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채·재정 분석]
일본이 극심한 국가 채무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세와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익률 추구(foreign fervour for yield)가 맞물리면서 국채 금리 급등이 억제될 여지가 생겼다.
2025년 7월 21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주말 실시된 참의원(Upper House) 선거 결과가 집권 연립여당과 이시바 시게루(Shigeru Ishiba) 총리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부채를 보유한 일본이 더 큰 재정지출과 적자 확대 가능성에 직면했다.
투자자들은 이시바 총리가 소수파 정부를 유지하거나 소규모 야당과 연정을 구성하는 시나리오, 혹은 실각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감세와 재정적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재정적자 확대는 채권 매도(가격 하락)와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총부채는 8조 달러를 넘어 국내총생산(GDP)의 2.5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만기 일본국채(JGB) 수익률은 3% 수준에 머물러 있어 정부의 재정 확대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
엔화 약세, 장기간 이어진 초저금리 환경, 디플레이션 탈피, 막대한 국내 저축, 그리고 일본은행(BOJ)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JGB 금리를 앵커링(anchoring)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정치 지형이 변하면서 재정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소비세 인하 등 추가 부양책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다.” — MUFG 선임 환율전략가 마이클 완(Michael Wan)
완 애널리스트를 비롯한 다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 3년간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성장세를 회복한 만큼, 채무 부담이 장기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마르셀 틸리언트(Marcel Thieliant) 아시아·태평양 책임연구원은 “일본의 순부채(Net Debt)가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다”고 지적했다.
MUFG의 완은 “일본은 여전히 순채권국(Net Creditor)인 만큼, 해외에 투자된 국내 자금이 풍부해 중·장기적으로 금리 급등이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해외 투자자들의 ‘러브콜’
일본은 세계 최대 순채권국 가운데 하나로, 연기금(GPIF)과 생명보험사를 포함해 약 3.6조 달러를 해외 자산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이 미 국채 등 미국 자산이다.
국내 저축만으로도 국채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여건이지만, 최근 엔화 약세와 JGB의 낮은 절대 금리가 외국인 자금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달러를 엔화로 스와프한 뒤 1년 만기 JGB에 투자하면, 동일 만기의 미 국채(3.9%)보다 약 30bp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이스트스프링 인베스트먼츠 고정수익운용팀의 롱 렌 고(Rong Ren Goh)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글로벌 매니저 입장에서 선진국 시장 간 상대 가치(relative value)를 따질 때 스와프 조정 수익률이 높은 쪽으로 돈을 돌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 장기구간 가팔라진 수익률 곡선
외국인들은 올해 들어 15조 엔(1,011억 달러) 이상을 JGB에 순매수했다. 30년물 금리는 연초 대비 80bp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10년물과 30년물 스프레드는 150bp를 넘어서며 수년 만의 최대 기울기를 보이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틸리언트 연구원은 “매파적(more hawkish) 통화정책 가정을 전제할 때 2026년 말 10년물 JGB 금리가 2%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10년물 금리는 약 1.5% 수준이다.
■ 용어 풀이 및 추가 해설
*베이시스포인트(bp, Basis Point)는 0.01%p(퍼센트포인트)를 의미하는 금리·수익률 단위다.
*스와프 환차(환율) 거래(Currency Swap)는 두 통화를 일정 기간 교환하고 만기에 다시 반대 방향으로 교환하는 파생계약으로, 금리 차이를 활용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순부채(Net Debt)는 총부채에서 현금성 자산·금융자산을 차감한 값으로, 국가의 실제 채무 부담을 가늠하는 지표다.
*순채권국(Net Creditor)은 해외로부터 받을 자산이 내줄 부채보다 많은 국가를 뜻한다.
■ 전망과 기자 분석
이번 참의원 선거가 불러올 재정 확대와 감세 압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채 시장에는 ‘3중 안전판’이 존재한다. 첫째, 엔화 약세로 인해 스와프 조정 수익률이 매력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 외국인 수요가 자금 유입을 돕는다. 둘째, 막대한 국내 저축 및 연기금·보험사의 구조적 매수세가 금리 급등을 자연스럽게 억제한다. 셋째, 일본은행의 정책 여력이다. BOJ가 과거와 같이 장기금리 상단을 관리하거나, 필요 시 추가 국채 매입(QQE)을 단행할 경우 시장 불안을 완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디플레이션 탈출 → 임금 및 물가 상승 → 정책금리 인상 → 국채 발행비용 증가의 선순환이 동시에 ‘위험요인’으로 전환될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둬야 한다. 2026년 이후 10년물 금리가 2%에 안착한다면, 과거 저금리 구조에 기반했던 일본 정부 예산 지출 구조에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성장과 해외 자금 유입”이라는 쌍두마차가 당분간 일본 재정 채무의 급격한 악화를 막아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 불확실성과 글로벌 금리 환경 변화가 맞물릴 경우, 일본 국채 시장이 보여온 ‘안정성의 착시’가 시험대에 오를 수 있음을 투자자들은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