인한 실물경제 충격은 즉각적인 대응을 필요로 한다. 추경은 단기 부양 효과가 있는 반면, 구조적 개혁 없이는 재정 지속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질 수 있다. BOJ의 양적완화 출구 전략까지 고려하면 금융·재정정책 간 정책 조합(policy mix)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결국 정부는 세수 기반 확충과 성장전략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재정·사회보장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이번 추경이 ‘제도 개혁’ 없이 단순 지출만 확대한다면, 시장은 일본 국채에 대해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