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이하 아멕스)가 자사 대표 상품인 플래티넘 카드를 전면 개편하며 프리미엄 신용카드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이번 개편으로 개인·비즈니스 카드 모두 연회비가 한꺼번에 895달러로 뛰어올라 기존 695달러 대비 약 29% 인상됐지만, 연간 혜택은 두 배 이상 확대됐다.
2025년 9월 18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아멕스는 카드회원이 받을 수 있는 연간 총 혜택을 3,500달러로 끌어올렸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실제로 카드 이용자가 해당 크레딧(credit)을 모두 활용할 경우 순이익이 크게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크레딧이란 카드사가 특정 가맹점 결제액을 상쇄해 주는 ‘할인 쿠폰’의 개념으로, 기본 포인트 적립과는 별도로 제공된다.
주요 혜택을 살펴보면 우버(Uber)·룰루레몬(Lululemon)·오우라(Oura)·레지(Resy) 등 생활·헬스·외식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크레딧이 포함됐다. 오우라는 수면·활동량을 분석하는 스마트 링 제조사이며, 레지는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레스토랑 예약 애플리케이션이다. 호텔·스트리밍 구독 서비스에 대한 혜택도 기존보다 강화됐다. 비즈니스 카드 이용자는 여기에 델 테크놀로지(Dell Technologies)와 어도비(Adobe) 제품·서비스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신규 크레딧까지 더해진다.
“이번 개편에서 기존 혜택은 하나도 축소되지 않았다”
고 하워드 그로스필드(Howard Grosfield) 아멕스 미국 소비자 서비스 부문 사장은 밝혔다. 즉, 라운지 이용·항공사 수하물 우대·프리미엄 호텔 멤버십 등 ‘레거시’ 혜택은 유지되면서 새 크레딧이 추가되는 구조다.
프리미엄 카드 ‘군비 경쟁’ 가속*1
아멕스의 발표는 최근 JP모건체이스(JPMorgan Chase)와 씨티그룹(Citigroup)이 잇따라 고급 카드 라인업을 확장·업그레이드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아멕스는 지난 6월 ‘역대 최대 규모’ 투자를 강조하며 플래티넘 카드 개편 계획을 예고했고, 바로 다음 날 JP모건은 새 사파이어 리저브(Sapphire Reserve) 혜택을 공개했다. 경쟁사 간 ‘맞불’ 양상이 명확해진 셈이다.
카드사들이 공격적으로 나서는 배경에는 상위 10% 고소득층이 미국 소비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무디스 애널리틱스(Moody’s Analytics) 통계가 있다. 팬데믹 이후 해외 여행·레저·외식 수요가 폭발적으로 회복되면서 ‘하이엔드’ 고객을 선점하려는 전략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연회비 상승은 양날의 검이다. 뱅크레이트(Bankrate) 수석애널리스트 테드 로스먼(Ted Rossman)은 “일부 고객이 플래티넘 등급을 다운그레이드하거나, 캐피털원(Capital One)·씨티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상품으로 갈아타는 움직임도 감지된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시판 레딧(Reddit)에서는 “혜택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쿠폰북(card coupon book)’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멕스는 이러한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해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그로스필드 사장은 “회원이 혜택을 쉽게 이해·등록·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재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레시 다이닝 크레딧 400달러나 룰루레몬 크레딧 300달러를 받으려면 온라인에서 별도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앱 내 ‘원클릭’ 자동 적용 기능이 제공된다.
기존 개인 플래티넘 보유자는 2025년 1월 2일 이후 갱신되는 결제 주기부터 인상된 연회비가 적용된다. 업계에서는 향후 JP모건·씨티 등 경쟁사도 선별적 연회비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 시각
프리미엄 카드가 단순 ‘지출 결제 수단’에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여행·웰빙·디지털 콘텐츠 등 삶의 질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이 고착화되면서, 카드사는 크레딧 제공처를 확대해 고객 접점을 생활 전반으로 넓히고 있다. 이는 빅테크·리테일 기업과의 제휴 수수료, 추가 데이터 수집, 교차 판매(cross-selling) 등 부가 수익 창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연회비 상승만으로 손익을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혜택 과부하(benefit overload)’로 인한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다. 소비자는 점점 복잡해지는 약관·조건을 이해해야 하고, 카드사는 미사용 크레딧에 대한 불만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인 UX 개선과 교육이 필요하다. 향후 승자는 ‘높은 혜택’이 아니라 ‘쉬운 사용 경험’을 제공하는 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1 군비 경쟁(Arms race) : 본래 군사적 용어이나, 여기서는 기업 간 혜택 확대 경쟁을 비유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