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라이파이젠은행, 러시아 지분 매각 재시도 또 불발…“서방과의 마지막 금융 가교” 우려

VIENNA – 라이파이젠은행인터내셔널(Raiffeisen Bank International·RBI)이 러시아 현지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려던 새로운 시도가 러시아 당국의 반대로 좌절됐다. 로이터 통신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는 서방과의 핵심 금융 연결고리를 유지하기 위해 매각에 제동을 걸었다.

2025년 10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RBI의 러시아 법인은 제재 대상이 아닌 외국계 은행 가운데 러시아 최대 규모다. 서방의 광범위한 금융 제재로 현지 경쟁사들이 고립된 상황에서, 이 은행은 유럽으로의 가스 및 무역 결제를 포함해 러시아 경제에 필수적인 결제 채널로 기능하고 있다.

첫 번째 소식통은 “러시아 측이 매각을 반대한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인 매수자가 대주주로 올라설 경우 서방이 RBI 자체를 제재 리스트에 올릴 수 있다는 우려였다”고 전했다. 두 명의 소식통은 민감한 사안임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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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묶여 있는’ 70억 유로의 행방

RBI는 현지 수익 약 70억 유로(약 9조9,000억 원)를 본사로 송금하지 못한 채 러시아에 묶여 있다. 지분 매각 또는 현지 투자자 유치를 통해 해당 자금을 오스트리아로 돌려보내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러시아가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좌초됐다.

동시에 은행은 미국·EU 정부로부터도 러시아 사업 축소 압박을 받고 있다.

RBI 대변인은 “러시아 사업 축소 방침은 유지되며, 매각에는 러시아 당국의 승인이 필수”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요한 스트로블(Johann Strobl) 최고경영자(CEO)는 이미 여러 차례 러시아를 방문해 직접 매각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특정 은행과의 논의 여부를 밝힐 수 없다”고 답변했다. 로이터는 RBI가 어떤 정부 기관 또는 잠재적 매수자와 접촉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 서방·러시아 갈등 격화와 매각 무산

최근 몇 달간 모스크바와 서방 간 긴장은 재차 고조됐다. EU는 벨기에에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 수백억 유로를 우크라이나 지원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또한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 중단을 서두르고 있다. 폴란드 상공에서 발생한 러시아 드론 격추 사건은 양측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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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는 여전히 라이파이젠은행을 가스 결제 등 ‘서방 통로’로 간주하고 있다. 제재 강화로 다른 해외 결제 루트가 대거 차단된 상황에서, RBI가 차지하는 전략적 가치는 커졌다는 분석이다.


🛢️ 특수 지위의 배경: 오스트리아·러시아 관계

오스트리아는 2차 세계대전 후 소련 점령 지역이었으며, 1955년 독립을 되찾는 조건으로 영세 중립을 약속했다. 이후 서방 국가 중 최초로 러시아(구 소련)와 가스 장기 계약을 체결했고, 비엔나는 러시아 자본의 중요한 금융 허브로 성장했다.

RBI는 러시아 내 유럽계 은행 중 자산 규모가 UniCredit(이탈리아), OTP Bank(헝가리) 등을 압도한다. 그 결과 ‘서방 제재를 받지 않은 대형 결제 창구’라는 특수 지위를 누려 왔다.


🚧 터크스트림(TurkStream) 파이프라인 결제 창구

RBI는 터크스트림 파이프라인 관련 결제를 처리한다. 터크스트림은 러시아에서 흑해를 거쳐 터키를 지나 불가리아·헝가리 등으로 가스를 공급하는 러시아의 마지막 유럽 공급선이다. 2025년 1~8월 가스 수송량은 약 115억㎥로, 시가 약 38억 달러(약 5조2,000억 원)에 달했다.

세 번째 소식통은 “RBI가 유로화 해외 송금을 대폭 줄였음에도 소수의 대형 러시아 기업은 여전히 은행을 통해 대규모 결제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RBI 측은 “여신·수신·결제 규모를 축소했으며 모든 거래는 대러 제재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제재 리스크와 현지 법적 분쟁

RBI는 우크라이나 정부 및 시민단체로부터 ‘러시아 전쟁 경제를 지원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동시에 러시아 사법당국도 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 초, 모스크바 법원은 복잡한 자산 스왑 거래 실패를 이유로 RBI에 20억 유로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만약 RBI가 서방 제재 명단에 오를 경우, 러시아는 거의 유일한 유럽 결제 창구를 잃게 된다. 이 시나리오는 러시아 측이 지분 매각을 반대하는 핵심 동기로 꼽힌다.


📌 용어·배경 해설

1 제재(Sanctions): 특정 국가·개인을 대상으로 금융·무역·여행 등을 제한해 압박하는 외교 수단이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EU의 대규모 금융·수출 제재 대상이 됐다.

2 터크스트림(TurkStream):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터키 BOTAS와 공동 운영하는 해저 가스관(약 930㎞)으로, 흑해를 통해 유럽 남부에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한다.

3 매각 불발의 의미: 러시아가 외국계 대형 결제 채널을 유지함으로써 수출 대금 확보핵심기업의 해외 송금을 가능케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 전문적 관점

RBI의 사례는 ‘탈러시아’ 전략과 ‘유럽 에너지 독립’ 노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해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서방 제재가 심화될수록 러시아는 한정된 결제 창구를 더욱 보호하려 할 것이고, 현지 수익을 회수하려는 외국계 은행의 움직임은 계속해 정치적 변수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제재 확대 여부, EU의 동결 자산 활용 결단, 가스 가격 변동이 RBI의 러시아 전략과 투자자 가치에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