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시애틀발 특별보도―지난달 인도 아메다바드에서 발생한 에어인디아 787 여객기 추락사고와 관련해, 조종석 음성기록장치(CVR)에 담긴 대화가 기장이 엔진 연료공급을 직접 차단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7월 21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미국 당국의 초기 평가를 전달받은 소식통은 “기장이 두 개의 연료 스위치를 ‘런(run)’에서 ‘커트오프(cut-off)’ 위치로 옮겼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화 내용이 녹음돼 있다고 전했다. 해당 소식통은 조사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조건으로 로이터통신에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부기장이 실제 조종간을 잡고 있던 당시, 부기장은 기장에게 “왜 연료 스위치를 옮겼느냐”고 질문하면서 즉각적으로 연료 흐름을 복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기장은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았으며, 이 대화는 곧 추락으로 이어진 비극적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사고 개요 및 조사 현황
사고는 2025년 6월 12일 오전, 아메다바드 공항을 이륙한 직후 발생했다. 승객 242명과 승무원 18명 등 총 260명이 탑승한 런던행 항공편은 이륙 직후 추력을 잃고 고도 650피트(약 198m)에서 급격히 하강, 인근 의과대학 건물에 충돌해 탑승자 242명 중 241명과 지상에 있던 19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이는 최근 10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큰 항공사고로 기록됐다.
“사고 원인은 아직 공식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승무원에 의한 연료 차단 가능성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 미 항공안전전문가 존 낸스
인도 민간항공부 산하 항공사고조사국(AAIB)은 7월 20일 발표한 예비조사 보고서에서 “한 조종사가 ‘왜 연료를 차단했느냐’고 물었고, 다른 조종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는 CVR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두 발언이 각각 수밋 사브하르왈 기장(총 비행경력 15,638시간)과 클라이브 쿤더 부기장(3,403시간) 중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양쪽 엔진의 연료 스위치는 이륙 직후 1초 간격으로 동시에 ‘커트오프’ 위치로 전환됐으며, 즉각 램 에어 터빈(Ram Air Turbine, RAT)이 전개됐다. RAT는 주 엔진의 동력 상실 시 외부 공기 흐름을 이용해 전력을 공급하는 비상 발전 장치로, 전개 자체가 ‘엔진 파워 로스’를 의미한다.
엔진 동력이 사라지자 자동 시스템은 스위치를 다시 ‘런’ 위치로 돌려 재점화 절차를 실행했으나, 이미 고도가 낮고 속도가 충분치 않아 항공기는 회복하지 못했다. 항공안전 전문가 낸스는 “다른 논리적 설명이 사실상 없다”면서도, “조사당국은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때까지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美·印 당국 간 공조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인도 측과 공동으로 비행 데이터 기록장치(FDR) 판독을 지원하고 있으며, 제니퍼 호멘디 위원장은 “국제 항공안전은 희귀 사고에서 최대한의 교훈을 얻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FDR·CVR 자료는 현재 엔진 제조사 GE와 기체 제작사 보잉에도 전달돼 교차 분석 중이다.
이와 함께 FAA(미 연방항공청)와 보잉은 사고 후 내부 알림을 통해 “787 기종의 연료 스위치 잠금장치는 안전하다”는 잠정 결론을 구성원에게 공유했다. 이는 AAIB 예비보고서가 기체·정비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법적·사회적 파장
사실관계 확정 전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인도항공조종사연맹(FIP)은 로이터통신이 7월 17일 게재한 관련 기사에 대해 “사망한 조종사에게 책임을 귀속하는 추측성 보도”라며 중단을 요구하는 법적 통보를 보냈다. AAIB 역시 “조사는 진행 중이며, 확정적 결론을 내리기엔 시기상조”라고 경고했다.
대규모 희생과 조종사 행동이 맞물리면서, 업계에선 ‘조종실 영상기록장치(Cockpit Image Recorder)’ 의무화 논의가 재점화됐다. 낸스는 “이번 사고가 영상 데이터 부재의 한계를 보여 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시각과 추가 설명
★ 램 에어 터빈이란?
항공기가 공중에서 엔진 동력을 상실하면, 기수 또는 동체 측면에서 작은 프로펠러가 튀어나와 외부 공기를 받아 회전한다. 이를 통해 필수 계기와 유압장치에 최소한의 전력을 공급, 안전한 착륙을 돕는다. RAT 전개 자체가 ‘엔진 출력 손실’의 명백한 징후다.
★ 연료 스위치 ‘런/커트오프’
‘런’ 위치는 연료가 엔진으로 정상 공급돼 시동 및 운전이 가능한 상태다. 반대로 ‘커트오프’는 연료 흐름을 즉각 차단해 엔진을 정지시키는 장치다. 조종석 센터콘솔 상단부에 두 개가 나란히 배치되며, 비정상 조작 시 곧바로 추력 상실로 이어진다.
업계 관계자들은 비행 초기 단계에서의 이탈 사고가 드물다는 점, 두 스위치가 1초 간격으로 ‘동시’ 전환된 점 등을 근거로 ‘인적 요인’을 주된 변수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과실·고의·시스템 인터랙션 중 어느 항목이 결정적 요인이었는지는 최종보고서가 나와야 규명될 전망이다.
현재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상, 사고 발생 12개월 이내에 최종조사보고서를 발간해야 한다. AAIB는 “필요하다면 중간보고서를 추가 공개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캠벨 윌슨 에어인디아 최고경영자(CEO)는 7월 18일 사내 메모에서 “정비·기계적 결함이 없었다는 예비조사 결과를 공유하며, 모든 정비 규정이 준수됐다”고 임직원에게 설명했다. 이는 향후 법적 책임 소재가 ‘조종사 과실’로 집중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업계 전문가들은 “다중 요인이 결합된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교육·피로·조종실 문화 요소도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인도 항공산업은 급격한 성장으로 조종사 수급·훈련 체계가 압박을 받고 있어, 제도적 개선 논의가 병행될 전망이다.
이번 사고가 남긴 핵심 교훈은 ‘비행 초기 단계에서 발생 가능한 인위적·기계적 리스크에 대한 즉각 대응체계 강화’다. 전 세계 항공당국은 예비조사 결과를 참고해 자체 절차·교범 개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결국, 연료 차단 스위치가 왜, 어떻게, 누가 조작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향후 조사·소송·정책 논의의 축이 될 전망이다. 업계와 유가족, 그리고 전 세계 승객들은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며 최종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