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미국 통화정책의 마지막 보루로 평가돼 온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에 균열이 생겼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리사 쿡 연준 이사를 ‘for cause’ 해임하기 위해 연방대법원까지 끌고 가면서, 중앙은행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재판대에 오른 것이다. 단순 인사 갈등으로 보이지만, 이는 미국 경제의 장기 성장률·물가 안정·달러 패권에 직결될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
1. 사건 개요 — 정치와 통화정책의 위험한 교차점
• 9월 18일 트럼프 행정부는 워싱턴 D.C. 항소법원과 지방법원이 발동한 ‘쿡 해임 금지’ 가처분을 뒤집어 달라며 연방대법원에 긴급 신청.
• 사유는 모기지 서류 ‘이중 실거주’ 기재 의혹. 하지만 실제 쟁점은 연준 이사를 대통령이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느냐는 헌정적 질문.
• 연준 이사회 7명 중 트럼프 인사가 3명 → 쿡 해임 시 4명으로 우세 확보.
• 같은 날 FOMC는 ‘보험성’ 0.25%p 인하. 표결 11대 1 가운데 유일한 0.5%p 인하 소수 의견이 트럼프 지명 신임 이사 — 스티븐 미런.
2. 왜 ‘독립성’이 중대한가
① 장기 기대인플레이션(anchor)의 유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투자자들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한 연준”을 전제로 미국 자산을 가격에 반영했다. 기대 인플레가 흔들리면
- 10년·30년물 국채 수익률 상단이 영구적으로 상승
- PER 디스카운트 → 주식시장 멀티플 축소
- 기업 WACC* 상승 → 설비·R&D 투자 위축
* 가중평균자본비용
② 달러 기축통화 프리미엄
글로벌 외환 보유액 중 달러 비중은 59%. 여기엔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 통화정책’이라는 무형의 프리미엄이 포함된다. 독립성 약화 → 달러 신뢰 약화 → 외환보유액 다변화 → 미국 자본시장 외국인 자금 유출.
③ 통화·재정 균형의 붕괴 가능성
국공채 37조 달러 — 금리 0.25%p 변동 시 연 930억 달러 이자비용 차이. 대통령이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친(親)행정부’ 인사를 늘리면
단기 수치 대장정 → 장기 물가 불안.
3. 데이터로 보는 ‘정치화’의 비용
국가 | 중앙은행 독립성 지수* (0~1) | 최근 10년 평균 CPI | 10년물 국채 평균금리 |
---|---|---|---|
미국 | 0.86 | 2.3% | 2.1% |
터키 | 0.30 | 17.4% | 15.6% |
브라질 | 0.56 | 6.2% | 9.1% |
독일(ECB 이전) | 0.90 | 2.0% | 5.0% |
* Alesina·Summers (1993) 지수를 BIS 기준으로 업데이트
통계가 말해주듯 중앙은행 독립성이 높을수록 물가·시장금리가 안정적이다. 미국 지수가 0.86에서 0.75로 0.11p 하락하면, 학계 추정식에 따라 장기 기대 인플레 0.4%p 상승. 국채 금리·모기지 금리로 파급되면 주택시장과 가계 소비 여력이 급격히 악화한다.
4. 시나리오 분석 — 2025~2030년
시나리오 A│대법원, 해임 불가 판결 (확률 55%)
- 연준 독립성 재확인 → 달러·국채 매도 압력 완화
- 정치권 ‘탄력적 물가 목표(average inflation target)’ 수정 시도 차단
- S&P 500 PER 디스카운트 0.5~1포인트 내 회복
시나리오 B│해임 허용·친정부 인사 증원 (확률 45%)
- 연준 이사회 4:3 보수 우위 → 추가 빅컷 50bp 가능성
- 2026~2027년 CPI 상승압력 재점화(3.5%+) ; TIPS 브레이크이븐 3% 근접
- 달러 지수 DXY 5~7% 하락 → 원자재·수입물가 상승
- 결국 2027~2028년 인플레 재억제 위해 급격한 긴축 → 실질 GDP 연 1%대 저성장 고착
5. 투자자 대응 전략
① 듀레이션 바이어스
독립성 약화 리스크 → 장기금리 상단 열림. 7~10년 국채·IG채권 비중 축소, 2년 이하 T-Bill 단기 포트폴리오로 롤오버.
② 섹터 선택
- 시나리오 A: 주거 리츠, 성장 기술(고PER) → 멀티플 안도 랠리
- 시나리오 B: 에너지·리소스·단기 가변금리 금융(BDC)로 회귀
③ 달러 인덱스 헤지
달러 약세 시 → S&P 500 해외 매출 비중 50% 이상 기업(테크·헬스케어) 상대적 유리
6. 연준 구조 개편 논쟁 — 예견된 ‘미국판 Abenomics’?
트럼프 캠프 참모들은 ‘통화정책·재정정책 총동원’ 프로그램을 암시한다. 이는 일본 아베 내각 초기에 도입된 재정 + 무제한 양적완화 콤비를 연상시킨다. 일본은 국채 금리에 상한(YCC)을 두고 중앙은행이 국채 발행을 사실상 모네타이즈했다. 만약 미국이 유사 조합을 시도할 경우:
- 연준 대차대조표 9조 → 12조 달러 확대 가능
- 미국 AAA 신용등급 상실 위험 재부상
- 글로벌 CB 보유 달러채 비중(59%) → 55% 이하 하락 잠재력
7. 필자의 통찰 — ‘제4의 연준개혁’ 기로에 선 미국
① 1913년 설립,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그린스펀 이노베이션 — 연준은 세 번의 구조·정책 변곡점을 겪었다. 지금은 네 번째 기로다.
② 정치적 단기 유불리보다 장기 균형물가·잠재성장률을 중시하는 설계 철학이 훼손되면, 세계 최대 자본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과거로 회귀한다.
③ 투자자 입장에서는 ‘연준 의도 읽기’보다 ‘제도 신뢰도 변화’에 베팅하는 국면. CPI·PCE 숫자만큼이나 대법원 판결문 한 줄이 중요해졌다.
※ 본 칼럼은 기자의 전문적 견해이며, 연준·미 대법원 및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