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CLU25)가 보합권에 마감했고, 9월물 개솔린(RBOB·RBU25)은 갤런당 0.086달러(+0.41%) 상승하며 거래를 마쳤다. 시장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미국 주도 평화구상에 대한 회의론, 달러 약세, 그리고 주식시장 랠리가 보여 준 경기 낙관론을 복합적으로 반영했다.
2025년 8월 9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미 행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투자자들은 해당 불확실성을 원유 수급 시나리오에 즉시 반영하며 가격 저항선을 형성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가 현재 전선을 유지한 채 헤르손·자포리자 지역에서 군사공세를 중단하는 대신,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전역과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완전히 양도하는 조건의 합의를 미국이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만약 휴전이 성사되고 에너지 제재가 완화된다면, 러시아산 원유가 글로벌 시장으로 재유입돼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즉각 확산됐다.
실제로 같은 날 장 초반 WTI는 2개월 만의 최저가까지 밀렸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늘까지 러시아가 휴전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국에 신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지난주 예고한 점이 역풍처럼 작용해 하락폭을 빠르게 제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인도산 수입품 관세율을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면서 “러시아산 원유 대량 구매가 빚은 대가”라고 주장했다. JPMorgan Chase는 “세 자릿수 관세까지 현실화될 경우, 규모가 큰 러시아 원유 수출과 한정된 OPEC 잔여 여력이 맞물려 공급 쇼크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OPEC+ 증산 시나리오와 재고 누적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회원국 연합체(OPEC+)는 9월 1일부터 하루 54만 7,000배럴 증산을 승인했다. 이는 2년간 지속된 감산 체제를 단계적으로 해제해 2026년 9월까지 총 220만 배럴을 복원하는 로드맵의 일환이다. OPEC+는 “수요 흐름을 면밀히 주시해 필요 시 증산·동결·감산 가운데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166만 배럴의 생산설비가 2026년 말까지는 여전히 오프라인 상태로 남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들어 전 세계 상업 재고가 일일 100만 배럴씩 늘고 있으며, 2025년 4분기에는 하루 소비량의 1.5%에 해당하는 초과 공급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7월 OPEC 실물 생산은 전월 대비 2만 배럴 감소한 2,831만 배럴로 집계됐다.
EU 제재·그림자 선단 타격
유럽연합(EU)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20개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에서 추가 차단했다. 또 제3국에서 재정제된 러시아산 석유제품에도 제한을 확대했으며, 인도에서 러시아 로스네프트가 지분을 보유한 대형 정유소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러시아 ‘그림자 선단’에 속하는 유조선 105척이 새로 규제를 받아, 전체 제재 선박은 400척을 넘어섰다.
선박 분석업체 Vortexa에 따르면 8월 1일 기준 7일 이상 정박해 있던 부유식 원유 재고가 전주 대비 15% 감소한 7,912만 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가격 지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내 재고·시추 동향
EIA(미 에너지정보청)는 8월 1일 주간 보고서에서
미국 원유 재고가 5년 평균 대비 6.5% 부족하고, 휘발유 재고는 0.3% 부족, 중질유(디스틸레이트) 재고는 16.1% 부족
하다고 밝혔다. 같은 주 미국 원유 생산량은 전주 대비 0.2% 감소한 하루 1,328만 4,000배럴로, 2024년 12월 첫째 주 기록한 사상 최대치(1,363만 1,000배럴)보다는 소폭 낮았다.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8월 8일 기준 활성 원유 시추 굴착기는 411기로 일주일 사이 1기 증가했으나, 3년 9개월 만의 최저 수준(410기)에서 벗어난 지 불과 일주일에 불과하다. 2022년 12월 627기 정점을 찍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큰 폭으로 축소된 상황이다.
전문가 해설: RBOB·WTI 용어 이해
WTI는 서부텍사스 경질유를 뜻하며,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달러/배럴 단위로 거래되는 대표적 미국 원유 선물이다. 반면 RBOB는 Reformulated Gasoline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의 약자로, 환경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산소 첨가제를 섞기 전 상태의 개솔린 선물을 의미한다. 보통 ‘갤런당 달러’로 호가된다.
CL*0, RB*0와 같은 티커 뒤 ‘*0’ 표기는 연속(continuous) 차트를 나타내며, 가장 근월물 계약을 자동 연결한 데이터 시리즈다.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롤오버(만기 교체) 영향을 최소화한 추세를 파악할 수 있다.
시장 전망과 기자의 시각
단기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진전 여부가 방향성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휴전이 체결돼 제재가 풀리면 물리적 공급 확대→가격 하락 시나리오가 유력하지만, 미국의 고율 관세 압박과 EU 추가 제재라는 반(反)공급 요인도 동시에 작동할 수 있다. 특히 OPEC+가 2026년까지 증산을 단계적으로 진행하더라도, 러시아산 물량이 얼마나 시장에 유입될지에 따라 스프레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장기적으로는 IEA가 언급한 2025년 4분기 초과 공급 전망이 현물·선물 커브에 점진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동 지정학 리스크·미국 내 시추 감소세·기상이변 등 잠재적 변수는 공급 여력을 다시 제한할 수 있어, 사이드웨이(박스권) 속 변동성 장세가 지속될 공산이 크다.
결국 투자자들은 정책 리스크와 펀더멘털 지표를 동시에 주시하며, 탄력적 헤지 전략과 계약 월별 스프레드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 특히 달러 약세와 주식시장 흐름이 원유 가격에 미치는 교차 상관관계를 고려하면, 멀티에셋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