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거래소(Singapore Exchange·SGX)가 2000년 자사 주식 상장 이후 사상 최대 연간 순이익을 기록하며 글로벌 자본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회사 측은 30곳이 넘는 기업이 상장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밝히며, 최근 몇 년간 부진했던 싱가포르 IPO(기업공개) 시장에 모처럼 활기가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다.
2025년 8월 8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SGX는 2024/25 회계연도(2024년 7월~2025년 6월) 조정 순이익이 전년 대비 15.9% 증가한 S$6억 950만 싱가포르달러(약 4억 7,520만 달러)로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1.7% 늘어난 S$13억에 달했다.
로 분기별 배당 확대도 예고됐다. SGX는 이번 실적 발표와 함께 주당 10.5 싱가포르센트의 최종 분기 배당을 선언했다. 이는 전년 동기의 9센트에서 16.7% 늘어난 규모다. 또한 FY2026~FY2028 회계연도에 분기당 0.25센트씩 배당금을 추가 인상하겠다는 중장기 배당 정책도 내놓았다.
“우리의 IPO 파이프라인은 수년래 가장 강력하다. 우리는 단순히 잠재 고객에게 홍보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상장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자문사를 선임한 기업들을 파이프라인으로 정의한다.” – 로 분 차이(Loh Boon Chye) SGX 최고경영자(CEO)
로 CEO의 설명처럼 ‘파이프라인’은 아직 청사진 단계에 머문 기업과 달리, 실제 상장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 풀(pool)을 의미한다. 이는 싱가포르 정부가 2024년 2월 발표한 ‘주식시장 경쟁력 강화 방안’의 효과가 가시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정부는 IPO(본원적 상장) 기업에 20% 법인세 환급을 제공하고, 유동성 확대 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주가 흐름 및 시장 반응
LSEG(런던증권거래소그룹) 집계에 따르면 SGX 주가는 실적 발표 당일 2.5% 하락했으나, 연초 대비 25% 상승해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같은 날 싱가포르 대표 지수(STI)는 0.8% 내렸지만 YTD(연초 대비) 11% 오르며 양호한 성적을 거두는 중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의 유동성 확대 조치가 ‘선순환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2024년 7월, 주식시장 지원책의 일환으로 S$5억 규모 자금을 조성하고, 이 중 S$11억을 세 곳의 자산운용사에 위탁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굵직한 신규 상장·추가 상장 잇따라
2025년 7월에는 일본의 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 NTT DC REIT가 7억 7,300만 달러를 조달하며 2021년 이후 최대 규모 IPO를 성사시켰다. 같은 달 홍콩 상장사인 차이나메디컬시스템(China Medical System)도 SGX에 2차 상장을 완료했다.
SGX는 주식·통화·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군을 한 플랫폼에서 거래할 수 있는 ‘멀티에셋 거래소’ 구조를 갖추고 있다. 로 CEO는 “미·중 관세 갈등 등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투자자 자금이 아시아로 다변화되는 흐름을 포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DR(싱가포르 예탁증서) 확대 계획도 나왔다. SDR은 해외 기업 주식을 SGX에서 직접 거래할 수 있게 해주는 상품이다. 현재는 태국·홍콩 기업만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으나, 수개월 내 인도네시아 기업을 추가하고, 향후 베트남 등 아세안(ASEAN) 국가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앞으로 몇 달 안에 인도네시아 기초자산을 기반으로 한 SDR을 출시할 계획이며, 베트남 등 다른 아세안 시장으로도 프로그램을 확대하고자 한다.” – 로 분 차이 CEO
한편 기사에서 언급된 환율(1달러 = 1.2826싱가포르달러)은 8월 8일 기준이다. 이는 SGX 실적의 달러 환산에 활용됐다.
전문가 시각과 전망
국내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아시아 거래소 간 ‘상장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싱가포르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과 SGX의 멀티에셋 플랫폼 전략이 투자 접근성·유동성·거래 효율성을 한층 개선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가 런던·홍콩·뉴욕에 이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제4 금융 허브’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다만 일부 투자자들은 “IPO 시장이 회복되더라도 글로벌 금리·정치 리스크를 고려할 때 상장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SGX는 배당성향 확대·상품 다각화를 통해 리스크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결국 SGX의 실적 개선과 공격적인 신규 상장 유치 전략은 아세안 금융시장의 경쟁 구도를 한층 가속화할 전망이다. 향후 몇 분기 동안 실제 신규 상장 수가 증가해 ‘말뿐인 파이프라인’이 아닌 실제 거래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