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중앙은행, 페소 급락 억제 위해 6년 만에 최대 규모 달러 매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BCRA)이 6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달러를 순매도하며 페소화 가치 하락을 저지했다. 국가 재정과 외환시장에 대한 불안을 반영하듯, 단 하루에 6억7,800만 달러가 외환보유액에서 빠져나갔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개입은 2019년 10월 이후 하루 기준으로 최대치다. 최근 3거래일 동안 중앙은행이 순매도한 달러 규모는 총 11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금융시장에 몰린 달러 수요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 주는 지표다.

중앙은행은 변동환율 밴드 상단에서 유동성을 관리해 왔다. 하지만 페소화가 사상 최저 수준 부근까지 추락하자, 경제장관 루이스 카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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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상단에서 필요하다면 중앙은행 보유 달러를 마지막 한 푼까지 모두 팔 것”

이라고 전면 방어 의지를 밝혔다.

시장 분위기는 10월 26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더욱 경직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리버테리언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 법안이 의회에서 제동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제도권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페소의 두 얼굴: 공식·비공식 환율

공식 도매환율은 중앙은행의 적극적 개입 덕분에 달러당 1,475페소로 안정을 유지했다. 이는 현행 변동밴드 상단 근처다. 그러나 비공식 ‘블루(blue) 마켓’에서 페소화는 같은 날 달러당 1,520페소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주간 약세 폭은 6%를 넘어섰다.

‘블루 마켓’은 정부가 규제하는 공식시장이 아닌 거리 환전상과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한 비공식 현금 거래 시장을 의미한다. 여기서 형성되는 환율은 자본통제의 실효성과 국내 경제 신뢰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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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중앙은행은 지난 4월 중순 이후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다가, 이번에 대규모 달러 매도를 단행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200억 달러 규모 국제통화기금(IMF) 지원 프로그램으로 외환 규제를 다소 완화했으나, 최근 재정 상황이 다시 악화하면서 시장 개입이 불가피해졌다는 평가다.

시장조사업체 BancTrust & Co는 “현재 속도로 달러를 판매할 경우 선거 전까지 약 100억 달러의 외환이 소진될 것”이라며, 이는 IMF가 이미 집행한 자금의 70%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BancTrust는

“이 같은 추세라면 선거 이전에 변동환율 밴드 정책을 포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고 덧붙였다.

공식 외환보유액은 392억6,000만 달러로 집계되지만, 실제 개입에 쓸 수 있는 순가용 외환은 60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계속된 달러 매도가 단기 부채 상환 재원을 잠식하고, 부족한 유동성을 채우기 위해 국채 발행이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카푸토 장관은 “현 환율 체계를 유지하겠다”며 “1월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 이행을 위해 재무부가 대책을 마련 중이며, 완료되는 대로 채권단에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심리 경색: 국가 리스크·채권·주식 동반 약세

같은 날 아르헨티나 국가 리스크 지수는 1,500bp(베이시스포인트)로 2024년 8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장외 채권 가격은 평균 1.4% 하락했고, 주간 낙폭은 9.2%에 이르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식시장(S&P Merval)도 0.7% 하락 마감했다.

선거를 40여 일 앞둔 상황에서, 수도권인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 잇따라 패배한 집권 세력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위험 프리미엄을 지속적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배경과 전망

밀레이 대통령은 강력한 화폐 자유화와 금융시장 개방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왔다. 그러나 의회 의석 구조상 야당과의 절충이 필수적이며,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 추진 동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투자자들은 정책 지속성보다 즉각적인 유동성 확보를 우선하며 달러에 몰리고 있고, 중앙은행은 이에 맞서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는 ‘지속 불가능한 방어전’을 택한 모양새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신뢰 회복 없이는 아무리 큰 외환보유액도 사라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며, “금리 정책·재정 개혁·정치적 합의가 병행돼야만 지속가능한 안정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향후 수주간은 달러 매도 속도와 외환보유액 감소세, 그리고 국내 정치 이벤트가 아르헨티나 자산 가격을 좌우할 전망이다. 투자자들에게는 변동성 확대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가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