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NEW YORK – 스위스 최대 투자은행 UBS 그룹이 본사를 스위스 밖, 특히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다각도로 타진하고 있다고 뉴욕포스트가 주말(현지시간)에 단독 보도했다.
2025년 9월 14일, 뉴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UBS (Union Bank of Switzerland)의 고위 경영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관계자들과 이미 복수 차례 접촉하며 전략적 로드맵을 논의했다. 이 시나리오에는 미국 내 중대형 은행 인수나 대형 합병(M&A)을 통한 본사 이전 가능성이 포함돼 있다.
로이터 통신이 UBS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은행은 최근 세르지오 에르모티(Sergio Ermotti) 최고경영자(CEO)가 언급한 공식 입장을 재차 전달했다. 에르모티 CEO는 지난주 블룸버그 TV 인터뷰에서 “UBS는 스위스에 기반을 둔 글로벌 은행으로 계속 성장하길 원한다”면서도, 스위스 정부가 내놓은 추가 자본 규제가 “가혹하고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스위스 및 국제 고객 모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새로운 규제가 확정되면 주주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 S. 에르모티 CEO
그는 이어 “현재로서는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 논평하기에는 이르다”며 물리적 이전 여부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자본 규제 압박, ‘25억 달러 vs 260억 달러’
스위스 정부‧감독당국은 지난해 6월, UBS가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를 인수한 이후 시스템 리스크가 커졌다며 기존 기준보다 훨씬 강력한 핵심자본(Core Capital) 확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추가 260억 달러(약 34조 원)의 보통주자본(CET1)을 쌓으라는 요구다.
핵심자본(CET1)은 은행이 부실 손실 발생 시 즉시 흡수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자본으로, 국제 바젤 규제 체계에서 중요 지표로 간주된다. 규제가 강화되면 배당, 자사주 매입, 투자여력 등이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는 지난 7월, UBS 내부 브리핑 내용을 인용해 “본사 이전 필요성이 실질적 옵션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런던’을 대안 지역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전문가 시각: ‘세 가지 시나리오’
1) 미국 이전 – 경제 규모와 자본시장 깊이를 감안할 때 규제비용을 상쇄할 만큼의 규모의 경제를 노릴 수 있다.
2) 영국 이전 – 브렉시트 이후 규제 여건이 상대적으로 완화됐다는 평가가 있으나, 파운드화 변동성과 정치 리스크가 변수다.
3) 스위스 잔류 – 추가 자본 확충을 수용하되, 비은행 부문 정리와 비용 절감으로 수익성을 방어하는 방안이다.
시장 애널리스트들은 UBS가 실제로 M&A를 통해 미국에 법적 본사를 세울 경우,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G-SIB) 목록과 규제 관할권”이 달라져 장기적으로 더 큰 레버리지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다만 미국 연준(Fed)의 스트레스 테스트 등 자국 규범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 변수다.
한국 독자를 위한 용어 해설
• 코어 자본(CET1) – Common Equity Tier 1의 약자로, 발행주식과 이익잉여금으로 이루어진 손실흡수능력이 가장 높은 자본.
• G-SIB – Global Systemically Important Banks, 국제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은행.
• 스트레스 테스트 – 극단적 경제 충격을 가정해 은행의 자본적정성을 평가하는 금융당국 시뮬레이션.
한편 UBS는 현재 시가총액 약 800억 달러, 글로벌 자산운용 규모 4조 달러 수준으로,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웃도는 자산을 관리 중이다. 크레디트스위스 흡수 이후 시스템 리스크 우려가 고조되며, 스위스 정부가 ‘Too Big to Fail(초대형은행)’ 프레임을 재정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UBS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주주 가치 보존과 규제 순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할 전망이다. 스위스 정부 역시 금융산업 경쟁력과 고용, 세수에 미칠 영향을 두루 고려해야 하는 만큼, 연내 가시적 해법이 도출될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