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 기준금리 또 동결…추가 완화 여부에는 “데이터가 결정”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이 11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현행 연 2%로 동결하며 시장의 예상을 확인했다. 그러나 정책위원회는 향후 통화정책 경로에 대해 어떠한 단서도 제공하지 않아 투자자들의 궁금증은 오히려 커졌다.

2025년 9월 11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ECB는 불과 1년 만에 정책금리를 절반(4%→2%)으로 인하한 뒤 현재까지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유로존 경제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선제적 경로(preset path)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날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라가르드 총재는 물가상승률(inflation)이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있다”고 설명했지만, 투자자들은 2026년 이후 예상 물가가 목표치 2%를 하회할 것으로 본다. 실제 ECB의 새로운 전망치에 따르면 2027년 headline 인플레이션은 1.9%, 근원(core) 인플레이션은 1.8%로 각각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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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본부 전경

“우리는 여전히 데이터 중심(data-dependent) 접근 방식을 고수한다.” —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시장금리(유로화 OIS)는 내년 봄까지 50% 확률로 한 차례 추가 인하를 반영하고 있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26년 말까지 최대 6차례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베팅이 형성돼 있어, 유로·달러 금리 차이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주요 쟁점

라가르드 총재는 위험 요인을 “6월과 비교해 보다 균형적”이라고 평가했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은 크다고 인정했다. 매파(통화 긴축 선호) 위원들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 추가 완화를 경계한다.

  • 무역 긴장에도 유로존 경제는 예상보다 견조하게 성장
  • 독일 정부의 기간산업·방위 지출 급증
  • 민간소비 회복 및 제조업 생산 반등

반면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위원들은 15% 수준으로 책정된 미국발 관세가 아직 실물경제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관세 충격이 소비심리를 꺾어 물가를 더 끌어내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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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Fed의 연속 금리 인하가 유로화 강세를 유발할 경우, 수입물가가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의 정치 불안으로 프랑스 국채 금리가 급등한 점도 ECB의 고민거리다. 프랑스 정부부채가 높은 데다 성장세가 미약해 ‘성급한 개입’ 명분이 약하다는 분석이 많다.

라가르드 총재는 “현재 유로존 국채시장은 질서 있게(orderly) 움직이고 있다”며, 투자자보호기구(TPI) 등 긴급 매입수단을 가동할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라가르드 총재 기자회견

📖 용어 해설

1 근원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 에너지·식품처럼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물가상승률로, 중앙은행이 중장기 정책판단 시 중시한다.
2 OIS(Overnight Index Swap) 금리⟶ 기준금리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보여주는 파생상품 금리로, 향후 정책금리 경로를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3 TPI(Transmission Protection Instrument)⟶ 특정 회원국 채권금리가 ‘불합리하게’ 급등할 때 ECB가 매입을 통해 시장안정을 도모하는 비상수단.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시장 컨센서스는 ‘한 번 더, 그리고 끝’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즉, 내년 상반기 중 0.25%p 추가 인하가 있을 가능성을 50%로 보지만, 그 이후에는 상당 기간 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는 근원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하회할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재정지출 확대와 임금상승이 뒷받침돼 디플레이션 위험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자는 수요 둔화와 통화여건 긴축효과의 시차를 감안할 때, ECB가 2026년까지도 서서히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유로존의 구조적 저성장·저물가 패턴, 그리고 미국·중국 간 기술패권 경쟁에 따른 교역 감소가 물가 하방 압력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향후 주목할 변수는 ▲독일·프랑스의 재정정책 강도, ▲임금협상 결과, ▲미·중 관세 협상, ▲달러화 추세 등이다. 특히 2024~2025년 체결된 유럽 내 집단임금협상 결과가 내년 노동비용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ECB의 통화정책 시계가 달라질 수 있다.

유로존 인플레이션 추이

결론적으로, ECB는 ‘경제가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며 정책여지를 확보했지만, 물가 전망이 목표를 밑돌 가능성이 높은 만큼 완화적 기조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각종 지표·정책발표를 통해 “데이터가 바뀌면 행동도 바뀐다”는 ECB의 원칙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