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계 최대 석유 및 원자재 거래업체인 비톨(Vitol)과 글렌코어(Glencore)가 셰브론(Chevron)이 보유한 싱가포르 주롱 섬(Jurong Island) 정유소 지분 50% 매각 본입찰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9월 1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거래는 글로벌 정유·화학 허브인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 물량을 확대하려는 트레이더들의 전략과 셰브론의 구조조정 계획이 맞물린 결과다.
이번 자산의 전체 기업가치는 약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셰브론은 10월 중 최종 구속력 있는(binding) 입찰서를 접수받을 예정이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최대 석유 트레이딩 허브이자 세계 1위 벙커링(bunkering·선박용 연료 공급) 항만으로, 정제유가 혼합·저장·재수출되는 핵심 거점이다.
주롱 섬에 위치한 해당 정유소는 일일 원유 처리 능력 29만 배럴(bpd)을 갖춘 싱가포르 3대 메이저 정유시설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 50% 지분은 중국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차이나(PetroChina)의 싱가포르 법인 Singapore Petroleum Company가 보유하고 있다.
페트로차이나는 계약상 우선 매수 권(first right of refusal)을 보유하고 있어, 셰브론이 보유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하기 전 같은 조건으로 우선 인수할 수 있다.
해당 권리는 일반적으로 공동 투자자가 자산의 추가 지분을 지키기 위해 설정하는 계약조항이다.
로이터는 페트로차이나 측에 공식 입장을 문의했으나, 기사 마감 시점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다른 업체들이 출사표를 던질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소식통들은 “비톨과 글렌코어 모두 아·태 지역에 기존 정유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물류·저장·트레이딩 시너지를 확대하려는 전략적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셰브론, 비톨, 글렌코어는 “거래 관련 사안에 대해 논평을 자제한다”며 공식 코멘트를 내놓지 않았다. 매각 자문사로 선정된 모건스탠리 역시 답변을 거부했다.
셰브론의 구조조정 배경
미 석유·가스 메이저인 셰브론은 2026년 말까지 30억 달러 규모의 비용을 감축한다는 계획 아래 아시아·태평양 지역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 중이다. 이번 싱가포르 지분 외에도 호주·필리핀 연료 터미널 및 말레이시아 주유소 네트워크가 일괄(bundle) 또는 개별 매각 대상으로 시장에 나와 있다.
비톨의 기존 역량
비톨은 말레이시아 탄중빈(Tanjung Bin)에 하루 3만 2,000배럴 규모의 소형 정유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주롱 섬 인근 탄중 펠라팡(Tanjung Pelapas)의 ATB 오일터미널 지분 50%를 갖고 있다. 또한 호주 비바 에너지(Viva Energy)를 통해 12만 bpd의 지롱(Geelong) 정유소를 운영한다.
글렌코어의 동남아 전략
글렌코어는 인도네시아 석유화학 기업 찬드라 아스리(Chandra Asri)와의 합작사(Aster Chemicals and Energy)를 통해 올해 4월 영국 셸로부터 싱가포르 풀라우 부콤(Pulau Bukom)·주롱 섬 내 23만 7,000 bpd 규모의 정유·화학 단지를 인수 완료했다.
시장 분석가들은 “주롱 섬 정유소는 기존 부콤·탄중빈 시설과 배후 파이프라인·저장 인프라를 공유할 수 있어, 트레이딩·블렌딩·벙커링 밸류 체인 전반에 걸친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진단한다.
용어설명: 벙커링
벙커링은 선박에 연료용 유류(벙커유)를 공급하는 행위를 말한다. 싱가포르는 연간 5,000만 톤 이상의 벙커유를 판매하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20%에 이른다.
만약 페트로차이나가 우선 매수 권을 행사하지 않고, 비톨 또는 글렌코어가 지분을 확보할 경우 싱가포르 정유·트레이딩 시장은 유럽계 독립 트레이더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번 매각 절차가 향후 동남아 정유·석유화학 공급망 재편의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아울러 국제해사기구(IMO)의 친환경 연료 규제가 강화되면서, 고도화 설비가 갖춰진 싱가포르 정유소의 가치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대형 트레이더들은 고유황·저유황 원유 혼합 기술과 탄소배출 모니터링 시스템에 투자해 수익성을 방어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정제 마진이 bbl당 12~15달러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자산 매수자가 셀사이드(sell-side)의 기대치를 충족할 유인이 형성돼 있다. 그러나 금리 상승과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실사(due diligence) 과정이 길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종 결과는 2025년 4분기 안에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며, 업계는 페트로차이나의 움직임과 비톨·글렌코어의 자금 조달 구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