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저가항공(ULCC)의 선구자인 스피리트항공(Spirit Airlines)이 1년 사이 두 번째로 연방파산법 11조(챕터11) 보호를 신청했다. 앞선 구조조정이 재무건전성을 회복하지 못한 데 따른 결정이다.
2025년 8월 2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플로리다 미라마에서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항공사는 지난해 11월 첫 번째 파산에 들어갔다가 올해 3월 법정관리에서 졸업했으나, 현금 고갈과 누적 손실이 이어지며 다시 법원 문을 두드렸다.
2분기(4~6월) 스피리트항공은 순손실 2억4,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총영업비용은 12억 달러로, 분기 매출 대비 118%에 달했다. 회사는 운전자본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주 2억7,500만 달러 규모의 리볼빙 신용한도를 전액 인출했다고 밝혔다.
데이브 데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이전 구조조정은 부채 축소와 자본 확충에 초점을 맞췄지만,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추가 조치가 필수”라며 “채권단과 협력해 후속 자금 조달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회사는 뉴욕남부파산법원(SDNY)에 챕터11을 접수했으며, 담보사채 보유자들과 추가 DIP(Debtor-in-Possession) 파이낸싱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파산 재진입의 원인과 ‘챕터11’ 절차 해설
챕터11은 미국 기업이 파산보호 상태에서 영업을 계속하며 부채를 재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법원 승인 아래 신규 자금 조달·계약 조정·자산 매각 등을 진행할 수 있으며, 채권자 변제를 일정 기간 유예받는다. 스피리트항공은 2024년에도 해당 절차를 거쳐 7억9,500만 달러 상당의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고 3억5,000만 달러의 지분 투자를 유치했지만, 근본적인 비용 구조를 바꾸지 못해 재무 악순환에 빠졌다는 평가다.
시장 전문가들은 “조종사 인건비, 정비·연료 단가 등 고정비 부담이 치솟았음에도 요금 인상 여력이 제한된 점”을 주요 실패 요인으로 꼽는다. 또한 팬데믹 이후 소비자 선호가 ‘가격’보다 ‘경험’으로 이동하면서 초저가 모델이 흔들린 것도 배경으로 지목된다.
항공기 리스 분쟁과 운항 축소 계획
스피리트항공은 리스사 에어캡 홀딩스(AerCap Holdings)와 2027~2028년 인도 예정인 에어버스기 36대 계약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회사 측은 이번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유·임차 항공기 규모를 축소해 부채·리스 의무를 대폭 줄이고 연간 수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특정 노선·지역 철수도 병행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들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프런티어항공(Frontier Airlines)은 빈 슬롯을 채우며 노선을 확대했고, 사우스웨스트·유나이티드항공도 스피리트 보유기·운항권 인수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직원·고객 보호 조치
회사에 따르면 임직원 급여·복리후생은 평소대로 지급되며, 협력사·공급사 결제도 유지된다. 항공권 판매·예약·운항 역시 정상 진행된다. 다만 주가는 재상장 5개월 만에 44% 급락했고, 경영진은 “뉴욕증권거래소(뉴욕 아메리칸 거래소)에서 자진 상장폐지를 예상한다”고 밝혔다.
스피리트항공은 1964년 화물 운송업체로 출발해 1980년대 차터 원(Chart One)이라는 이름으로 여행 패키지 전세기를 운영했다. 1992년 ‘스피리트’로 재탄생하며 기내 서비스 대부분을 유료화하는 초저가 전략을 도입, ‘노란색 기체’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은 해당 모델을 뒤흔들었다. 거리두기·위생 우려 등으로 승객이 더 넓은 좌석, 프리미엄 서비스를 선호하면서 ULCC는 추가 수익 창출수단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스피리트는 올해 프리미엄 좌석 확대 등 ‘가치 지향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지만, 여행 수요 둔화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무역전쟁·예산 삭감 여파로 실적 반등에 실패했다.
저비용항공(ULCC)과 리스업체 용어 설명
초저가항공사(ULCC, Ultra-Low-Cost Carrier)는 기본 운임을 낮추는 대신 수하물, 좌석 지정, 기내식 등 부가서비스를 별도 과금해 수익을 올리는 모델이다. 반면 항공기 리스사는 항공기를 보유한 뒤 항공사에 임대해 운용수익을 얻는 금융·운송 복합 기업이다. 리스 계약 파기 시 위약금·자산 재배치 문제가 뒤따라 구조조정에서 핵심 쟁점이 된다.
전문가 시각
“비용 구조 개선이 수반되지 않는 단순 차입·지분출자 증가는 문제 해결을 지연시킬 뿐”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법원 승인을 거쳐 리스·인건비·노선 전면 재조정이 이뤄져야만 ‘2차 파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 변동성 확대 속에서 스피리트항공 사례는 다른 ULCC·소규모 항공사에도 ‘비용 통제와 프리미엄화 간 균형’이라는 과제를 상기시킨다. 향후 스피리트항공이 채권단과 어떤 재무 스터드(structured deal)를 체결할지, 또 경쟁사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제기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