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인디아 171편 추락 유족, 美 델라웨어주 법원에 소송
미국 로이터통신이 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2일 인도 아메다바드에서 런던으로 향하다 이륙 직후 추락한 에어인디아 171편(Air India Flight 171) 사고와 관련해 희생자 네 가문의 유족이 보잉(Boeing)과 하니웰(Honeywell)을 상대로 과실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9월 17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델라웨어주 상급법원(Superior Court)에 접수됐으며 사건 번호는 N25C-09-145다. 원고 측은 사고 당시 사망한 칸타벤 디루브하이 파가달, 나브야 치라그 파가달, 쿠베르바이 파텔, 바비벤 파텔 등 네 명의 유족이다. 171편에는 승객 229명, 승무원 12명, 총 241명이 탑승했으며 지상 사상자 19명까지 포함해 사망자는 총 260명, 생존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원고는 ‘연료 차단 스위치(fuel cutoff switch)’의 잠금장치 결함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고소장에는 “보잉 787-8 드림라이너 기종의 스로틀 레버 바로 뒤에 위치한 해당 스위치는 잠금장치가 해제되거나 설치 자체가 누락될 경우 조종실 내 정상적인 작업 과정에서도 우발적으로 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기재돼 있다.
이 스위치가 꺼지면 연료 공급이 즉시 중단돼 이륙에 필요한 추력이 사라지는데, 제조사와 설치사는 이러한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유족 측의 주장이다.
FAA 경고에도 조치 없었다는 의혹
소장에 따르면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2018년 여러 대의 보잉 항공기에서 잠금장치가 해제된 연료 차단 스위치가 발견됐다며 주의를 환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잉(설치사)과 하니웰(제조사)은 설계 변경이나 추가 안전장치를 도입하지 않았다고 원고 측은 주장한다. “보잉은 스위치를 스로틀 레버 바로 뒤에 배치함으로써 조종사가 레버를 조작할 때마다 스위치가 실수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사실상 ‘보장’했다”고 소장은 지적했다.
보잉 본사는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하니웰 본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 각각 위치해 있으며 두 회사 모두 법인이 델라웨어주에 등록돼 있다. 로이터통신은 두 기업에 논평을 요청했으나, 보잉은 “언급을 자제한다”고 답했고 하니웰은 기한 내 응답하지 않았다.
사고 조사 경과와 각국 기관의 입장
사고 원인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 인도 항공사고조사국(AAIB)이 2025년 7월 발표한 예비 보고서는 “추락 직전 조종실 내 혼란과 통신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연료 차단 스위치가 실제로 작동됐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같은 달 미국 FAA 국장 브라이언 베드퍼드는 청문회에서 “기계적 결함이나 연료 제어 장치의 우발적 작동이 원인이라고 볼 만한 근거가 적다”며 높은 신뢰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원고 측은 “제조사와 설치사가 장치 결함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며 과실 책임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소송은 구체적 액수를 명시하지 않은 징벌적 및 보상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
보잉, 잇따른 대형 사고로 200억 달러 이상 비용 부담
보잉은 이미 2018년과 2019년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 에티오피아항공 737 MAX 추락 사고로 200억 달러(약 26조 원)가 넘는 법적·재정적 비용을 떠안았다. 당시 베스트셀링 기종 737 MAX는 20개월간 운항이 중단돼 글로벌 항공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소송이 787-8 드림라이너 안전성 문제로 확전될 경우, 보잉은 또다시 막대한 재정·평판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니웰 역시 항공 전자·엔진·기내 제어장치 등 항공 핵심 계통 부품 공급사로서 탑재 제품의 안정성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료 차단 스위치란 무엇인가?
연료 차단 스위치는 엔진으로 공급되는 항공유 흐름을 즉시 차단해 엔진을 멈추게 하는 안전 장치다. 일반적으로 화재, 유지보수, 비상 정지 상황에서 사용되며, 비행 중에는 잠금장치로 보호해 임의 조작을 방지한다. 그러나 잠금장치가 느슨하거나 설치되지 않았을 경우 조종사의 무의식적 움직임만으로도 스위치가 꺼질 수 있어, 이륙 단계와 같이 최대 추력이 요구되는 순간에는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보잉 787-8 드림라이너는 최신 복합소재 동체·고효율 엔진을 탑재한 중장거리 기종이지만, 스위치 위치 논란은 2010년대 일부 조종사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스로틀 레버를 전진시키는 동선과 스위치의 위치가 겹칠 경우 조종사의 팔꿈치나 장비가 스위치를 스치며 작동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한다.
소송의 의미와 향후 전망
이번 소송은 171편 추락 사고와 관련해 미국 내에서 제기된 첫 번째 법적 대응으로, 관할지인 델라웨어는 다국적 기업 본사 및 지사가 대거 설립돼 있는 ‘기업 친화적’ 주법(州法)으로도 유명하다. 원고 측은 미국 법원이 인정하는 삼배 징벌적 손해배상 및 배심원제를 통해 배상 규모를 극대화할 전략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도와 영국 정부는 자국민 희생자에 대한 영사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나, 아직 공식적인 국가 간 외교 분쟁으로 번지지 않은 상태다. 추락 원인에 대한 최종 보고서는 인도·영국·미국 3개국 합동 조사단이 작성 중이며, 발표 시점은 2026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FAA 예비 평가는 기계적 결함 가능성을 낮게 본 반면, 원고 측은 제조·설치사의 구조적 과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어, 법정에서는 복잡한 기술적 공방이 예상된다”라며 “보잉과 하니웰이 공통으로 갖는 책임 비율 산정, 국제 사법 관할권,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소송은 항공 안전 시스템 설계와 공급망 관리의 미비가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과 함께, 글로벌 항공산업 전반에 안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