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65억 달러(약 21조9,000억 원) 규모의 대형 파운드리 계약을 따냈다. 이번 계약은 글로벌 반도체 수급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이뤄져, 세계 2위 파운드리 사업자로서 삼성전자의 위상을 더욱 강화하는 의미를 지닌다.
2025년 7월 2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6일(토) unnamed 글로벌 기업과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계약을 최종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회사 측은 파트너사와 계약 조건 등 구체적인 내용은 2033년 말까지 비밀 유지 조항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계약은 우리 파운드리 사업의 기술 경쟁력과 장기 성장성을 입증한 사례”라고 삼성전자는 강조했다.
165억 달러 규모는 한국 반도체 업계 단일 수주액 기준으로도 손꼽히는 대형 건이다. 이날 소식이 전해지자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오전 장 초반 전일 대비 3.5% 오른 68,200원을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대규모 장기 수주를 통해 실적 방어와 중장기 성장 동력이 확보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파운드리란 무엇인가?
파운드리(foundry)는 ‘위탁생산’을 의미한다. 즉, 설계(IP)를 보유한 팹리스(fabless) 기업이 반도체 제조를 외주로 맡기면, 파운드리 업체가 고객사의 설계대로 웨이퍼를 가공·생산해 준다. 메모리 반도체가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과 달리, 파운드리는 시스템 반도체 특유의 다양한 공정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공정 기술력과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수적이다.
현재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 TSMC가 1위*주1, 삼성전자가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글로벌파운드리즈 등도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계약의 중장기적 의미
① 안정적 매출원 확보
10년에 육박하는 장기 계약 기간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이클 변동성으로부터 일정 부분 방어막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낳는다. 반도체 설비투자는 선(先)투자가 필수인데, 장기 고객을 유치함으로써 자금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② 첨단 공정 수주
이번 계약 규모와 비공개 조항, ‘글로벌 메이저 기업’이라는 표현 등을 종합하면, 업계에선 고성능 컴퓨팅(HPC)·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와 3nm(나노미터) 이하 공정이 포함됐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차세대 2nm 공정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③ 공급망 다변화·지리적 리스크 완화
미·중 갈등 장기화로 주요 시스템 반도체 고객사들이 ‘중국 의존도’ 축소와 ‘리던던시 확보(중복 생산)’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대규모 계약 또한 이러한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
주가 영향 및 시장 전망
26일 공시 직후, 29일 오전(한국시간)까지 삼성전자 주가는 단기 상승 탄력을 이어갔다. 증권가에서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4배 수준이던 삼성전자가 이번 계약 발표를 기점으로 파운드리 밸류에이션을 재평가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AI 수요 급증으로 최근 2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엔비디아·AMD 등이 TSMC뿐 아니라 삼성전자에도 물량을 분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 호재로 작용한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계약 금액이 향후 8~9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식될 것이며, 2026년부터 삼성전자 시스템LSI(로나지)이익 기여도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사 및 산업 생태계 파급효과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는 파운드리·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뿐 아니라 세정·식각·포토레지스트·첨단 소재 등 협력사 매출 확대도 기대된다. 또, 첨단 패키징 후공정 기술(예: X-Cube·I-Cube) 수요가 늘어 삼성전기의 3D 패키징 역량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인 한미반도체, 에스에프에이 등 관련 기업들의 수주 환경도 우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계약 소식 이후 일부 중소형 반도체 장비주도 동반 상승세를 보였다.
글로벌 반도체 ‘르네상스’ 가속화
코로나19 이후 촉발된 디지털 전환과 AI 도입 가속화는 고성능 서버·데이터센터 수요를 전례 없이 확대시키고 있다. GPT 모델 등 초거대 AI 학습에는 수십만~수백만 개의 GPU가 필요해, 첨단 공정·HBM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업계는 2025년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가 1,5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완공과 함께 국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총 300조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장기 계약은 해당 인프라 투자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제고하는 촉매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1)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2024년 기준, 트렌드포스)
*주1 TSMC 56%, 삼성전자 16%, 글로벌파운드리즈 6%, UMC 5%, SMIC 5%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