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운드화(GBP)가 생산성 전망 하향 조정이라는 복합 부담에 직면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예산책임처(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OBR)가 향후 영국 경제의 노동생산성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새로 취임한 레이철 리브스(Rachel Reeves) 재무장관이 오는 11월 예산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대했던 세수 확보 여력을 동시에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외환시장의 경계를 자극했다.
2025년 9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OBR는 생산성 전망 하향에 따라 영국 정부의 중기 조세 수입이 추가로 약 90억 파운드(한화 약 15조 원)*가량 줄어드는 시나리오를 우려하고 있다. 국제 투자은행 ING는 이 같은 수입 감소가 ‘재정 갭(fiscal gap)’을 확대해 리브스 장관이 역점 추진해온 성장·복지·인프라 프로그램의 재원 조달 계획 전반을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생산성은 장기적인 세수 기반을 결정하는 근본 변수다. 영국의 구조적 생산성 부진은 단순히 단기 경기를 넘어 총부채 지속 가능성 문제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 ING FX & Rates 리서치 노트
서비스 부문 CPI 둔화에도 BOE의 매파색은 유지
같은 날 공개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서비스 부문 전년 대비 상승률은 4.7%로 시장 예상치(4.8%)를 소폭 하회했다. 영란은행(BOE)이 가장 주시하는 ‘핵심 서비스 인플레이션’(공식 명칭: CPI services ex volatiles)은 4.2%로 7월과 동일하게 유지됐다. 물가가 당초 예상만큼 빠르게 하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BOE가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매파(통화 긴축 선호)’ 기조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파운드화는 CPI 완화 신호와 OBR 생산성 전망 하향이라는 이중 악재에 즉각 반응했다. 런던 현지시간 17일 오전 GBP/USD 환율은 전일 대비 0.3%가량 하락하며 1.3600선 부근에서 지지선을 탐색했다. ING는 보고서에서 “달러 강세가 당분간 외환시장의 지배적 테마가 될 것”이라며 “그러나 기술적·펀더멘털 지표상 1.3600선에서 일정 부분 매수세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만약 BOE가 예상보다 더욱 강경한 문구를 채택한다면 단기적으로 1.37 상단까지 반등 여력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로-파운드 환율(EUR/GBP) : 재정 리스크 vs. BOE 매파 효과
재정 취약성은 파운드화 자체엔 부정적 요인이지만, 유로존 역시 성장 모멘텀 둔화와 인플레이션 고착 위험이 공존하고 있어 EUR/GBP 환율에 불리하게만 작용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ING는 보도자료에서 “BOE의 강경 스탠스가 일정 부분 유로 대비 파운드의 하락폭을 방어할 것”이라며 0.8650~0.8715의 박스권을 제시했다.
*참고 : ‘재정 갭(fiscal gap)’은 정부가 중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균형재정 목표와 실제 추정치 간 격차를 뜻하는 지표다. 외부 차입 의존도, 복지 지출 확대 계획, 금리 수준이 모두 연동되는 만큼, 잠재 성장률이 낮아지면 동일 세수로 채울 수 있는 재정 여력도 그만큼 줄어든다.
전문가 시각 : 생산성 하향이 의미하는 것
① 구조적 제약 노동생산성은 노동력·자본·기술 혁신의 결합 결과다. 브렉시트 이후 투자 감소, 숙련 노동력 이탈, 규제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영국의 생산성 정체가 고착되는 모습이다.
② 금리·채권시장 파급 생산성 하향은 잠재 성장률 축소를 의미하며, 이는 장기 국채수익률(term premium)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길트(Gilt)라 불리는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4.4% 안팎에서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③ 통화정책 엇갈림 고물가·저성장을 동시에 겪는 영국은 ‘스태그플레이션’ 경계를 안고 있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을 유지해야 하지만, 성장 모멘텀은 약화돼 통화·재정 정책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
낯선 용어 해설
• OBR(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 : 영국 재정 전망과 예산안을 독립적으로 검증·분석하는 준정부 기구다. 우리나라 기획재정부 세수추계위원회와 기능이 유사하다.
• CPI 서비스 물가 : 소비자물가 중 숙박·외식·보험·교통 등 서비스 항목의 가격 변동을 집계한 지표로, 임금과 직결돼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 GBP/USD 1.3600선 : 1파운드당 1.36달러라는 의미로,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차트 분석상 ‘심리적 지지선’으로 자주 언급하는 구간이다.
향후 일정 및 시사점
1) BOE 통화정책회의(9월 18일)런던시간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하거나 ‘긴축 장기화 시사’ 문구를 추가할지 주목된다.
2) OBR 중기재정전망(10월 예정) : 생산성 추정치가 공식 게시되면 파운드화 방향성에 추가 단서를 제공할 전망이다.
3) 정부 예산안(11월) : 리브스 장관이 어떤 증세 또는 지출 절감 항목을 제시할지가 영국 자산 전반의 변동성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파운드화는 단기적으로는 BOE의 매파적 메시지를 등에 업고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지만, 생산성 저하에 따른 재정 취약성과 투자 위축이라는 구조적 약점이 누적될 경우 중장기 약세 압력이 재차 가시화될 수 있다. 시장 참여자는 달러 인덱스 강세 기조, 영국 국채 수익률곡선, 그리고 BOE의 물가·성장 시나리오 업데이트를 복합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