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가가 대법원의 관세 위헌 여부 판결을 앞두고 극심한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관세의 합헌성과 맞물려 미국 기업 실적·연방 재정 건전성에 중대한 파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초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 발표 직후 S&P 500과 같은 주요 지수는 급락세를 경험했다. 이는 대법원 판결이 현행 관세 체제를 뒤집을 가능성이 투자자 심리를 자극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관세 발표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잇달아 새로운 무역 협정을 선언하고, 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일부 흡수하면서 금융시장은 빠르게 반등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그러나 정책·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또 한 차례의 롤러코스터가 남아 있다”고 경고한다.
“대법원이 신속 절차로 심리를 진행 중이지만, 구두변론 이후 최종 의견이 나오기까지 최소 한 달 이상 걸릴 수 있다. 현재 회기는 2026년 6월 6일 종료 예정” (미 연방대법원 공보처)
연구 어필리에이츠(Research Affiliates)의 회장 롭 아노트는 “현행 관세가 유지된다면 시장은 이미 그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했다. 그러나 뒤집힐 경우 ‘불확실성의 공포’가 증폭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관세를 위헌으로 판단하고 환급(refund)까지 명령할 경우, TD뱅크 금리 전략팀은 최대 1,000억 달러(약 135조 원)의 일회성 현금 유입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다만 여러 전문가는 “달콤한 순풍이 ‘정치·법적 역풍’에 상쇄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BCA리서치의 수석 미국 전략가 더그 피터는 “무역 불확실성이 급증하면 기업 투자가 지연되고 채용이 얼어붙을 것”이라며 “가계도 지갑을 닫아 주가 하락·신용스프레드 확대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관세·신용스프레드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부연하면, 신용스프레드란 회사채·국채 금리차를 뜻한다. 스프레드가 커질수록 투자자는 리스크를 더 크게 인식한다는 방증이다.
현재 대법원이 다투는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관세를 부과하며 행정권 한계를 넘었는지 여부다. 만약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 행정부는 어떤 절차로 관세를 재도입할지도 큰 변수다.
IEEPA란? 1977년 제정된 법으로, 대외제재·경제긴급조치를 취할 때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다. 그러나 무역 관세처럼 경제 전반을 장기간 규제하는 데 적합한지 논란이 있다.
F/m 인베스트먼츠의 CEO 알렉스 모리스는 “복잡한 변수가 난무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시나리오 분석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와일드카드’가 지나치게 많다”고 밝혔다.
환급 범위도 미정이다. 만약 대법원이 일괄 환급을 명령한다면, 법인세 감세와 유사한 ‘기업용 경기부양책’이 불시에 투입되는 셈이다. 글렌미드트러스트의 마이클 레이놀즈 부사장은 “그럴 경우 주가가 추가 급등할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레이놀즈는 “단기 ‘설탕 충격’ 이후 다시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리서치 팀 역시 행정부가 IEEPA 외의 권한을 활용해 특정 국가·산업을 겨냥한 맞춤형 관세를 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정적자 변수
채권시장도 유사한 흐름을 겪을 수 있다. 매뉴라이프 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제프 기븐 글로벌 선진국 채권 책임자는 “관세 위헌·폐지가 확정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돼 미 국채 금리가 단기간 하락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세수 감소가 국채 발행 확대로 이어져 재정적자 악화를 우려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S&P글로벌레이팅스와 피치는 지난 8월 미국 국가신용등급 ‘AA+’를 유지하면서도 “트럼프 관세로 세수가 늘어 적자 축소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환급 시나리오는 이러한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 부소장은 “대기업들은 ‘주운 돈’ 수십억 달러를 챙기겠지만, 연방 재정은 악화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시장 참가자들이 ‘더 불규칙한 무역 정책’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매도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번 사안은 거대한 ‘스파게티 볼’과 같다. 다음 그림을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스콧 린시컴)
결과적으로 월가와 미국 기업들은 ‘관세 쇼크→판결→재도입’이라는 다중 충격 시나리오에 대비해 현금 유동성 확보·헤지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 시한이 다가올수록 변동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