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기업, 다섯 분기 연속 이익 성장 유지
유럽 상장기업들이 미국발 수입관세 충격을 흡수하며 5분기 연속 순이익 증가세를 이어 갔다. 다만 성장 속도는 미국 대비 크게 둔화됐다.
2025년 8월 11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LSEG I/B/E/S 집계 기준으로 올 2분기(4~6월) 유럽 기업들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미 실적을 발표한 기업 중 절반가량이 컨센서스를 상회해 ‘평균적인 분기’ 수준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 S&P500 지수 기업들의 2분기 순이익은 12% 증가가 예상돼, 기술주 중심의 ‘쌍두마차’가 성장 격차를 벌렸다.
◆ 성장률 둔화에도 가이던스 상향이 활발
독일 도이체방크 유럽 주식·크로스자산 전략 총괄인 막시밀리안 울러(Maximilian Uleer)는 “약 30%의 기업이 연간 실적 전망치를 상향했고, 하향 조정한 곳은 극소수”라며 “미·EU 간 최근 무역 협상 타결로 하방 리스크 가시성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 유로화 강세가 남긴 ‘환율 부담’
외환 전략가들은 관세 충격 이후 달러 강세를 점쳤다. 그러나 올 들어 유로화는 달러 대비 12% 급등하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유럽 대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다.
영국 운용사 말버러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로리 다위(Rory Dowie)는 “대형주는 해외 매출 비중이 높아 유로 강세가 실적 역풍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유로화가 10% 오르면 기업 이익이 약 2% 감소한다는 분석을 바클레이스·씨티그룹이 제시했다. 소재·에너지 업종이 가장 민감하며, 실제로 알리안츠·바이엘·콘티넨탈·페라리·토탈에너지·푸마 등이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환율 압박을 언급했다.
“환율 효과(translation effect)는 ‘장부상 이익’에 직접 반영돼, 현금흐름 대비 실적 변동성이 커진다.” — 독일계 헤지펀드 운용역
용어 설명: ‘환산 효과(translation effect)’란 다국적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매출·이익을 모기업 통화로 환산할 때 발생하는 회계상 증감분을 뜻한다.
◆ 은행주, 2008년 이후 최고가…그러나 ‘회색 코뿔소’ 경고도
유로존 대형주 지수(STOXX 50) 내 7개 은행 모두가 시장 예상을 상회하는 실적을 냈고, 2곳은 가이던스까지 상향했다. 그 결과 유럽 은행업 지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LSEG에 따르면 금융업종의 2분기 순이익은 컨센서스 대비 12% 상회해 STOXX 600 전체(5.5%)를 두 배 이상 능가했다. 카이로스 파트너스의 알베르토 토키오 CIO는 “은행이 이번 시즌의 주인공”이라면서도 “자동차·필수 소비재 등은 가파른 하향 조정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올해 들어 은행주는 37% 급등하며 유로 도입 이후 최고 3년 연속 수익률을 기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경기 둔화 시 은행은 가격 민감 업종”이라며 장기 투자자는 헤지 포지션을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 헬스케어, 트럼프의 ‘관세 폭탄’ 변수
헬스케어 업종은 2분기 순이익이 15.4% 증가해 기술주 다음으로 높았지만, 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은 제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의약품 수입에 250% 관세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의 울러는 “정책 확실성이 확보되면 헬스케어 비중을 언더웨이트에서 오버웨이트로 ‘더블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소비재, 관세·수요 부진 ‘이중고’
투자자들은 소비재 섹터를 회피하고 있다. 관세 부담과 소비 행태 변화로 실적 가이던스가 잇따라 하향되고 있어서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수요가 약화되면서 기업들은 가격과 재고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LSEG 집계에 따르면 경기민감 소비재(자동차·럭셔리)의 2분기 이익은 예상을 8% 하회했고, 방어적 소비재(식음료 등) 역시 2% 하회해 전체 시장 대비 부진이 두드러졌다.
아디다스 주가는 미국 가격 인상 가능성을 경고한 후 6거래일 간 18% 급락했고, AB인베브도 브라질·중국 판매 부진으로 11% 떨어졌다. 럭셔리 업종에서는 페라리가 미국 가격 인하를 발표한 뒤 12% 폭락하여 상장 후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고, 에르메스도 3거래일 사이 12% 하락했다.
추가 설명: ‘경기민감 소비재’는 소비자 소득 변화에 따라 수요가 크게 변동하는 품목이며, ‘방어적 소비재’는 경기와 무관하게 꾸준히 수요가 발생하는 필수품을 뜻한다.
◆ 기자의 시각: ‘단기 모멘텀’과 ‘중기 리스크’의 동행
이번 실적 시즌은 은행·헬스케어 등 방어력이 높은 업종이 주도했고, 환율·관세로 직격탄을 맞은 수출주·소비주가 부진했다. 유로화 강세와 미국 수요 둔화라는 이중 변수를 감안하면, 4분기부터는 실적 모멘텀이 추가로 둔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유로존은 ECB의 긴축 종료 시점이 불투명해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지속될 전망이다.
투자 전략 측면에서는 ① 순수 내수주, ② 고배당 금융주, ③ 원가 절감력이 검증된 대형 헬스케어를 선별하는 ‘바텀업 전략’이 요구된다. 반면 소비재·자동차·럭셔리 등은 관세·환율·수요 삼중 부담이 누적되고 있어 보수적 접근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