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는 퇴직 이후 생활비를 책임지는 ‘노후 소득의 척추’로 비유된다. 하지만 만약 그 척추가 완전히 부러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필자는 생성형 인공지능 ChatGPT에 이 극단적 가정을 제시하고, 그 결과를 단계별로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2025년 9월 20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ChatGPT는 “전면적인 기금 고갈은 은퇴자뿐 아니라 미국 경제 전반에 연쇄 충격을 초래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기금 축소도, 지급 지연도 아닌 ‘완전 소멸’을 상정했을 때 나타날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감 없이 제시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먼저 용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1935년 제정된 ‘Social Security Act’에 따라 적립·운용되는 연방 노후·생계보험이다. 현역 근로자가 납부한 급여세(payroll tax)로 기금을 조성해 퇴직자·장애인·유족에게 월 단위 급여를 지급한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구조는 유사하지만, 미국에서는 메디케어(Medicare), 보충보장소득(SSI) 등과 별도로 운영돼 ‘3중 안전망’을 형성한다.
1. 수천만 명의 재정 생명선이 끊어진다
ChatGPT는 “사회보장은 70 백만 명 이상에게 핵심 현금흐름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사회보장국(SSA)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평균 소득에서 사회보장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31%에 달한다. 기금이 사라질 경우, 은퇴자·장애인·유족은 갑작스레 생계 수단을 잃어 빈곤선 아래로 추락할 위험이 크다.
특히 사적 연금(pension)이나 충분한 저축이 없는 저소득층은 대체 소득원이 전무하다. 미국은 기업 확정급여(DB) 연금 가입률이 꾸준히 하락해 왔고, 개인은퇴계좌(IRA)에 대한 이해도 역시 낮다. 결과적으로 공적 연금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인구가 상당하다는 점이 이번 분석의 첫 번째 핵심이다.
2. 빈곤·노숙 인구 급증, 샌드위치 세대 압박
ChatGPT는 “최악의 경우 노년 빈곤율과 노숙인 수가 급증하고, 푸드 스탬프·메디케이드 등 주·연방 복지예산에 심각한 부담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은퇴하지 않은 중장년층(40~60대)은 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을 동시에 떠안는 ‘샌드위치 세대(sandwich generation)’로 내몰린다.
샌드위치 세대란 부모·자녀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가구를 지칭하는 사회학 용어다. 미국 가계의 학자금 대출, 의료비, 주택담보대출 구조상 중장년층이 부모 생계까지 책임질 경우 가계 부채 확대와 노후 준비 불능이라는 이중 위기를 맞게 된다.
3. 금융시장·실물경제 연쇄 타격
가계 차원의 충격은 소비 위축을 통해 즉시 거시경제로 확산한다. ChatGPT는 “노년층 소비 감소는 소매·의료·레저 산업 매출을 직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역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소도시에 더 큰 타격으로 돌아와 고용위축과 세수 감소를 야기한다.
또한 주택시장에선 은퇴자가 급매로 주택을 처분하거나 소형 주택으로 이동하면서 공급 급증·가격 하락이라는 ‘더블딥’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자산가치 하락이 소비심리와 은퇴자 포트폴리오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수차례 지적해 왔다.
4. 청년층,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 상실
퇴직 준비가 멀게 느껴지는 밀레니얼·Z세대에게도 후폭풍은 존재한다. ChatGPT는 “사회보장제도가 사라지면 정부 신뢰도 저하와 함께 메디케어·장애연금 등 다른 공공 프로그램까지 불안정하다는 인식이 확산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젊은 세대는 자기 책임형 자산운용에 치우치고, 이는 장기 금융시장 변동성 요인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전문가 시각] 제도 폐지는 현실적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부분 삭감’은 시간문제
취재진은 퇴직연금 컨설턴트·정책연구자 5인에게 추가 견해를 물었다. 공통된 답변은 “전면 고갈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2030년대 중반 기금 적립금이 급감하면서 약 20% 안팎의 급여 삭감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현재 사회보장세율은 급여의 12.4%다. 전문가들은 세율 인상, 과세소득 상한 폐지, 지급연령 상향 등을 복합적으로 조합해야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고소득자 과세 캡(cap)을 해제할 경우 75년 재정추계에서 약 40%의 재원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또한 자동 지출 절벽(benefit cliff)을 막기 위해 조기·정규 은퇴연령을 각각 62세→64세, 67세→69세로 올려야 한다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이는 저소득·육체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형평성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심층 해설] 사회보장 고갈 논의가 한국에 주는 함의
한국 국민연금도 2055년 기금 소진이 예측된다. 미국 사례는 ‘부분 삭감’만으로도 경제 전반에 충격이 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지출 구조조정·재정 투입·출산율 제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지 않으면, 양국 모두 노후 빈곤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특히 정치적 타협이 지연될 경우 ‘고갈론’이 반복적으로 확산해 제도 불신이 커질 수 있다. 이는 젊은 세대의 가입 거부·사적연금 쏠림을 초래해 공적 연금의 위험 집단선택(adverse selection) 문제를 심화시킨다.
따라서 미국·한국 모두 직장·자가 연금(DC) 활성화, 조세지원을 통한 자발적 저축 인센티브 강화 등 다층 노후소득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이번 ChatGPT 시나리오는 허구적 전제이지만, 정치적 의사결정 지연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SSA 신탁기금은 2034~2035년, 지급 가능 재원 대비 79% 수준으로 급여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공표돼 있다. 세대 간 형평성과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인은 자산 다각화, 생애주기 투자전략, 장기 요양보험 마련을 통해 제도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 은퇴재정전문가 존 톰프슨(John Thompson)
달아오른 ‘고갈 논쟁’ 속에서도, 공식 보고서는 ‘부분 삭감 시나리오’만을 가정한다. 그러나 과감한 제도 개선 없이는 부분 삭감조차도 경제·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어렵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정치 리스크 관리는 시간을 다투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