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주 탬파 연방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제기한 15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 명예훼손 소송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고소장이 절차 규정을 위반했으며, 사실상 ‘상대를 향한 거친 비난의 장’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스티븐 메리데이 미국 연방지법 판사는 이번 판결에서 “소장은 연방 민사소송규칙(Federal Rule of Civil Procedure) 8(a)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밝혔다. 해당 규칙은 원고가 승소해야 할 근거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제시하도록 요구한다.
“소장은 피고에게 제기된 주장과 그 내용을 공정·정확·직설·절제·경제적으로 알릴 의무가 있다. 법원은 ‘비난과 욕설’을 토해내는 공개 플랫폼이 아니다.”― 스티븐 메리데이 판사 판결문에서
메리데이 판사는 원고 측에 28일의 추가 기간과 40쪽 분량 내에서 수정 고소장을 제출할 기회를 부여했으나, 트럼프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백악관과 트럼프 법률팀 역시 로이터 통신의 질의에 즉각 응답하지 않았다.
■ ‘비난의 장’이 된 소장…연방규칙 8(a) 위반
연방 민사소송규칙 8(a)는 소장의 기본 요건을 규정한다. 첫째, 관할권 진술; 둘째, 간단·명료한 청구 원인; 셋째, 구제 요청. 일반적으로 소장이 산만·모호·장황할 경우 법원은 ‘문답식(Motion to Dismiss)’ 절차를 통해 각하 가능하다.1 트럼프 소장은 40쪽 한도를 훌쩍 넘겨 100쪽에 달했으며, 법적 근거보다 정치적 수사를 앞세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 ‘명예훼손’ 쟁점과 150억 달러 손해배상 청구
트럼프 측은 2024년 10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납세 기록·재정 상태 관련 기사가 “악의적 허위”라며, 150억 달러의 상징적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다만 미국 법체계상 공인·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은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 입증이 필수다.
‘실질적 악의’란 피고가 보도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혹은 진위 여부를 심각하게 의심하면서도 이를 게재한 경우에만 인정된다.뉴욕타임스 대 설리번(NYT v. Sullivan) 판례, 1964 트럼프 측은 해당 기사들이 ‘근거 없는 추정’에 기반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번 판결은 “판례상 요구되는 요건 자체에 접근하기 전, 소장 형식부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 법적 용어 해설: ‘vituperation’과 ‘invective’
메리데이 판사는 소장을 “vituperation and invective”로 묘사했다. 두 단어 모두 ‘신랄한 욕설·혹평’을 의미한다. 즉, 원고 측이 법정 대신 ‘정치적 설전’을 벌였다는 뉘앙스로 해석된다.
■ 트럼프의 소송 전략과 정치적 배경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4년 이후 뉴욕·조지아·워싱턴DC에서의 형사 기소와 별개로, 언론사를 상대로 다수의 민사소송을 제기해왔다. 전문가들은 “언론 보도를 위축시키려는 전략적 소송(SLAPP) 성격”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플로리다주는 2020년대 후반부터 SLAPP 법의 방어장치를 강화해, ‘공공 이익’ 보도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을 억제하고 있다.
■ 뉴욕타임스의 반응
뉴욕타임스 대변인은 지난 18일 성명에서 “언론 자유와 시민들의 알 권리를 지키겠다는 사명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다만 회사 측은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 구체적인 논평은 삼가겠다”는 원칙을 유지했다.
■ 향후 전망
트럼프 측이 28일 내에 수정 소장을 제출할 경우, 법원은 형식적 요건 충족 여부를 다시 심사하게 된다. 만약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실질적 악의’ 입증 문턱은 여전히 높다. 일부 법조계 전문가는 “해당 기사들이 이미 공익적 가치가 크고, 자료 근거를 갖춘 탐사보도라는 점에서 트럼프 측 승소 가능성은 제한적”이라 분석했다.
■ 기자 전문 분석
이번 판결은 ‘정치적 의도’가 짙은 민사소송에 대한 연방법원의 절차적 경계심을 잘 보여준다. 특히 미국 대선 국면에서 ‘소송을 통한 메시지 전략’이 반복될 경우, 재판부가 절차 위반을 가차 없이 지적하며 조기 각하를 선호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언론 자유 수호와 동시에 사법부 자원 낭비 최소화라는 두 목표를 양립시키려는 연방 사법부의 기조로 해석된다.
1) 규칙 12(b)(6) ‘Failure to state a claim’ 절차: 피고가 소장 기각을 신청할 때 주로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