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025년 9월 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럽시스템리스크위원회(ESRB) 연례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lex Kraus/Bloomberg via Getty Images
유럽중앙은행이 1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공격적 관세 정책 이후 지속되는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신중 모드를 유지했다.
2025년 9월 11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시장은 회의 이전부터 예금금리(Deposit Facility Rate)를 두 차례 연속 2%로 유지할 가능성을 99% 이상으로 반영해 왔다. ECB는 지난 6월 금리를 인하해 작년 사상 최고치인 4%에서 더 낮춘 뒤 이번에 추가 인하를 보류했다.
ECB는 인플레이션이 최근 몇 달간 목표치인 2%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에도,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여전히 씨름하고 있다. 특히 EU와 미국 간 무역 협상 체결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지난 7월 EU 수출품 전반에 15%의 포괄적 관세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해당 협정의 세부 내용은 8월 공개되었으며, 제약 산업 등 주요 유럽 산업의 의문 사항 일부를 해소했다. 그러나 와인·증류주 등 일부 분야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EU가 알파벳(구글)에 34억 5,000만 달러의 반독점 벌금을 부과한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복관세를 시사하면서 관세 확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세가 유로존 성장률에 미칠 영향이 가장 큰 리스크로 부상했다”는 것이 현지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실제로 유로존 경제성장률은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부진하다.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2분기 성장률은 0.1%에 그쳐 직전 분기 0.6% 대비 크게 둔화됐다.
금리 자체보다 ‘향후 경로’에 시선 집중
독일 도이체방크 이코노미스트들은 회의 직전 보고서에서 “이번 결정보다도 통화정책 경로에 대한 시그널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장은 라가르드 총재의 기자회견과 ECB가 6월 이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새 인플레이션·성장 전망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CB가 사용하는 ‘예금금리’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초과지준을 예치할 때 적용받는 이자율로, 유로존 단기금리의 하단 역할을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지급준비금 이자(Interest on Reserve Balances)와 유사한 개념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유럽 경제가 관세 충격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 그리고 물가 안정과 성장 회복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ECB의 정책 여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문가 시각: ‘상황은 복합적’
필자는 관세 충격이 지속되면 연말 또는 내년 초 추가적인 통화 완화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2% 근처에서 안정되는 현 상황에서, 지나친 완화는 가격 안정에 역효과를 줄 위험이 있다. 따라서 ECB는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 공조를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추가 관세 위협이 현실화될 경우, 개별 산업별 세부 협상에서 유럽 측이 대미 로비를 강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는 기업들의 투자 계획과 주가 변동성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유럽산업의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될 수 있다. 특히 제약·자동차·고급 소비재 분야는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시아 및 중동 지역으로 수출 다변화 전략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업계 관계자 인터뷰(별도 취재)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필요 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제지표가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10월 회의 전까지는 ‘데이터 의존적(data-dependent)’ 접근법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 결과에 대한 세부 내용은 ECB 공식 홈페이지와 기자회견 자료를 통해 추가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