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발 – BNY 멜런(Bank of New York Mellon·이하 BNY)이 노던트러스트(Northern Trust)와의 대형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민주)이 연방 은행법 및 독점금지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며 강도 높은 경고장을 발송했다.
2025년 7월 22일,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워런 의원은 같은 날 로빈 빈스(Robin Vince) BNY 최고경영자(CEO) 앞으로 서한을 보내 “세계 최대 수탁은행(custody bank)이 주요 경쟁사와 결합하면 금융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시장지배력이 과도하게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BNY는 현재 전 세계 자산보관·관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노던트러스트 역시 상위권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카고 기반 금융기관이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단순 합산하면 1천억 달러에 육박하는 초대형 기관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노던트러스트 측은 WSJ(월스트리트저널) 6월 보도 직후 “독립 경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수탁은행이란 무엇인가?
수탁은행(custody bank)은 기관투자가·연기금·헤지펀드 등 대규모 자금을 보유한 고객의 자산을 ‘보관·결제·회계·리스크 관리’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전문 은행을 뜻한다. 한국의 국민연금도 해외투자 자산을 맡길 때 BNY, 스테이트스트리트(State Street) 등 글로벌 수탁은행을 활용한다.
수탁은행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고, 상위 4~5개사가 글로벌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해 ‘과점(寡占)’ 구조가 뚜렷하다.
워런 의원의 핵심 우려
워런 의원은 서한에서 “합병이 성사될 경우 미국 수탁 서비스 시장점유율이 30%를 훌쩍 넘어 실질적 독점 상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 지배력 강화는 수수료 인상·서비스 품질 저하·혁신 동기 약화로 이어져 기관투자가 선택권을 더욱 좁힐 수 있다”
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시스템적 중요 금융기관(SIFI) 규제를 언급하며 “BNY의 리스크 프로필이 이미 막대한데, 노던트러스트를 흡수하면 ‘규모가 곧 위험’이 되는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한에는 ▶합병 논의 진행 상황 ▶연방준비제도·미국 통화감독청(OCC)·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주요 규제기관과의 사전 협의 여부 ▶잠재적 컴플라이언스 비용 전망 등을 상세히 보고하라는 요구가 포함돼 있다.
시장·정책 환경 변화
이 같은 대형 M&A 추진 배경에는 미국 행정부의 정책 기류 변화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일부 규제당국 관계자들은 대형은행 간 합병 심사 기준 완화를 검토해 왔다. 반면 조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는 ‘대형 금융사 결합 억제’ 기조가 뚜렷했으나, 최근에는 경기 둔화·수익성 저하 압박 속에서 업계 재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본비용 상승, 디지털 전환 투자 부담이 커지자 규모의 경제 확보가 절실해졌고, 이에 따라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은행(G-SIB) 간 빅딜 가능성이 되살아났다”고 전했다. 다만 수탁업무처럼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분야는 승자의 지위가 더욱 공고해지기 때문에, 규제당국 심사가 훨씬 까다로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반독점법(antitrust) 쟁점
미국 반독점법은 특정 기업이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점유율 30% 이상을 확보하고 경쟁을 현저히 제한할 가능성이 있으면 법무부(DOJ)·연방거래위원회(FTC)가 거래를 차단하거나 조건부 승인(자산 매각·사업 분리 등)을 내릴 수 있다. 과거에도 BB&T·선트러스트 합병(현재의 Truist)이나 TD·퍼스트호라이즌 합병 시도 등이 이 과정을 거쳤다.
워런 의원은 서한에서 “BNY가 이미 수탁시장 1위인 상황에서 2~3위권 업체를 추가로 흡수하면 ‘지나친 시장 집중(too much concentration)’이라는 명백한 금지 요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규제 공백을 틈타 위험을 키우는 것은 ‘무책임’하며, 연방 은행법(특히 BHC Act·CLBA)을 위반할 소지가 크다”고 못 박았다.
업계·전문가 시각
BNY와 노던트러스트 모두 로이터 문의에 공식 답변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애널리스트는 “실제 협상이 구체화되더라도 규제 리스크가 워낙 커 ‘거래 무산’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평가한다. 반면 일부 투자은행(IB)은 “예상 시너지 규모가 연간 10억 달러 이상인 초대형 건”이라며 수익성 개선·글로벌 확장 효과에 주목한다.
전문가들은 또 “자산관리·연금·펀드 회계 등 백오피스 서비스 통합으로 운영 효율성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지만, 거대 고객(예: 일본 GPIF·노르웨이 GPFG 등) 의존도가 커지면 시스템 리스크가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 ‘단일 기관 실패가 글로벌 결제망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는 교훈과도 맞닿아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
첫째, BNY가 워런 서한에 어떻게 답변하느냐에 따라 합병 논의 속도가 달라질 전망이다. 답변 내용이 공개되면 ▶규제당국 예비접촉 여부 ▶내부 리스크 평가 결과 ▶합병 구조(주식교환 비율·지주사 체제 등)가 더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연준(Fed)·OCC·FDIC 등 감독기관이 공동 공청회(public meeting)를 개최할지 주목된다. 2022년 TD·퍼스트호라이즌 거래 검토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역사회단체·연금운용기관·경쟁사가 대거 참가해 찬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셋째, 2024년 대선 이후 임명된 규제당국 인사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도 변수다. 공화당 주도 규제 완화가 재부상할 경우 합병 승인 가능성이 커지지만,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할 경우 ‘빅테크·빅뱅크 견제’ 기조가 더 강해질 수 있다.
기자 해설
이번 사안은 ‘은행업의 플랫폼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결제·보관·데이터가 한몸처럼 연결된 디지털 시대에는 고객 락인 효과가 더욱 강화돼, 한 번 점유한 시장은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규제기관은 ‘기술 결합에 따른 시스템 위험’을 인수·합병 심사 때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글로벌 경쟁 구도다. 수탁서비스는 스테이트스트리트·JP모건 체이스·씨티그룹 등 소수 미국계 은행이 주도해 왔지만, 최근엔 BNP파리바·HSBC·스탠다드차타드 등 유럽·아시아계 은행도 공격적 확장을 시도 중이다. 만약 BNY-노던트러스트 합병이 좌초되면, ‘다자 간 제휴’나 ‘크로스보더 전략적 협약’ 같은 대안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요컨대 이번 논쟁은 단순한 기업 결합 문제를 넘어, 미국 금융산업의 구조적 리스크·경쟁 질서·글로벌 헤게모니가 맞물린 복합 사안으로 평가된다. 규제기관과 의회의 판단이 세계 수탁시장 재편 방향을 가늠할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