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필립 라퐁, 슈퍼마이크로 컴퓨터 지분 전량 매도…9분기 만에 AI 공룡 엔비디아에 재진입

■ 핵심 요점

• Form 13F 제출은 월가 대형 운용사들의 매매 내역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다.
• 억만장자 필립 라퐁(Philippe Laffont)은 2분기 동안 슈퍼마이크로 컴퓨터(Super Micro Computer) 주식 8,886,735주(3월 말 기준 시가 약 3억300만 달러) 전량을 처분했다.
• 같은 기간 라퐁이 이끄는 코튜 매니지먼트(Coatue Management)는 인공지능(AI) 붐에 대응해 엔비디아(Nvidia) 주식을 34% 늘렸다.


2025년 8월 22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14일 마감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13F 제출 기한을 통해 월가 주요 헤지펀드의 2분기 포트폴리오가 공개됐다. 13F는 분기마다 1억 달러 이상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이 보유 종목을 신고하도록 한 의무 보고서다. 실적 발표 시즌이 기업의 건강 상태를 보여준다면, 13F는 어떤 섹터와 종목에 ‘큰손’의 자금이 몰렸는지를 가늠케 한다.

라퐁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으로 ‘타이거 글로벌’ 출신이라는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기술·인터넷·미디어 섹터에 집중 투자해온 인물로, 특히 인공지능 생태계에 선제적으로 베팅해 왔다. 이번 분기 보고서는 그가 보유 종목을 과감히 교체하며 AI 투자 전략을 한층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슈퍼마이크로 컴퓨터 전량 매각 ― 배경과 의미

코튜 매니지먼트는 2분기 들어 보유 종목 10여 개를 완전히 정리했는데, 그중 가장 주목을 받은 사례가 슈퍼마이크로 컴퓨터(SMCI)다. 해당 종목은 AI 서버·랙 시스템을 맞춤형으로 제공해 시장에서 ‘데이터센터 인프라 대표주’로 분류된다.

라퐁이 전량 매도한 표면적 이유는 차익 실현으로 보인다. 그는 2024년 4분기에 SMCI를 편입했는데, 당시 주가는 20달러대였고 2025년 2분기 후반에는 40~50달러 박스권을 형성했다. 단순 계산 시 세 자릿수(100%+) 수익률이 가능했다.

그러나

“단순 차익 실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리스크 회피 요인도 있었다”

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 SMCI 주가는 공매도 리포트와 연례보고서(10-K) 지연 제출 등으로 급락했고, 이는 경영진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 독립 특별위원회가 2024년 12월 ‘위법 행위 없음’을 결론냈지만, 시장은 여전히 프리미엄을 부여하지 않았다.

또한 AI 서버 시장의 경쟁 심화도 무시할 수 없다. 생산 확대와 후발주자 진입이 본격화되면 SMCI의 맞춤형 랙 서버 가격 결정력은 약화될 수 있고, 이는 마진 압박으로 이어진다.

펀드매니저 분석 이미지


엔비디아에 9분기 만의 ‘턴어라운드’ 매수

반면 라퐁은 이번 분기에 엔비디아(NVDA)를 294만2,694주 매수해 보유량을 34% 늘렸다. 이는 2023년 4분기 이후 8분기 연속 순매도 기조를 뒤집은 것이다. 2024년 6월 10대 1 주식분할 효과를 감안하면, 라퐁은 지난 2년간 누적 4,100만 주 이상을 처분해 왔다.

매수 타이밍은 엔비디아 주가가 1월 초 대비 4월 초까지 약 40% 조정받은 구간과 겹친다. 대중관세(타리프) 불확실성 등 외부 변수로 인한 조정이 일시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의 ‘지속 가능한 해자(護城河)’도 재진입 배경으로 지목된다. AI 데이터센터용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 ‘호퍼(H100)’·‘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는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창업자 겸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12개월마다 신형 AI 칩을 출시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하며 혁신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엔비디아 생태계를 굳건히 하는 또 다른 축은 CUDA 플랫폼이다. CUDA는 개발자가 AI GPU 연산 능력을 극대화하고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학습·배포하는 데 필수적인 툴로 자리 잡았다.

엔비디아 본사


하지만 ‘AI 버블’ 위험도 상존

지난 30여 년간 인터넷, 스마트폰, 블록체인 등 차세대 기술은 초기 과열 후 거품 붕괴를 겪는 공통점을 보였다. AI 역시 장기적으로는 구조적 성장 동력이지만, 단기적으로 채택 속도를 과대평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AI 관련주가 패러볼릭(parabolic) 상승을 이어가던 흐름이 꺾일 경우, 시가총액 1위인 엔비디아는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또한 GPU 부족 현상이 완화되면 경쟁사 및 자체 칩 개발 기업이 늘어나 가격 결정력·매출총이익률(Gross Margin)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투자자 유의사항 및 용어 해설

Form 13F는 기관이 분기 말 기준 보유한 상장주식을 보고하는 공개 서류다. 일반 투자자는 약 45일 시차가 있지만, 대형 펀드의 종목 교체 흐름을 파악하는 참고 지표로 활용한다.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원래 그래픽 처리를 위해 개발됐으나, 병렬 연산 구조 덕분에 AI,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등 고성능 컴퓨팅 분야 핵심 부품으로 진화했다.

CUDA는 엔비디아가 2007년 선보인 병렬 컴퓨팅 라이브러리로, 개발자는 이를 통해 GPU 자원을 세밀하게 제어하고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추론할 수 있다.

라퐁의 매매는 기관 투자 전략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SMCI 매도는 리스크 관리와 차익 실현, 엔비디아 매수는 구조적 성장성에 대한 신뢰로 읽힌다. 다만 AI 시장 과열과 경쟁 심화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는 포트폴리오 내 비중·밸류에이션·리스크 허용도를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