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펍, 비용 압박 속 ‘하루 한 곳’ 폐업 위기

영국을 상징하는 사교 공간이자 지역 경제의 축인 펍(pub)이 심각한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

2025년 9월 2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맥주·펍협회(BBPA)는 2025년 한 해에만 하루 평균 한 곳꼴로 영국 전역의 펍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드로 가려진 런던 블랙 호스 펍 외관

주목

협회가 집계한 최신 자료에 따르면,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에서 올해 안에 378개의 펍이 영구 폐업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직접 고용 기준으로만 5,600명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규모다.


비용 상승 3중고: 최저임금·국가보험·사업장 재산세

영국 전반의 소비 위축과 인건비·세금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UK 호스피탤리티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가을 예산 발표 이후 영국 요식·숙박업에서만 8만9,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이는 작년 10월 이후 영국 전체 실직자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런던은 특히 폐업 속도가 빠르다. The Devonshire Arms(중앙 런던 본드 스트리트 인근)을 운영하는 팀 스키너 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주목

“국가보험(National Insurance)과 사업장 재산세(business rates)가 직접 인상됐고, 부가가치세(VAT)가 현 수준에 머물면서, 우리 같은 사업장은 연간 약 3만 파운드(약 4만 달러)를 추가로 마련해야 현상 유지가 가능합니다.”

매출 감소분을 상쇄하기 위해 결국 일부 비용은 소비자 가격에 전가됐다. 그 결과 올여름 영국 전역에서 맥주 한 파인트 평균 가격이 처음으로 5파운드를 넘어섰다.

맥주 잔과 가격 태그

스키너는 “시장 경쟁이 치열해 고객 한 사람, 1파운드를 놓고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절감할 구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곡물에서 잔까지’ 산업 생태계 연결 고리

영국 펍 산업은 직접 매출·고용뿐 아니라 공급망 전반에 폭넓은 경제적 파급 효과를 낳는다. BBPA 대변인 찰리 홀은 CNBC에 “곡물에서 잔에 이르기까지 펍 생태계 전체가 영국 경제에 연간 300억 파운드 이상을 투입하고, 세수 180억 파운드, 100만 명의 일자리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홀은 올해 폐업이 예상대로 진행될 경우, 홉(hop) 재배 농가에서부터 유리컵 제조사에 이르기까지 공급망 전반에 “막대한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메이페어 ‘예 그레이프스(Ye Grapes)’ 펍 외관


세제 개편 목소리 고조

영국 펍·양조업계는 오는 가을 예산(Autumn Budget)을 앞두고 사업장 재산세 인하부가가치세·주세(VAT·Beer Duty) 감면을 촉구하고 있다. 스타 펍스(Star Pubs)의 운영 총괄 믹 하워드는 “추가적인 국가보험 인상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펍을 찾습니다. 시간과 목적이 변했을 뿐, 동네 펍은 여전히 지역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비용 상승이 지속된다면 문을 열 수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용어 설명

National Insurance: 영국식 사회보장세로, 고용주와 근로자가 공동 부담한다. 인상되면 고용 비용이 직접 증가한다.

Business Rates: 영국 내 상업용 부동산에 부과되는 일종의 재산세다. 정부가 정기적으로 평가해 세율을 인상할 수 있다.

VAT(부가가치세): 한국의 부가세에 해당하며, 식음료 업계는 20% 표준세율 적용을 받는다.


전문가 관전 포인트

전문가들은 단순 폐업 건수보다 ‘펍 생태계’ 위축을 더 우려한다. 지역농가·물류·제조·문화 산업이 연쇄적 손실을 입는 다층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관광청은 펍이 연간 140억 파운드 규모의 관광지출과 직결된다고 추산한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예산에서 세제 감면·에너지 요금 지원 등에 손을 놓을 경우, 2026년 이후 폐업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 펍을 지역 공동체 유대와 사회적 고립 해소의 장으로 보는 시각도 힘을 얻고 있다. 정책 당국이 ‘문화 인프라’ 차원에서 펍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귀 기울일지 향방이 주목된다.

결론적으로, 영국 펍 산업은 단순 여가 공간을 넘어 경제·사회적 가치사슬의 핵심 축이다. 향후 정부 정책과 소비 행태 변화가 업계 생존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