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미국 무역전선에 ‘金세’ 카드 등장
스위스의 귀금속 제조·거래 협회(ASFCMP)가 스와치 그룹 최고경영자(CEO) 닉 하이εκ이 제안한 미국행 금괴(골드 바) 수출세 부과 방안에 대해 신중론을 제시하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2025년 8월 14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 금 업계 관계자들은 “대미(對美) 보복 관세라는 정치적 명분보다 장기적인 국가 이익과 자유무역 원칙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들은 스위스가 글로벌 금(金) 정제·환적 허브로서 쌓아온 신뢰가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스위스산 수입품에 39%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고 전격 발표해 알프스 국가에 충격을 안겼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미국 내에서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골드 바’에도 관세 적용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금은 관세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아킬레스건을 노려라’…하이εκ CEO의 역제안
스와치 CEO 닉 하이εκ은 같은 날 스위스 일간지 블리크(Blick)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공세로 전환할 때”라며 “미국행 골드 바에 39% 수출세를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그게 바로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이라며 “설령 트럼프가 굴복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더 이상 스위스를 경유해 금괴를 들여오지 않는다면 양국 간 무역수지 적자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εκ의 전략은 ‘트럼프가 민감해할 금 가격’을 직접 자극해 관세 철회를 끌어내겠다는 발상이다. 스위스는 전 세계 금괴 정제량의 약 70%를 처리할 정도로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스위스발(金) 병목 현상’만으로도 글로벌 금 현물·선물 가격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ASFCMP “자유무역 국가 이미지 훼손”
“대미 수출세는 스위스 경제에 직접적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자유무역을 일관되게 지지해 온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킬 것이다.” — 크리스토프 빌트 ASFCMP 회장
ASFCMP는 성명을 통해 하이εκ 제안에 “양국 무역 균형을 맞추려는 창의적 아이디어 자체는 환영하지만, 장기적 국가 이익이라는 큰 틀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수출세는 결국 스위스 기업·근로자·세수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면서 대안을 촉구했다.
스위스 경제부(SECO)는 “원칙적으로 민간의 건설적 제안은 긍정적”이라면서도, 하이εκ의 구체적 방안에 대한 코멘트는 삼갔다. 대신 “스위스와 미국은 긴밀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관세 완화를 위한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배경 설명: 관세(tariff)와 수출세(levy)의 차이
• 관세(tariff)는 수입국 정부가 외국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목적은 자국 산업 보호, 세수 확보, 무역 협상 카드 등 다양하다.
• 수출세(levy)는 자국 기업이 해외로 물건을 내보낼 때 자국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이다. 주요 목적은 전략물자 통제, 자원 보호, 혹은 경제·외교적 압박 수단 등이다.※스위스는 전통적으로 수출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왔다.
또한 ASFCMP는 ‘The Swiss Association of Manufacturers and Traders in Precious Metals’의 약자로, 스위스 내 귀금속 정제·유통 기업 30여 곳이 가입한 단체다. 글로벌 금 시장에서 스위스가 갖는 위상을 감안할 때, 협회의 발언이 미치는 파급력도 적지 않다.
전문가 시각: 스위스, ‘자유무역 아이덴티티’ 시험대
시장 분석가들은 스위스가 이번 사안에서 ‘무역 흑자국’이자 ‘자유무역 수호자’라는 두 얼굴 사이에서 기로에 섰다고 평가한다. 관세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①글로벌 금 공급망 교란, ②스위스 정제공장 가동률 저하, ③스위스 프랑 강세 등 부수적 파급효과도 예상된다.
특히 금은 전통적 위험 회피(헤지) 자산이므로, 미국과 스위스 두 금융허브가 동시에 정책 변화를 모색할 경우 국제 금융시장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스위스의 ‘선제적 수출세’는 글로벌 투자자에게 예측 불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향후 전망
현재 스위스 정부는 워싱턴과의 실무 협상을 통해 39% 관세 인하·철회를 모색 중이다. 하이퍼외교로 불리는 스위스 특유의 ‘조용한 중재 외교’가 통할지, 아니면 하이εκ CEO식 압박 전술이 힘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관측통들은 “스위스가 수출세 카드를 실제로 꺼낼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협상 지렛대(Leverage)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측에 심리적 부담을 줄 것”이라고 평가한다.
결국 관세 갈등은 단순히 스위스 시계·초콜릿·의약품을 둘러싼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귀금속 공급망과 안전자산 시장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잠재 변수가 되고 있다.
※본 기사는 원문에 제시된 수치·날짜·인명·기관명을 그대로 반영했으며, 추가 해석이나 오피니언은 기자의 전문적 분석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